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4.5 수 03:36
기획학술
재현권력으로서의 비평언어와 다중적 주체의 비평오창은 / 교양학부대학 교수
안혜숙 편집위원  |  ahs11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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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호]
승인 2016.10.05  21: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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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비평의 얼굴 ② 문학비평과 권력

21세기에 이르러 비평은 ‘대중’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양태를 보인다. 대중의 가능성을 끌어안으며 ‘비평가’라는 이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또한, 21세기 새로운 매체 환경에서 ‘비평’이라는 이름 아래, ‘대중’ ‘예술’ ‘작가’ ‘권력’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인식 전환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 시대 비평의 위기와 존재 의미, 더 나아가 새로운 ‘비평의 시대’에 비평가는 어떤 책무를 지게 되는지, 비평의 새로운 활로는 있는지를 모색해 보려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21세기 비평, 무엇이 문제인가 ② 문학비평과 권력 ③ 다원예술 비평은 가능한가 ④ 영화비평의 새로운 가능성

 

재현권력으로서의 비평언어와 다중적 주체의 비평

 

오창은 / 교양학부대학 교수

 

“세계가 있고, 작가는 말한다. 그것이 문학이다. 비평의 대상은 아주 다르다. 그것은 ‘세계’가 아니라 담론, 타자의 담론이다. 비평은 담론에 대한 담론이다.”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가 한 말이다.
비평가는 텍스트 재현의 주체이다. 비평은 작품의 탄생 이후에 작품의 의미화를 지향하기에 사후적이다. 그러면서도 텍스트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에 정치성은 현재적이다. 비평은 재현 체계 내에서 정치적으로 개입한다. 문학이 상상적으로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것이라면, 비평의 언어는 ‘구체적 문학텍스트를 다시 재현’함으로써 담론을 구축한다. 그렇기에 텍스트에 대한 비평은 ‘관계맺기의 정치성’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재현의 이데올로기를 감내하는 정치적 언어로서의 특성을 내장하게 된다. 예술의 정치성을 전제한 것이 바로 비평인 셈이다.

 

   
 

 

 

재현 언어로서의 비평권력

 


비평언어는 개별 작품이 구축한 세계관을 분석하거나 기존 세계관을 내파할 때 힘을 발휘한다. 비평가는 때로는 작품을 매개하고, 작가를 대리하지만, 때로는 작가를 객관화함으로써 독자에게 다가서려 한다.
비평이 의미있는 예술적 상승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별성’을 극복하는 것이 항상 중요한 과제였다. 비평은 작가들이 ‘자기 작품에 몰입’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둔다. 그 거리두기를 통해 작품의 가치를 변별하기도 하고, 작가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던 의미를 비평언어로 포착해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비평언어를 무시하면서도 그것에 민감하다. 작가가 자신의 개별성에 집요하게 천착하여 보편적 감성을 획득하려는 욕망을 발현하려 한다면, 비평가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열망 속에서 개별 작품의 의미를 질서화하려 한다.
비평은 작품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작품 너머의 텍스트를 생산한다. 작가들이 자기 세계에 갇혀 있다면, 이것을 벗어나 타자의 세계로 열리게 하는 것이 좋은 비평이다. 가치있는 비평은 타자의 정치이면서, 대자의 세계를 향해 있다. 힘이 있는 비평은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를 유영하며, ‘자기 작품에만 몰입’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상대화한다. 그렇기에 전통적으로 비평가와 작가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관계에 있었다.
숱한 작가들이 비평가를 질타해 왔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저 개를 내쫓아라! 저놈은 비평가니까”라고 외쳤다고 한다. 영국의 작가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는 비평가를 “문학과 예술에 실격한 사람들”이라고 했고, 러시아 작가 체홉(Anton Chekhov, 1860∼1904)은 “쇠꼬리에 귀찮게 달라붙은 파리”라고까지 비하했다. 작가들의 공격적 언어는 비평권력에 대한 저항이며, 자기 문학세계에 대한 옹호이기도 하다. 비평언어의 상대성은 작가의 공격 대상이지만,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지평의 열림으로 격찬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비평가의 권력은 작가를 비판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비평언어로 작품을 매개하는 과정에서 발휘된다.

