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준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브렉시트 ② 브렉시트 이후의 유럽

2016년 6월 23일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유럽 연합 탈퇴가 가결되었다. 주요 증시와 통화는 요동쳤고, 세계 경제의 미래는 한층 더 불확실해졌다. 브렉시트는 이제 세계인의 고민이다. 이에 브렉시트의 경제‧사회‧역사적 배경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EU의 역동과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고, 이것이 동북아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타진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왜 브렉시트인가? ② 브렉시트 이후의 유럽 ③ 영국의 내적 갈등 ④ 브렉시트와 한국 


브렉시트 이후의 유럽연합

장석준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우선 유럽연합이 단일한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점부터 확인해야 한다. 유럽연합은 서로 기원을 달리하는 여러 프로젝트들이 결합된 복합적 구성체다.
  물론 역사책을 보면, 2차 대전 직후에 독일의 광물 자원을 주변국이 공유하기로 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발족했고 이것이 유럽경제공동체(ECC)로, 다시 유럽연합(EU)으로 발전했다고 나와 있다. 앙숙이던 독일(당시 서독)과 프랑스가 화해함으로써 전쟁 없는 유럽을 만들려 한 시도가 진화를 거듭해 현재의 유럽연합이 됐다는 것이다.

유럽 연합의 두 주인공, 미국과 독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일면적인 이야기다. 여기에는 우선 미국이라는 중요한 주인공이 빠져 있다. 유럽 경제 통합이 막 시작될 무렵 미국은 대서양 양안에서 군사적 패권을 다지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하 나토)를 수립했다. 유럽연합과 나토의 유럽 쪽 회원국은 명단이 거의 겹친다. 유럽 통합이 한 단계 더 발전할 때마다 미국은 나토 회원국들의 유대 강화라는 측면에서 이를 반겼다. 즉, 유럽연합에는 미국의 범대서양 패권 유지 프로젝트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또 다른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어느덧 유럽연합 내 패권국이 된 독일이다. 1970년대에 브레턴우즈 체제 해체로 심각한 통화 불안정을 경험한 서유럽 각국은 경제 통합의 궤도를 통화 통합 쪽으로 급선회했다. 단일통화 구축은 단일시장 중심의 기존 경제 통합 노력과는 구별되는 새로운 프로젝트였다. 통화 통합의 굳건한 토대이자 기준은 서독 마르크화였다. 여기에 예기치 못했던 독일 통일이 맞물렸다. 그러면서 유럽연합은 유로화를 바탕으로 독일의 패권이 관철되는 무대로 변질됐다.
  유럽연합이 여러 프로젝트들의 결합체이기 때문에 브렉시트의 영향도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단일통화 프로젝트를 중심에 놓고 보면, 브렉시트는 그렇게 심각한 위협은 아니다.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이면서도 유로화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즉, 유로존 국가는 아니었다. 만약 영국이 유로존 국가였는데 이번에 국민투표로 탈퇴를 결정했다면 이는 유로존 붕괴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국이 유럽연합 회원국이면서 유로존에는 가입을 기피해왔기 때문에 브렉시트는 단일통화 프로젝트를 흔들기는커녕 정반대의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독일, 프랑스와 막상막하의 경제력을 지닌 유럽연합 회원국 영국이 유로존 바깥에 남아 있는 상황은 단일통화 프로젝트의 교란 요소였다. 그런데 브렉시트로 이 교란 요소가 사라진 셈이다. 영국이 탈퇴한 덕분에 유럽연합과 유로존은 이제 확실하게 일체화됐다(스웨덴 등 또 다른 비유로존 회원국들이 있기는 하지만 경제 규모가 영국에 미치지 못한다). 단일통화 프로젝트가 유럽연합의 핵심임이 분명해졌고, 독일의 패권도 다시 확인됐다. 만약 작년에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성사됐더라면 벌어졌을 일과는 정반대 결과라 하겠다. 독일이 브렉시트에 시큰둥한 반응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국이 빠진 자리, 틈은 벌어지고

  그러나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유럽연합에는 단일통화 프로젝트 외에도 다른 여러 역사적 프로젝트가 교차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군사적 토대는 유럽연합군이 아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다. 이 군사동맹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반자는 영국이다. 말이 동반자이지 ‘푸들’이라 불릴 정도로 영국은 대서양 동쪽에서 미국의 충실한 하수인 노릇을 해왔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미국의 지령이 관철되도록 만드는 안전판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게 됐다. 가장 당황한 쪽은 미국이다. 물론 영국이 빠졌다고 해서 나토-유럽연합 관계가 당장 크게 흔들릴 일은 없다. 남아 있는 프랑스와 독일도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는 나라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이 빠지는 바람에 나토와 유럽연합의 구성에 상당한 틈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가뜩이나 독일의 패권이 지나치게 강화됐는데 이렇게 예기치 않은 틈이 생겼으니 미국으로서는 범대서양 동맹의 유지에 빨간 불이 켜졌다고 느낄 만하다.
  이 점을 감안하면, 실은 독일도 마냥 안심하고 있을 처지만은 아니다. 어찌 보면 독일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 깊이 의존한 덕분에 유럽연합 안에서 경제‧정치적 패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차 대전 패전국인 독일은 자신의 경제‧정치적 우위가 군사적 실력으로까지 연결됐을 때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영국이 주축이 된 나토에 올라탄 채 유로화로 다른 유럽 국가들을 복속시키는 것이야말로 독일에게는 최적의 세력 균형이었다.
  브렉시트는 이 최적 조건에 보기 흉한 금이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유럽연합 안에 영국은 없다. 프랑스와 다른 여러 2류 국가들은 영국 없는 유럽연합 안에서 독일과 마주해야 한다. 독일이 군사 강국이 되려는 의지가 없다 해도 독일을 바라보는 이들 나라의 시선에 의심과 긴장이 짙어지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했던 독일의 경제 패권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생길 수 있다. 멀리 보면, 브렉시트로 말미암아 유럽연합의 원심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브렉시트가 유럽연합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와 중장기를 나눠 바라봐야 한다. 브렉시트는 단기적으로는 유로화 중심의 현 유럽연합 질서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오히려 독일 패권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측면마저 있다.
  그러나 중장기 전망은 다르다. 브렉시트는 일단 나토-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에 균열을 가했다. 이 균열만으로 구조물 전체가 흔들리는 일은 없겠지만, 여기에 다른 요인들이 결합될 경우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가령 남유럽 은행-재정 위기가 이탈리아까지 덮치거나 러시아에 대한 대응을 놓고 독일과 프랑스의 이견이 불거진다면? 포스트-브렉시트 상황에서 이런 위험이 닥친다면 아무래도 독일 중심 질서에 대한 이반이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연합이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에 더욱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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