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일 / 사회연대저널 편집위원장

[특집ㅣ약탈적 자본주의]

2. 현상을 해부하다

 

본 지면에서는 오늘날 자본주의가 내장한 약탈적 구조를 분석해 본다. 기형적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병폐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 현실을 밀도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기생충적 약탈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본성

 

정승일 / 사회연대저널 편집위원장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를 이끄는 것은 각국의 거대 자산가들이며 이들은 그 재산을 관리하고 증식해 주는 투자은행(증권사)과 은행, 펀드들에 투자한다. 그러한 금융자본주의의 중심이 월스트리트와 런던 시티이다. 한국의 경우 수십억, 수백억 재산을 보유한 상위 1%의 자산가들뿐만 아니라 수천억, 수조 원의 최상위 0.001%의 재벌 가문들 역시 글로벌 자산가 자본주의 지배 블록의 핵심으로 가담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고 있는 약탈적 자본주의


자본주의(capitalism)란 자본(capital) 또는 자산(assets) 소유자들의 이해관계가 최고의 가치(value)로서 물신처럼 숭배받는 가치관이다. 자본주의는 또한 그런 가치관이 지배 원리로 관철되는 제도적 시스템이기도 하다. 아무런 생산적 기여를 하지 않는 불로소득 자산가(rentier)들의 이익이 철두철미 관철되는 ‘rentier capitalism’은 자본주의의 본성인 약탈을 잘 보여준다.
근대 자본주의는 약탈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켰다. 영국은 인도와 아프리카를, 스페인은 남미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그곳의 원주민과 자연을 무자비하게 약탈했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이 나라 백성과 산하를 처참하게 약탈했다. 약탈적 제국주의는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1930년대에 등장한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일본의 파시즘은 타민족과 타인종에 대한 총체적 약탈을 공식화했다.


나치즘과 파시즘의 야만적 약탈에 맞섰던 세계대전과 그에 이어진 식민지 민족해방 전쟁에서 민주주의와 제3세계 진영이 승리함에 따라 과거의 약탈적인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선진국에서도 노동권과 인권이 존중되는 경제민주주의가 복지국가와 함께 상당히 발전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이래 세계 각국에서는 과거의 약탈적 자본주의(predatory capitalism)가 부활하였다. 약탈자들은 도처에 있다. 그것은 IMF와 세계은행, WTO 같은 국제기구들에도 있으며, FTA를 밀어붙인 미국과 한국의 정부 관료들, 그 뒤에 숨은 초국적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에도 있다. 또한 그들은 각종 공모 펀드와 사모펀드·헤지펀드의 매니저이기도 하며, 그런 펀드에 투자하는 대자산가들(재벌 가문 포함)과 중소 자산가들이기도 하다.
약탈적 자본주의의 전면화야말로 오늘날 자유시장 자본주의(free market capitalism)의 특징이다. 또한 그것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에 나오듯이, 미국과 유럽의 부유한 선진국들에서도 억대 자산가들의 재산과 소득은 날로 증가하는데 반해 서민들의 부와 소득은 30년째 그대로 멈추어 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세포는 법인 기업이며, 세포의 건강이 생명체의 유지와 성장에 필수적이듯이 법인 기업이 건강하게 유지될 때 자본주의 시장 경제 또한 건강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약탈적인 자본주의는 스스로 자기 몸의 세포를 파괴하고 있다. 법인 기업을 약탈하여 망가뜨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환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법인 기업 약탈은 사모펀드가 회사를 인수한 경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과거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에 인수된 외환은행과 위니아만도, 대우전자 등이 그런 사례이다. 최근에는 매쿼리에 인수된 서울지하철 9호선, MBK에 인수된 C&M과 홈플러스의 사례도 있다. 예컨대 홈플러스를 인수한 사모펀드 MBK는 지난 7월, 2년 연속 적자를 낸 홈플러스에 고배당을 강요한 바 있다.
법인 기업에 대한 약탈은 그대로 그 법인 기업에 근무하는 종업원들에 대한 약탈로, 그리고 그 법인 기업과 거래하는 협력업체들에 대한 약탈로 이전된다. 예컨대 홈플러스와 이마트, 롯데마트를 비롯한 모든 대형마트들은 최저임금을 엄격히 준수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납품업체들에게는 약탈적으로 낮은 납품가격을 강요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약탈적 저임금과 약탈적 납품가격(하청단가 인하)이 마치 한국 재벌의 특징, 즉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자본주의의 특징인 양 말한다. 그리고 마치 미국을 모델로 하는 재벌 개혁을 하면 약탈적 자본주의가 근절되고 ‘건전한 자본주의’가 등장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늘날의 미국 자본주의, 즉 근대를 넘어 탈근대를 대표하는 슈퍼 자본주의(Super Capitalism: 로버트 라이쉬의 표현)를 대표하는 월마트를 보라. 월마트는 약탈적인 저임금과 납품가격으로 악명 높다. 삼성전자와 대비되는 미국의 아이폰 역시 비슷하다. 재벌그룹이 아니라, 재벌그룹을 그 일부로 포함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전체가 약탈적이다.

