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애 /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

브렉시트 ① 왜 브렉시트인가?
 2016년 6월 23일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유럽 연합 탈퇴가 가결되었다. 주요 증시와 통화는 요동쳤고, 세계 경제의 미래는 한층 더 불확실해졌다. 브렉시트는 이제 세계인의 고민이다. 이에 브렉시트의 경제·사회·역사적 배경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EU의 역동과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고, 이것이 동북아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타진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왜 브렉시트인가? ② 브렉시트 이후의 유럽 ③ 영국의 내적 갈등 ④ 브렉시트와 한국

왜 브렉시트인가?  

 전선애 /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

 지난 6월 23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영국은 51.9%의 찬성으로 EU 탈퇴(브렉시트, Brexit)를 결정했다. 투표에서는 학력·소득·연령·지역별로 상이한 표심이 드러났는데, 유럽통합으로 수혜를 받는 계층이 주로 EU 잔류를 지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즉, 고학력 주민비율이 높은 선거구일수록,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젊은 연령층일수록 EU 잔류를 지지했으며, 금융 중심지인 런던에서는 60%가 EU 잔류를 선택했다. 반면, 동유럽 이민자에 의해 일자리를 위협받는 저숙련 영국인 근로자들, 치솟는 런던의 집값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저소득 지방민들은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다. 투표결과가 EU 잔류를 예상했던 전문가의 예측과 다르게 나오자 금융시장은 크게 동요했고, 영국 정치계도 혼란에 빠졌다.
 전통적으로 제국을 통치한 경험을 갖고 있는 영국은 대륙과의 통합에 회의적인 국민정서를 지니고 있다. 영국은 EU 회원국 중 역내 교역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가장 많은 역외투자를 유치하고 있으며, 유로존 위기 이후 대륙 회원국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경제적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영국 내 이민자 문제 및 EU 예산에 대한 분담금 납부문제 등이 이번 투표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역내 노동이동의 자유는 EU 단일시장의 근간을 형성한다. 1957년 제정된 로마조약(EC 조약)은 유럽공동체(EC: European Community)를 공동시장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공동체 내에서 상품 및 서비스, 자본 그리고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있다. 2004년 EU가 중동부 유럽으로 확대될 당시 영국은 아일랜드, 스웨덴과 함께 역내 노동이민을 전면적으로 허용했는데, 2008년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를 겪으면서 역내 이민의 유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주민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영국의 경우 이주민 복지지출에 따른 재정부담 및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부작용이 상당했다.
EU 이주민들은 숙박, 식음료, 제조업 분야뿐만 아니라 금융서비스 분야까지 진출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신규 일자리 중 대부분을 동유럽 이민자들이 차지하자, 영국민들은 고용시장에서 이주민을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2015년 시리아 난민사태와 파리·브뤼셀에서 발생한 테러, EU 집행위가 제시한 난민할당제 등의 문제에 대응하여 영국 내 언론이 정책주권 및 이민문제를 부각시키면서 브렉시트 찬성 여론 조성에 성공한 점도 투표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늘어나는 EU 예산 또한 투표결과에 영향을 미쳤는데, 2014년 기준으로 영국은 141억 유로를 지출하여 총 분담금의 10.6%를 차지하지만 수혜 비중은 EU 내 총 수혜액의 5.4%에 불과하다. 2004년 이후 중동부 및 남부유럽 국가들이 EU에 가입하면서 이들 지역에 대한 기금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자 영국의 EU 예산 기여금의 규모도 급격히 커졌다.

섬과 대륙, 영국과 EU

 대륙주도의 통합에 대한 영국의 반감은 그 기원이 오래된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자유무역에 기초한 단일시장에는 찬성하나, 정치적 통합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영국과 EU 간 바람직한 관계를 묻는 질문에 대해 영국민은 ‘정치적 결합 없는 경제관계 강화’를 가장 선호(37%)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최근 들어 이러한 성향은 더욱 커졌다.
 1958년 프랑스와 베네룩스가 주도하여 출범시킨 유럽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에 영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는 관세동맹인 EEC 회원국은 공동통상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 관세주권을 공동체로 이양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이후 EEC가 발전함에 따라 유럽의 공동시장에 참여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고자 영국은 196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EEC 가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영국을 ‘트로이의 목마’로 비유할 정도로 영국의 EEC 가입을 꺼려했다. 영국은 드골 대통령의 사임 이후인 1972년에야 EEC에 가입할 수 있었다. 이후, 영국은 EU의 시장통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1980년대 중반 유럽단일시장 추진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대륙주도의 유럽통합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 반복되었다. 특히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EU의 권한이 크게 확대되자 EU의 발전이 국민국가 및 민족정체성을 침해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 체결 당시 영국은 고유한 ‘통화주권’을 보유하기 위하여 ‘선택적 탈퇴(opting out)’를 통해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았다.
 유로존 위기를 거치면서 대륙주도의 유럽통합에 대해 영국의 거부감이 더욱 강해졌다. 유로존 위기는 통화공동체로서 유로존의 위상을 약화시켰고, 재정위기에 봉착한 남유럽 국가에 대한 막대한 지원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독일주도의 재정협약(Fiscal Compact)이 추진되고 준칙에 의한 통합이 한층 강화되었는데 이러한 EU의 개혁방향은 영국의 전통적인 입장과는 괴리가 있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 버리고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는 다분히 정치적 이벤트의 성격이 짙었다. 2015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하여 단독과반을 확보한 보수당의 캐머론 총리는 브렉시트와 관련하여 보수당이 분열되고 EU에 대한 여론 또한 악화되자, 2013년 이후 또다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제안하였다. 2015년 11월 캐머론 총리는 ‘더 긴밀한 연합(ever closer union)’ 반대 등을 제시하면서 영국이 EU에 잔류하기 위해서는 EU가 개혁되어야 함을 촉구하였고, 2016년 2월 EU 정상회의에서 최종적인 양보를 이끌어 낸 직후 바로 6월 23일을 국민투표 날짜로 발표하였다. 잔류 쪽으로 투표결과가 나올 경우 EU에 잔류하기 위한 명분과 함께 보수당 내 강경파를 설득시킬 근거를 얻고, 나아가 EU 내에서 영국의 특수지위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향후 대(對) EU 협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EU 탈퇴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시장이 더욱 통합되면서 일자리를 잃고 불이익을 받는 계층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EU 탈퇴 움직임이 다른 국가로 확산될지, 아니면 영국의 EU 탈퇴를 계기로 오히려 유럽의 긴밀한 통합이 더욱 강화될지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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