 

다중주체로서 독자의 부상

21세기에 이르러 문학비평과 문학독자의 관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독자가 주체성을 가진 다중(multitude)으로 전환되면서, 문학제도 내에서 작동하는 비평은 훼손된 권력이며 작가와 밀착된 방언의 언어를 구사하는 내부자들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작가들이 비평가를 작품을 훼손하는 주체로 바라본다면, 다중주체로서 독자는 비평가를 작가와 공모하는 내부자로 의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21세기 문학비평이 어떤 전환적 위치에 서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문학작품은 독립적 텍스트이지만, 그것을 읽어내는 독자는 각자 개별적 경험 세계에 갇혀 있기 쉽다.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도 ‘개별성’에 갇혀 있기 쉽다. 그 개별성을 통합시키고, 그 시대의 감각적 질서와 합류하는 독자의 언어를 조탁해내는 것이 비평가의 역할이었다. 비평의 언어를 읽어내면 특정 시대의 지적 풍경을 그려낼 수 있다고 믿었던 시기가 있었다. 비평에 대한 신뢰는 계몽주의의 유산이며, 근대문학의 전통이었다. 20세기까지는 비평언어에 대한 믿음이 통용되었다. 비평언어를 통해 동시대를 점유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시대정신의 재현을 포착하고, 세계관의 충돌 속에서도 사람들의 공통감각을 담론화할 수 있었다. 모든 비평이 좋은 비평일 수는 없지만, 비평언어에 대한 믿음은 ‘특정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의 표출이었다.
21세기 문학비평에서는 작가와 비평가의 관계는 예전 방식대로 작동하더라도, 비평가와 독자의 관계만은 급격하게 전환되었다. 다중주체로서 독자들은 더 이상 대표 독자로서 자신을 대변하는 비평가들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발화하고 판단하며, 오히려 자신을 대변하겠다고 나서는 비평가들을 질타한다. 비평가의 문학평론보다는 인터넷 서점의 독자서평이 더 위력이 있고, 비평가들의 논쟁보다는 특정 작품에 대한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훨씬 더 영향력 있다. 다중적 주체로서 독자들이 각자 자신의 언어를 공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매체를 가진 시대에, 문학비평의 제도적 권위는 점차 그 지반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비평은 더 견고한 아카데미즘으로 향하거나, 아니면 대중과의 전투현장에서 악전고투하는 양상이다. 스스로 계몽되고 해방된 주체들 사이에서 문학제도의 보호를 받는 비평가는 허약한 언어의 성에 갇힌 수감자처럼 보인다.
21세기 문학비평은 ‘대화비평’으로 전환함으로써 존재방식의 전환을 맞이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비등점을 넘어서면, 기존 질서는 격렬하게 도전받을 수밖에 없다. 문학비평도 어떤 임계지점에서의 무능력을 현시하고 있다. 낡은 세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지 않았을 때, 현존의 세계는 낙후된 질서의 온존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문학비평의 해체와 재구성


너무 많은 텍스트가 존재하거나, 혹은 의미있는 텍스트가 없는 시대에 비평은 폐허 속의 고목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롤랑 바르트의 이야기처럼 ‘담론의 언어’로서 비평은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질서의 해체를 통해 다중주체로서 독자와 대화하는 비평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평 자체의 존재 방식이 바뀐 것이 아니라, 비평가의 제도적이면서 전문적인 지위가 재편되고 있을 뿐이다.
매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제도 안에 온존하는 비평은 환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비평가들끼리의 약속을 통해 교환되는 비평언어는 고립적 방언으로 영토화되어 가고 있다. 비평가의 언어는 문학 매체들이 일궈낸 제도적 공간에서 벗어나 공통의 장에서 소통되는 언어로 변화해야 한다. 혹은 다중의 언어 속에서 비평의 질서를 구축해내야 한다. 문학제도 내에서 작동하는 비평 행위는 충돌 없는 ‘점의 비평’이고, 자신의 진지에서만 이뤄지는 ‘참호 속의 비평’이 되었다. 다중주체로서 독자와 대화하는 비평을 위해서는 기존의 문학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과연 현재의 문학비평 속에서 그런 열린 대화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현재의 문학비평은 매체별로, 소속된 에콜 위주로 진지 내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적 감각과 취향 위주로 재편된 비평영역 내에서만 감상하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다른 비평 진영의 평가나 개입은 ‘타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명목하에 외면된다. 이렇다보니, 다중적 주체로서 독자들과 대화함으로써 타자의 언어를 통해 비평언어를 풍부화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 현시기 비평 담론은 미시적 텍스트주의에 머물고 있어서, 텍스트 사이의 관계를 따지며 종합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개별 작품에 대한 비평에서 차이를 보일 수는 있지만, 공통감각으로서의 미학적 체계의 대결은 다중주체의 감각과 합일하는 지점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문학제도를 상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다중주체로서의 독자, 탈경계적 문학비평가, 새로운 세대의 비평언어 구사자들의 연대 속에서 움틀 수 있을 것이다. 씨앗이 뿌려지고, 움트고, 뿌리 내리고, 잎사귀가 돋아나는 데는 장구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세계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작가는 그 세계에 대해 말하려 할 것이다. 비평 또한 타자의 담론으로 지저귀는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비평의 존재양태가 바뀌더라도 비평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비평의 존재양태의 변화에 대응하는 비평적 세계관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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