 

약탈적 대출과 글로벌 금융위기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그가 빚 갚을 능력이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돈을 빌려주고는 높은 이자를 물려 채무자를 약탈하는 행위를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대부업체들과 신용카드업체들이 약탈적 대출을 행해 왔다. 채무자들은 원금을 다 갚을 때까지 악착같은 빚 상환 협박에 시달리며 채무노예 인생을 살게 되며 종종 장기매매나 인신매매의 피해를 당한다.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역시 그 근원은 상환능력이 없는 가난한 서민들에게 사기적 방식으로 주택 모기지 대출을 행한 금융회사들의 약탈적 대출이었다.


또한 약탈적 자본주의는 국가가 제공해온 각종의 비영리 공공서비스를 파괴하고 그것을 사적 자본의 약탈 대상으로 만든다. 교육기관과 의료기관, 그리고 전기·가스·철도·지하철·고속도로 등 인간 삶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대기업과 금융자본, 자산가들에게 매각하여 사유화함으로써 사회 공동체를 마음껏 약탈하게 허용한다. 예컨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선진국들은 대학교육을 복지국가 차원에서 비영리 공공서비스로 제공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대학교육을 ‘수익자 부담’ 원칙이라는 미명 하에 사적 서비스로 전환하였고 그 결과 미국을 필두로 대학 등록금이 크게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5년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대학 등록금이 비싼 미국에서는 대학생 10명 중 1명이 학자금 대출을 3개월 이상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미국의 학자금 대출 잔액은 2015년 말에 1조 2천억 달러, 우리 돈 1,484조 원에 달해 최근 10년 동안 무려 3배로 폭증했다. 대학생들이 약탈적 금융자본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그만큼 미국 대학생과 졸업생들의 삶은 빚더미에 올라 있고 평생 그 빚을 갚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판에서 ‘주립대학 등록금 무상화’를 주장한 버니 샌더스 후보가 청년층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년간 등록금이 크게 올라 사립대학의 연간 등록금은 700~900만 원에 달하고 국립대의 경우에도 600만 원이 넘었으며 의대는 연 1,100~1,200만 원에 달한다. 최저임금 월 120만 원의 아르바이트생이 일 년 중 절반을 일해야 겨우 일 년치 등록금을 벌 수 있으며, 생계비까지 벌고자 한다면 아예 학업을 포기하고 일 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이러니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빚이 많다. 작년 6월 기준 대학생 학자금 대출액은 12조 3천억 원에 달했다. 게다가 학자금이 아닌 생활비 용도로 은행권에서 빌린 돈도 1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금융자본주의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 것이다.


베를렌과 케인스는 아무런 생산적 기여를 하지 않으면서 불로소득으로 살아가는 자산가들, 즉 유한계급이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생산적 경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레닌 역시(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기생충적 약탈에 의존하면서 더 이상 생산적 투자자 역할을 하지 않는 자본주의자들은 그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고 비판했다. 오늘날 미국의 샌더스와 로버트 라이쉬도 휴머니즘과 공동체 정신, 노동권과 복지가 발전한 새로운 지속 가능한 생산적 경제가 절실하며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모든 시장 경제가 약탈적인 것은 아니다. 약탈적인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공동체의 번영에 기여하며 복지국가와 경제민주주의가 융성하는 시장경제 또한 가능하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