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특집ㅣ돈의 정신분석학]

1. 욕망의 기원을 파헤치다

 

본 지면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의 형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왜 우리는 이토록 돈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추적해 보고자 한다. 또한, 돈의 탄생과 본래적 의미가 역사와 사회에 따라서 어떻게 변화하며, 인간의 가치와 관계성, 그 사회의 지표로서 기능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배금주의 심리와 돈의 속성

 

김석 / 건국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자유로운 시장 경제에 기초한 자본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돈은 어떤 대상과도 비교 불가능한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돈은 상품의 가치를 균등한 기준으로 표현하는 보편적 척도가 되었을 뿐 아니라, 삶의 목표이자 존재의 실현을 가능하게 해 주는 보증자로 인식된다. 자본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 문화가 전 지구적 현상이 됐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돈이 행복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외국인들보다도 더 높고 지나칠 정도로 돈에 집착한다(‘한국인의 불안이 돈에 절대 권력을 부여했다’, <럭셔리> 2011년 3월 기사 참조). 한국인들은 원래 유교 가치관의 영향을 받아 입신양명이나 사회적 평판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오늘날은 모든 욕망이 돈을 향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돈에 집착하면서도 부자를 존경하지도 않고, 돈 얘기를 하는 것을 터부시한다. 돈에 대한 이런 이율배반적인 심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는 정신분석 이론에 근거해 돈을 특권적 대상처럼 바라보면서도 경원시하는 이중의 심리를 분석하면서 배금주의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돈은 항문기 아이가 집착하면서 더럽게 생각하는 똥이자, 아버지의 권력을 상징하는 절대적 대상 ‘남근(phallus)’이다. 또 돈은 인간관계를 사물화시키고 소외시키는 물신적 대상이기도 하다. 이하에서는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돈의 대표적인 세 가지 속성을 살피면서 돈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인문학적 관점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돈의 세 가지 속성: 똥, 남근, 물신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돈과 똥은 같은 것이며, 타인에 대한 선물의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똥을 싸면서도 똥을 터부시하고 불결하게 생각하는 이중적 심리를 갖는데,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런 태도는 항문기에서 유래한다. 대략 2~3세에 해당하는 항문기 동안 아이는 배변활동에 대한 부모의 간섭과 통제를 경험하면서 똥을 매개로 타인과 사회적 규칙에 대한 성격과 태도를 형성한다. 부모가 원하는 방식대로 배변활동을 하면서 무의식 속에서 똥을 사랑과 선물의 의미로 수용하는 아이는 타인에 대해 관용적이고 베푸는 태도를 갖는다. 반대로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아이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거나 일부러 몸을 더럽히는 방식으로 공격성을 표현한다. 또 대변을 억제하면서 아이는 쾌감을 맛보거나 배변에 간섭하는 타인에 대한 거부의 태도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똥은 쾌감을 주는 대상이면서 우리를 더럽히는 배설물이기도 한데, 이런 이중적 속성이 무의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매개하는 돈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항문기는 사회적 규칙과 타인의 요구를 최초로 수용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성격 형성에 중요하다. 프로이트는 깔끔함, 인색함, 완고함을 항문기의 대표적 성격으로 거론하는데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특징을 결정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대형 사건이나 인명 피해는 타인에게 베풀지 않고 쾌감을 위해 돈(똥)을 쌓아두기만 하려는 항문기의 인색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똥과 마찬가지로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한데 그것이 목적으로 바뀌는 순간 인간은 탐욕의 노예가 된다. 항문기 성격은 깔끔함과 더러움처럼 양극단을 다 포괄하는데 돈에 지나치게 매달리거나 낭비하는 태도는 결국 쾌락에 집착하는 이기심의 발로이다.


