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예술계열 공간문제

 

당신은 이곳의 주인입니까?

 

지난 호(329호) 대학원신문에서는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 완공 후 대학원 공간배정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 원우들의 기대와는 달리 대학원은 303관(법학관)의 일부만을 배정받았다. 늘 연구공간에 목말라 있던 대학원 내 여러 학과들이 오아시스처럼 기다렸던 310관은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다. 원총은 계열별 공간배정 회의가 10월 중에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단위요구안에는 인문·사회계열을 중심으로 계획된 공간요구 표에 예술계열 내 예술학과, 조형예술학과 사진전공, 문학예술콘텐츠학과의 이름도 올라간 상태다. 303관 공간배정을 앞두고 있는 예술계열을 찾아가 보았다.

 

 
 

갈 곳 없는 사람들


대학원 내 고질적 문제로 이야기되는 예술계열 공간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본교 예술계열 학제가 안성캠퍼스를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학원이 서울캠퍼스에 위치해 있어 안성이라는 지리적 조건에서는 전시, 공연을 통한 외부활동과의 연계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학업을 위한 공간이 안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몇몇 학과의 경우 서울캠퍼스에서는 어떤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조형예술학과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원우 A는 “조형예술학과 단위로 주어진 공간을 서양화, 한국화, 조소과가 이미 오래 전부터 나눠 쓰고 있는데, 사진 전공은 공간 자체가 없다. 공간이 없으니 기자재도 없고, 안성에서 빌려 써야 한다. 기자재는 둘째치고, 단지 다섯 평 정도의 공간만 있어도 좋겠다. 사진 전공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쫓기듯이 나가서 가 있을 곳도 없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사진 전공 원우들 외에도 2015년에 신설된 예술학과 역시 공간이 없어 대학원 로비나 근처 카페를 배회하고 있다. 예술학과 원우 B는 “이론을 전공하는데도 등록금이 640만 원으로 실기를 하는 다른 예술계열 원우들과 동일하다. 영국에서 석사를 하고 중앙대 대학원에 왔는데 여기가 더 비싸다. 등록금은 그렇게 많이 내는데도 연구공간 하나가 없다는 게 기막히다”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또한, 예술학과처럼 신생학과의 경우 학과 단위의 공간이 없으니 구성원들의 단합과 연대가 힘들고, 그러다보니 학교 행사나 원우들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자리에도 참여도가 떨어진다는 문제가 나타난다. 게다가 일부 원우들은 논문지도를 받기 위해 안성캠퍼스를 오가는 수고를 겪어야 한다.
이 문제는 실기레슨이 학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음악학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레슨을 받기 위해 안성을 오가는 원우들은 자신의 하루 시간을 온전히 빼 두어야 한다. 음악을 하는 원우들의 경우, 학업과 함께 생계활동으로 개인레슨이나 예술 강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안성을 오가는 시간이 부담스럽고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음악을 전공한 원우 C는 “서울대, 한양대, 이대 등 여러 음대를 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일단 음대 건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니 그 안에 분배과정의 열악함이 있을지라도 대학원생의 공간이 존중되고, 전공 관련 자료들도 많다. 또, 가까운 곳에서 더 자주 교수를 만나기 때문에 레슨 자체에 대한 부담도 없을 것 같고, 전공에 대한 자료들도 많다. 반면, 본교 서울캠퍼스에는 예술관련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며 서울과 안성의 지리적 괴리에서 기인하는 공간 문제를 지적했다.

 

빈곤 속의 빈곤


그러나 대학원 내 공간을 보유하고 있는 학과도 그 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다. 조형예술학과의 경우, 대학원 지하에 서양화, 한국화, 조소 전공의 작업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일정한 크기의 작품을 여러 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또, 작품을 둘 데가 없어 복도에 세워두다 보면 소방관리법에 위반되기도 한다. 비좁은 공간과 함께 문제가 되는 건 열악한 작업 환경이다. 특히, 유화를 사용하는 서양화의 경우 환기가 중요한데 작업실이 지하에 있어 통풍이 여의치 않다.
가장 심각한 것은 습기, 곰팡이, 장마로 인한 누수다. 실제로 작품에 곰팡이나 녹 자국이 생겨 완성된 작품을 폐기해야만 했던 사례가 있었다. 원우들은 오랜 시간과 열정을 쏟은 작품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상황을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열악한 원우들의 공간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계열별 ‘단위요구안’이다. 강병주 예술계열대표는 공간보유를 하지 못한 3개 학과 공간배정 요청과 함께 대학원 지하작업실의 창문, 바닥 공사, 부족한 화장실 등의 시설관련 문제들을 단위요구안에 건의한 상태다.
서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박사수료생 D는 “예술을 하는 학생들의 경우, 개인 연구 공간, 예술작품 활동 공간, 자료 아카이브, 장비와 특수설비, 작품보관과 전시에 관련된 공간들이 복합적으로 필요한데, 서울대의 경우, 자료나 작품보관 부분은 부족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잘 돼 있는 편”이라 말했다. 홍익대 대학원의 경우도 회화 전공은 90~100명 정도의 원생들이 개별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벽면 하나의 공간을 배정받는다고 하며, 시각디자인, 조소 전공도 개인공간과 별도의 공동 작업실을 보유하고 있었다.
타학교 대학원에 비해 예술계열 원우들의 연구 환경이 충분히 만족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몇 원우들은 비싼 등록금에 상응하는 연구 환경을 제공받지 못한다고 느끼면서도 “학부 때부터 계속 예술계열의 등록금은 비쌌고, 불만족스럽지만 지금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상황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과연 이것은 진정한 선택이고, 개인의 문제일까.

 

공간의 표면은 두껍다


공간 문제의 본질은 언제나 눈앞에 보이는 외연(外延)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공간은 늘 주체와 타자가 만들어지는 구조와 권력의 문제를 보여준다. 이 말은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공간’을 통해 우리는 사적인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공적’ 존재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공간을 보유하지 못한 학과의 문제에서 보았듯이 원우들이 연대하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학내 공기는 결코 그들이 속해 있는 공간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본교는 교육부 평가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학과 개편·통합을 단행했다. 그 결과 사진전공 원우들은 ‘조형예술학과’라는 단위에 묶여 학과로 배정되는 공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부여받지 못했고, 같은 공간을 배정받은 다른 전공의 원우들과 어색한 분위기를 나누었다. 인문계열에서 이동한 문학예술콘텐츠학과(구 문예창작과) 역시 교과과정의 큰 변화 없이 등록금만 인상된 채 예술계열에 와 있다. 각각의 학문적 특성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관리하고 구획하기 편리한 방향으로 조정된 대학원이란 공간에서 원우들은 있어야 할 곳을 몰라 우왕좌왕할 뿐이다.
이구 총학생회장은 이번 303관 공간 배정시 “연구실에 특정학과 명칭을 부여해 점유하도록 하는 형태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공간 활용이 잘 되는 학과와 그렇지 않은 학과를 구분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똑같은 공간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 공간을 ‘점유(占有)’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남이 짜 놓은 판 위에서 또 장기말처럼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주인(主人)이 되어 그 공간을 상상하고 만들어 갈 것인가.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예술(藝術)의 힘이다.


안혜숙 편집위원|ahs11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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