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7.3.10 금 02:48
특집
통장이 가난한 자에게는 빚도 없나니 - 강사로 살아남기
정윤환 편집위원  |  bestss20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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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호]
승인 2016.09.06  13: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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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판]

통장이 가난한 자에게는 빚도 없나니 - 강사로 살아남기


 공부를 계속하는 대학원생들에게 한 번쯤 시간강사라는 제의가 들어오곤 한다. 그러나 강사들의 ‘생계’ 이야기는 그다지 조망되지 못했다. 이번 ‘판’에서는 생계를 꾸려가는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를 해 보고자, 지식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강사들을 만났다. 지난 8월 23일 저녁, 연희동에서 시간강사들의 ‘판’이 열렸다. 연구와 학업을 병행하는, 교편을 잡은 시간강사들의 이야기 ‘판’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강사 3명이 함께했다.

사회자_ 주제가 조금 무거울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혜정(이하 ‘안’)_ 저는 심리학 전공하고 있고요. 2년 정도 됐어요. 박사 수료하고 나서 강의를 시작하게 됐어요.
서준기(이하 ‘서’)_ 사회복지 전공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 수료를 하고 강의는 저번 학기부터 시작했어요. 지방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박은선(이하 ‘박’)_ 저는 서양미술 전공이고, 지금은 도시계획 전공과정을 밟고 있어요. 주로 미술사랑 드로잉 실기 같은 것을 강의했어요. 학교는 건국대랑 서울과학기술대, 국민대 이렇게 나갔고, 서울과기대에서 제일 오래 강의했어요. 8년차가 됐네요. 저도 안식년이 필요한데, 그럼 월급이 안 나오겠죠. (웃음)

그들은 어떻게 시간강사가 되었나

안_ 여기 강사들을 부른 거죠? 시간강사라는 정체성을 직업으로 생각하세요?
박_ 저는 어디 가서 “안녕하세요. 제가 시간강삽니다” 라고 소개는 안 하는 것 같아요.
서_ 저는 필요에 따라서 이야기를 하고요, 평소에는 잘 안 합니다. 저를 시간강사라고 표현하는 게, 그냥 대학원생이라든가 대학원 수료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좀 그렇죠.
안_ 제가 이걸 왜 여쭤봤냐면, 나를 이루는 여러 정체성 중에 시간강사라는 정체성을 가장 입 밖에 꺼내지 않고, 별로 의미 있어 하지 않더라고요.
박_ 갑자기 진행을 하셔가지고 깜짝 놀랐네요. (일동 웃음) 저와 같은 경우 강사 생활은 누가 시키니까 옳다꾸나 하고 했던 거고, 돈 주니까 하는 거죠.
서_ 저도 시간강사는 인맥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한 번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솔직히 거절을 못 하겠더라고요. 최소 네 달 동안 어느 정도의 돈이 들어온다는 건 확실하게 알잖아요? 그래서 하게 됐어요.
안_ 가장 예측 가능한 것이니까요.
서_ 이번에 통장을 만들었는데, 직장을 기입하라고 하더라고요. 프리랜서는 뭐라고 해야 하냐고 물어봤더니 대답을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학교 이름을 썼어요. 나는 시간강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미 시간강사였구나’ 했죠.
안_ 내가 직업을 못 잡았다고 하면 시간강사가 정체성이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대학원생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강사라는 일을 쉽게 못 놓는 것도 있어요. 한 번 거절하면 언제 또 강의 자리가 들어올 지 알 수 없으니까요.
서_ 거절을 하면 ‘얘는 먹고 살만 하구나’ 하는 소문이 쫙 나는 거예요.
박_ 과마다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공대 같은 경우에는 서른이 넘도록 강의자리가 안 나는 경우가 허다해요.
서_ 저희도 예전엔 강의 자리가 굉장히 많은 편이었는데 지금은 정체가 돼요. 그래서인지 들어온 자리를 내칠 수가 없어요.
안_ 그건 저희도 비슷한 거 같아요. 심리학 쪽은 평생교육원 같은 게 있지만 똑같은 일이 일어나요. 자리가 안 나고 하던 자리도 뺏기죠. 미술 쪽은 어떠세요?
박_ 미술 쪽은 대학도 몇 개 없고, 강의자리도 별로 없죠. 졸업하면 예술가는 취직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특히 서울 시내에선 정말 힘들어요. 저도 운이 좋아서 나가게 된 경우고요.

고향에선 눈치, 타향에선 어디가지?

