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민 /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특집ㅣ기본소득]
4. 대안을 꿈꾸다

하루가 다르게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덧붙여 자동화시대의 등장도 소득격차를 심화시키리라 예상된다. 명쾌한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주목받고 있다. 과연 기본소득은 정말 불평등한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기본소득이 어떻게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기본소득 -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자본주의

금민 /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저성장과 장기침체는 이미 ‘뉴 노멀’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로존이 모두 양적 완화에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지만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 모두 뒷걸음질 쳤다.

세계경제의 장기침체와 파국의 그림자

총수요가 줄어들면서 일본과 유로존은 이미 디플레이션 상태이고 상대적으로 양호한 미국도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대로 ‘준 디플레이션 상황’이다.
내수와 수출이 동시 침체하면서, 과잉 공급이 심화되었고 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년 대비 설비투자는 1분기에 4.5%, 2분기에는 2.6% 감소했다. 디플레이션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국이 내린 처방은 통화정책이었지만 실효는 없다.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다. 통화량 부족이 원인이라면 돈을 더 풀어야 하겠지만 소득 부족으로 소비가 위축된 것이 원인이라면 처방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침체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잘라 말하자면 바로 소득불평등이다. 신자유주의는 OECD 주요국에서도 일자리를 감소시켜 불안정노동을 확대하고, 노동소득분배율을 지속적으로 하락시켰다. 소비를 지탱시킨 것은 가계부채와 자산 거품이었다.
2008년 이후 중심국의 부채의존성장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신흥국도 수출절벽에 부딪치고 세계경제 전체가 장기침체기에 들어섰다. 소득불평등과 부채의존소비를 그대로 두고서 중심국 경제가 통화정책만으로 디플레이션 수렁을 벗어날 수는 없다. 신흥국 역시 수출 수요가 줄었기 때문에 내수의 문제를 소홀히 할 수 없고 이를 위해서는 임금억제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소득불평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 비전통적 통화정책만으로는 당면한 파국을 미루는 역할을 할 뿐이다.

분배의 개혁과 새로운 성장방식

 
 

최근 들어 소득불평등이 저성장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의 라보이에(M. Lavoie)와 스톡햄머(E. Stockhammer)는 친노동적 분배가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임금주도성장론을 주장했다. 2014년에는 OECD가 비슷한 입장을 표명했고, 심지어 2015년에는 신자유주의 전도사 IMF도 “상위 20%의 점유율이 1% 증가할 때 이후 5년 동안 GDP는 0.08%p 감소”하는 반면, “하위 20%(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점유율이 1% 상승하면 0.38%p의 고성장”으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남는 문제는 소득불평등을 해소할 구체적인 방법이다. 국제노동기구의 스톡햄머는 임금격차 해소, 최저임금 인상 등을 제안했다. 미국과 일본의 최저임금 인상, 독일의 최저임금제 도입 등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 이는 분명 근로빈곤층의 소득을 향상시켜 소비를 늘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의 원인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어 OECD 주요국가에서 노동소득분배율, 즉 GDP에서 노동소득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하락한 이유는 불안정노동이 확산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자리의 희소화, 불안정노동의 확산, 임금격차 등의 문제를 해결할 총체적인 전환이 이루어질 경우에만 노동소득분배율이 상승할 것이며, 소비가 더 이상 부채에 의존하지 않고 가계소득에 근거하게 될 것이다. 임금격차를 만드는 불안정노동체제가 존속하는 한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은 구조적인 문제로 남는다.

기본소득과 가계소득기반 경제

1,200조를 넘어선 한국의 가계부채는 이미 위험 수준이다. 저금리로 부채를 늘려 소비를 지탱하는 정책은 한계에 달했다. 가계 가처분소득에 근거한 소비 모델로 전환할 골든타임이다. 여기에 기본소득은 분명히 기여한다. 기본소득은 노동과 무관한 소득이다. 그것은 정치공동체로부터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개별적·정기적으로, 아무런 조건(일체의 자산 심사나 노동 강제) 없이 지급된다. 기본소득은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가계소득기반 경제를 형성한다. 위로부터 아래로의 재분배를 강화하는 조세정책과 기본소득을 결합시킨다면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물론 임금주도성장론과 같은 방법도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임금주도성장을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늘려야 하고 불안정노동 비중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세계시장의 총수요가 줄어들어 투자가 얼어붙은 시대에 신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공상에 가깝다.
국가 주도의 공공투자도 승수효과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나아가 산업생산의 확대는 이미 생태적 한계에 부딪혔다. 일자리가 감소하는 추세에서 불안정노동의 비중을 줄이는 것도 난망하다. 정규직화는 개별 기업 차원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전환 속에서만 가능하다. 기본소득은 이런 전환의 열쇠가 될 수 있다.
기본소득과 노동시간단축 및 일자리 공유의 연동은 매우 오래된 생각이다. 1990년대에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앙드레 고르(Andre Gorz, 1923~2007)가 그러한 발상을 펼쳤다. 그는 기술혁신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지만 취업자는 장시간 노동을 하는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여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공유하고, 노동시간단축으로 줄어든 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보상하자고 제안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이 더 떨어진 현재 시점에서는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 공유를 한 축으로 하고 기본소득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정책패키지에 최저임금 인상을 덧붙여 노동체제전환의 트라이앵글을 설계할 수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기본소득이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에 임금보조금을 주는 꼴이 되지 않도록 한다.
기본소득은 노동자의 개별적 협상력을 높일 것이고 결과적으로 임금상승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단순히 2차 분배의 개선만이 아니라 일자리·임금·노동시간 등 1차 분배의 개선 효과도 낳는 것이다. 만약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이 가능할 만큼 기본소득이 충분한 액수로 지급된다면 그것은 단지 내수를 살리는 응급처방이 아니라 불안정노동체제를 넘어 지금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노동하면서 원하는 모든 이가 일자리를 얻고 충분한 소득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근본적인 처방이 된다.

자본주의 구하기와 탈자본주의

장기침체기에 인공지능 개발과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적은 투자와 최소의 고용만으로 창업하는 혁신기업들이 증가하는 것으로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막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시작된 일자리 희소화, 불안정노동, 노동소득의 감소와 가계부채 증가는 더 급격하게 진행될 것이다. “자동차가 자동차를 구매하지는 않는다”는 포드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포드주의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총수요 부족으로부터 자본주의를 구할 유력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클린턴 행정부의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의 저서처럼 결국 아사 상태의 자본주의에 링거를 꼽아주는 ‘자본주의 구하기’인가? 분명 그렇다. 하지만 몇 마디 덧붙인다면, 기본소득으로 ‘자본주의 구하기’는 노동을 탈상품화하고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여 좋지 않은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도록 만들며, 자유로운 활동시간의 증대를 통해 민주주의를 활성화하고 문화사회로의 전환을 앞당길 것이다.
임금노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비시장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탈자본주의로 이어질 주체적 역량이 형성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 1930년대 발생한 공황을 자본주의는 전쟁을 통해 벗어났다.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는 않겠지만, 극단적으로 묻는다. 전쟁인가, 기본소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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