다음으로 무의식적 차원에서 보면 돈은 남근기 아이가 집착하는 성적 욕망의 대상인 남근이다. 남근은 실제 성기인 페니스(penis)가 아니라 아이가 동경하는 아버지가 지닌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기호이다. 또 남근은 신체에서 분리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며, 아이가 생각하기에 최초의 타자인 어머니의 욕망이 향하는 특권화된 대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절대적인 상징물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결여의 기표가 바로 남근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돈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강한 힘과 지위를 보증하는 남근의 위상을 차지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아이처럼 현대인들은 돈을 욕망의 대상처럼 동경하며 그것만 있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한다. 명품이나 외제차와 같은 사치품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고 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크 라캉에 따르면 남근은 구체적 대상이 아니라 욕망을 채울 것처럼 환상을 작동시키면서 인간을 욕망의 굴레 속에서 순환하게 만드는 결여의 등가물이자 미끼이다.


상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할수록 욕망은 더욱 커지면서 더 비싸고 더 차별화된 상품의 소비를 맹목적으로 좇게 된다. 이처럼 비싼 상품으로 자신을 과시하면서 외형에 집착하는 소외된 태도를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시장적 정체성’이라고 비판한다. 장 보드리야르가 분석한 것처럼 현대인은 상품이 아니라 그것이 표현하는 기호를 소비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려고 하는데 라캉은 이를 상상적 욕망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므로 돈의 남근적 속성을 잘 이해하면서 주체의 욕망을 정화할 필요가 있다. 욕망은 대상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채울 수 없는 존재의 결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돈은 물신(物神, fetish)적 대상이다. 물신이란 마치 신성한 물건처럼 초월적이고 신비한 지위를 차지하는 대상을 뜻한다. 원래 마르크스가 사용하던 물신이란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탈인격화시키고 물화시키는 대상을 뜻한다.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결여를 부인하고 감춰주는 도착(perversive)의 대상이 바로 물신이다. 도착증자들은 여자, 즉 어머니의 거세를 부인하기 위해 특정한 대상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큰 의미를 부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가장 탁월한 물신적 대상으로,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순수하게 경제적인 분업관계로 만들면서 인격성을 제거할 뿐 아니라 모든 가치를 획일화하는 초월적 대상의 역할을 한다. 게오르그 짐멜이 지적한 것처럼 돈은 경제행위에 광범위한 비인격성을 부여하면서 개인을 전근대적 관습에서 해방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물화시키기도 한다.


탈인격화가 진행될수록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점점 착취와 배제 관계로 변질되고, 인간이 만든 사물 세계도 인간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으면서 점점 더 인간을 물화시키는 소외 현상이 심해진다. 돈은 사람의 관계를 사물화시킬 뿐 아니라 생산물에 투영된 인간적 가치를 획일화된 가치로 균일하게 평가하면서 비인간적 문화를 낳는 주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돈의 본래 속성이기보다는 객관화된 물격 문화와 인간 영혼의 내적 상태를 반영하는 주관 문화 간의 상호작용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물신주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적 가치를 복원하면서 돈에 대한 바른 태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돈의 인문학이 필요

 

돈이 여러 가지 부정적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중세 기독교인들처럼 결벽증적으로 돈 자체를 터부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짐멜이 이야기한 것처럼 돈은 신분과 같은 전통적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경제주체로서 자유를 향유하는 개인을 등장하게 만들어주었으며 상품경제의 확립을 통해 근대라는 시대를 여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의 속성을 이해하고, 어떻게 돈을 잘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인문학적 지혜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돈을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마치 항문기에 똥 자체가 아니라 배변활동에 대한 주체의 경험과 태도가 아이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처럼 돈에 대해 현명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진가는 그것을 지닐 때보다 사용할 때 제대로 발휘된다고 말했다. 돈의 가치는 그것을 잘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잘 쓸 때 생긴다. 항문기의 인색함과 완고함은 돈(똥)을 모으기만 하고 절대 방출하지 않으려는 자기중심성 때문에 생긴다. 마찬가지로 인간적 가치보다 돈 자체를 소중히 아는 천민자본주의 문화는 삐뚤어진 항문기의 완고함에서 비롯된다. 돈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의 자리에 되돌려 놓아야 하며, 인간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주체적, 윤리적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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