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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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바라지 골목, 지워진 역사박은선 /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김현진 편집위원  |  kim199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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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호]
승인 2016.09.06  23: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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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으로 통하는 샛길, 골목 ①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골목에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고, 시간이 흘러 다시 거대 기업이 들어선다.
공간을 두고 싸우는 갑논을박은 철저하게 자본의 원리에 따라 진행된다. 거대한 도시에서 틈새로 들어오는 자본의 흐름을 더 이상은 막을 수 없다. 왜 자본은 골목을 파괴하는가. 우리는 왜 골목을 찾아가는가. <편집자 주>

 

옥바라지 골목, 지워진 역사

박은선 /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4대문 밖, 옥바라지 골목으로 불리던 마을이 사라졌다.
‘옥바라지골목 보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서는 이 마을의 역사가 일방적으로 지워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대책위에서는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지역의 역사를 연구·기록해 서울시와 공유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서울시와 건설사 재개발 조합은 이 사업이 적법한 사업이고, 역사적 가치가 없으므로 조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결국 마을에 대한 서울시의 실질적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2016년 4월 1일 전면철거가 시작됐다. 거의 한 달 만에 모든 건물이 철거되었고 올해 5월 17일에는 옥바라지 골목 마지막 여관인 구본장여관의 강제집행이 이루어졌다.
재개발 조합이 불법 고용한 용역 깡패 100여명이 동원된 강제집행은 한마디로 생지옥이었다. 집행은 물건에 대한 집행이지 사람에 대한 집행이 아니다. 그러나 용역 깡패들은 소화기를 얼굴에 뿌리고, 쇠파이프로 유리창을 깨는 등 폭력행위를 버젓이 했고, 삶터를 잃은 구본장 가족들, 구본장에 연대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과 예술가들은 몸과 마음을 다쳤다. 강제 집행 소식을 접하고 현장을 방문한 박원순 시장은 “이 공사는 없습니다. 내가 소송 당해도 좋아요” 라고 선언했다. 시민들은 환호했다. 이 마을의 아파트 계획이 취소되고,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바람과 달랐다. 공사가 멈춘 후 대책위 측은 이 마을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여, 아직 철거되지 않은 건물만이라도 남겨 그곳에 원주민이 살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재개발조합(시공사 롯데건설)은 8월 21일, 일방적으로 마지막 남은 1920~30년대 한옥 건물의 철거를 강행했으며, 서울시와 재개발 조합은 주민들이 반드시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까지 폭력적 재개발에 저항하던 두 가구는 용역폭력과 재개발 조합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네로 이주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들은 근처 동네의 전셋집조차 얻기 힘들고, 다시 근처에서 장사를 하기도 힘든 상황이 됐다. 재개발은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옥바라지 골목을 지키지 못한 데는 서울시의 책임도 크다. 애초에 가난한 동네라 별로 문화재라 할 만 한 게 없고, 대부분 일본식 한옥이라 조사할 가치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서울시가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동안 조합은 일부러 오래된 한옥 건물들부터 철거했다. 옥바라지 골목, 즉 현저동 일대는 비단 옥바라지를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학생과 노동자 등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던 성 밖 마을이었다. ‘1930년 여학생 만세운동 주모자’ 최복순 하숙집터와 사회주의 계열 항일 운동가들이 묵었던 영천여관이 있던 100여년 된 동네였다. 또 인혁당 사건의 피해 유족들이 묵었던 여관이 있던 골목이다. 그 집들은 올해 4월 1일까지만 해도 대부분 보존되어 있었다.

학생만세운동, 공산당재건사건의 마을

1930년 학생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이화여자보통고등학교 4학년 최복순, 휘문고 만세운동 가담자 심홍근, 만세운동으로 인해 퇴학을 당하고 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홍병모의 집 모두 현저동 45번지였다. 뿐만 아니라 1930년대 광주와 서울의 항일학생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던 신간회 간사 한봉석의 집, 광주학생운동의 배후로 지목되어 옥고를 치른 차재정의 집, 글벗두레를 조직하여 공주 만세운동 및 휴교운동 배후로 지목되었던 정룡산도 현저동 45~47(현 유성장)에 거주하였다. 조선공산당과 연루된 항일 운동가들이 주로 묵었던 영천여관도 불과 4월 1일만 해도 남아있었다. 그간 독립운동에서 사회주의 계열 운동과, 193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연구와 조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이 마을은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장소다. 박완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감옥소 앞마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가 되는 마을의 흔적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물리적 증거가 사라진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가.
이 모든 비극은 아파트 개발에 모든 특권과 특혜를 준 국가와 법, 그리고 부동산 투기에 눈이 먼 사회의 욕망 때문이다. 아파트 재개발 사업은 도시정비법에 공공사업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공공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시의 경우 원주민 재정착률은 재개발 10%, 뉴타운 8∼15%(시민참여정책연구소, 2008)밖에 되지 않는다. 공공사업이라 하면 국가나 시가 주도해야 하지만 재개발 사업의 주체는 “재개발 조합”이다. 즉 개인의 이익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추진하므로 개발사업이 역사·문화·생태를 위협한다 해도 사회적으로 책임질 필요가 없다. 옥바라지 골목 재개발은 재개발사업을 주도하는 조합 및 건설사의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무악 2구역의 경우, 재개발 조합은 역사, 문화적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심지어 그런 주장을 하는 주민들을 인신공격하였다. 그리고 서울시가 재개발 조합과 롯데건설에 남겨달라고 권고한 건물들부터 고의적으로 부수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그들은 아직 강제집행정지 항소 중이었던 구본장여관에 용역 깡패 100여명을 임의로 고용하여, 연대하러 온 시민들을 폭력으로 위협하고 내쫓았다.

   
 

옥바라지의 연대 정신은 지금부터

옥바라지 골목은 비록 허물어졌으나 시민들과 대책위는 계속 이 가난한 동네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옥바라지 골목 보존 운동의 성과를 크게 두 가지로 본다면 첫째, 주민과 시민들이 직접 지역의 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고 지키려고 투쟁한 것, 다른 하나는 폭력적 재개발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서울시가 시정하도록 그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서울시는 “정비구역 전수조사를 통한 역사문화유산 보존 및 멸실 논란 사전 차단” “무악 2구역 진행과정 기록 백서 제작” “정비사업의 강제철거 문제 근본적 해결” 등을 마련하겠다 발표했다. 현재 옥바라지 골목은 거의 다 헐리고 물리적 흔적은 남지 않았다. 쫓겨나지 않고 그 마을에 살게 해달라는 원주민들의 간절한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국에서 한국전쟁 이전 건축물이 3%가 채 안 되는 현실에서 도시 서민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남은 오래된 동네를 한켠이라도 지키지 못한 것은 씁쓸한 일이다.
옥바라지의 정신은 감옥에 갇힌 자를 살리기 위한 감옥 밖 연대 행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깡패들에게 돈 몇 푼만 쥐어주면 사람을 쉽게 내쫓을 수 있다는 것을 옥바라지에서 보았다. 이것이 창살 없는 감옥이 아니고 무엇일까. 시민들은 대형 건설사와의 싸움에서 고통받는 주민들을 지지하고 응원했다.
옥바라지 골목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은 이제 시작이다. 물리적 공간이 사라진 현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록하고 의미화해야 하는가. 도시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 치열하게 물어야 한다. 도시의 권리란 응당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주장하는 자들이 그 가치를 획득해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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