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휘 / 심리학과 교수

[교수칼럼]

나의 선택, 내 안의 민주주의

김재휘 / 심리학과 교수

 

민주주의라고 하면 제일 먼저 다수결 원칙이 떠오른다. 학급에서 반장을 뽑는 선거부터 대통령을 정하는 선거까지도, 우리는 가장 민주적인 절차로 알고 있는 다수결로 정하고 있다. 그럴듯하다. 가장 공정하고 타당한 방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선거와 같은 정치행위가 아니어도,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선택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친구들과 여행을 어디로 갈 것인가, 회식장소를 어디로 할 것인가 등에서 우리는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하고 잘 따른다. 다수결이 바람직한 선택 결과를 가져온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추구하는 목적(가치)을 무심코 잊어버리고 수단(절차)에만 주의를 기울인 적은 없는가.

다수로 구성된 집단 내에서의 의사결정이 아닌, 여러분 개인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보자. 아침에 일어나 어떤 옷을 입을까 결정할 때도 요즘 유행하는 옷을 선택하고, 점심 메뉴 하나를 정할 때도 주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점과 메뉴를 쫓아 선택하는 것을 보면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대학원생인 여러분들이 제1, 2 외국어로 어떤 것을 선택하고자 하는지, 어떤 직장을 선택하려고 하는가에 대해서도 다수결 원칙의 지배를 받는 듯하다.

그런데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정하고, 점심 메뉴를 정하고, 외국어로 무엇을 선택할지, 어떤 직장을 선택할지 등과 같은 대다수의 선택은, 우리 주위의 타인들을 포함한 다수결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의 다수결을 따르면 충분하고 그것이 더 민주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알람시계를 사러 매장에 간 적이 있다. 많은 시계들을 앞에 두고 고르기를 수십 분. 내 안에서도 시간이 정확한 시계를 원하는 ‘나’, 세련된 디자인을 원하는 ‘나’, 가격이 싼 시계를 원하는 ‘나’, 알람 소리가 커야 한다는 ‘나’, 견고해야 한다는 ‘나’ 등과 같이 수많은 ‘나’의 주장이 의사결정에 뛰어들어 외치고 있다. 이들을 무시하고 다수의 타인이 선호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때 복수의 주장 중에서 어떻게 다수결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심리학에는 ‘해석수준(construal level)’이라는 이론이 있다. 어떤 현상이나 대상에 대해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게 되고, 이런 거리감 수준의 차이에 따라 행동 반응과 선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상위수준에서는 대상의 추상성에 주목하고 중심적인 속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하위수준에서는 대상의 실행가능성이나 주변적인 속성으로 판단한다. 선택(구매)할 때, 값싸고 디자인이 예쁜 알람시계가 눈에 띄어 구매하게 되지만, 구매 후에 집에서 사용하다 보면 알람시계는 역시 견고하고 소리가 커야 한다는 것이 모두가 느끼는 정답이다. 우리의 선택행동 결과가 보다 바람직하고 궁극적인 목적(가치)을 제공하려면 실행가능성인 ‘어떻게(how)’보다는 행위의 근원적 목적인 ‘왜(why)’라는 표상이 더 중요하다.

여러분도 선택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다수의 타인이 선택하는 것을 눈여겨보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내가 주장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다수결의 원칙은, ‘내가 무엇 때문에(why) 이런 결정을 하려고 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기준으로 정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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