사회자_ 혹시 모교 출강과 타교 출강의 차이가 있나요?
박_ 저는 모교가 아닌 곳부터 출강하기 시작했어요. 본교 출신이냐 아니냐는 전혀 상관이 없고 그냥 공립대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도 제일 많이 주고 강사 휴게실도 있고요. 다른 학교는 강의만 하고 와요. 어떤 사람은 모교 강의가 마음이 편하다고 하는데 저는 더 불편하더라고요. 아는 사람 만날까봐서요.
서_ 저는 타교만 출강했지만 주변에서 모교하고 타교하고 출강 나가는 걸 보면, 강의 사이 비는 시간에 어디에 있을 수 있는지의 차이가 있더라고요. 모교에선 연구실이나 도서관이라도 가 있는데, 타교는 어디 있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강사 휴게실이 있다 해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활용도 못 할 것 같고요.
안_ 모교가 아닌 곳을 가면 이상하게 외로워요. 모교에서 강의하면 눈치 볼 게 많아요. 평판까지 신경 써야 하고요. 그래도 모교는 수업 통제력이 높아요. 예를 들어 기자재에 문제가 있을 때 어디에 연락을 해야 하는지 아니까요. 타교에서는 담당 조교밖에 없어서 일처리가 늦어질 수밖에 없지요. 처우 같은 건 공립대가 좋아요. 제가 강의 나가는 산업기술대는 강의료가 꾸준히 물가 변동률에 따라 올라요. 공지사항이 생기면 전달도 잘 해주고요. 그런데 중앙대는 관리 자체를 안 해요. ‘무단 휴강을 하면 학교가 알까?’ 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예요.
서_ 아는 형이 모 국립대 출강 나가고 저는 다른 사립대에서 강의를 하잖아요? 강의료가 2배 차이가 나는 거예요. 거기는 240만 원을 주고 저는 120만 원을 받아요. 휴게실도 따로 있고, 게스트하우스도 이용할 수 있더라고요. 휴식, 복지 같이 전반적인 것들에서부터 차이가 나요.

연구자의 삶과 사람의 삶

안_ 저는 프리랜서를 오래 했고 이런 불안정한 생활에 익숙했는데, 그나마 강의를 하고 나서 ‘적어도 학기 중에는 강사 일이 안정적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연구와는 다르게 수행해야 하는 것이 명확하면서 확실하게 돈이 들어오는 일인 거죠. 하지만 강의로만 돈을 버는 선생님들은 방학동안 나가는 보험금이 부담스럽다는 말씀을 하세요. 2개월 동안 수입이 아예 없는 거니까요.
서_ 그래서 그 2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이하 알바) 하죠. 프로젝트를 몇 개 같이 했는데 저번 학기엔 프로젝트가 별로 없었어요. 일감이 줄어든 거죠. 방학 중에도 보험료나 세금 나가는 것이 20만 원이 넘어요. 그거 때문에 저는 녹취 알바를 해요. 졸업하신 분들이 맡기는 거예요. 평소에는 석사 후배들을 주는데 차마 그걸 못 주겠더라고요. 방금 전까지도 하다 왔는데, 굉장히 머리가 복잡하죠. 그래도 나름 박사 수료생인데 연구실에 앉아 녹취나 풀고 있고 말이에요.
박_ 대학 강사라고 하면 하면 “돈 좀 벌지 않아?” 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제가 정말 느끼는 것은 ‘월급이 최고구나’ ‘공무원이 최고다’ 하는 거예요. 지금이 최대의 보릿고개라고 할 수 있죠.
서_ 8월에서 9월까지가 제일 난감하죠.
안_ 맞아요. 9월 월급 나올 때까지 힘들어요. 그래서 또 다른 데서 강의가 들어오면 거절하기 힘든 거예요. 두 달 동안 수입이 전혀 없었으니까.
서_ 저는 저번에 교수님들 사이에서 “준기는 공부 안 하고 일만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일을 줄인 것도 있어요.
박_ 지금까지는 잘 버텨왔지만, 강사법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몰라요. 국립대도 좋은데 재계약 안 되면 큰일 나는 거거든요. 강사는 은행 대출도 안 돼요. 어떻게 보면 편의점 알바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_ 맞아요. 계약서 쓸 때 첫 학기에 4개월 쓰고 다음 학기에 4개월 쓰다 보니까 보험사에서 매달 청구서가 나와요.
박_ 보험도 4개월 했다가 2개월 지역 보험 했다가……. 시간 강사가 엄청나게 불안정한 직업이구나 하는 것을 매년 느끼고 있어요.
안_ 몇 개의 예측 가능한 강의만 하면서 빨리 졸업하고 싶은데 방학이 되면 마음이 바뀌죠. 카드명세서가 날아오니까.

요구되는 침묵

안_ 초기에 강사들이 애환이 있는데, 어디 학교에 강의를 나가는데, 강의 경력이 없어서 못 주겠다는 거예요. 강의를 해야 강의 경력이 쌓이는데 말이에요. 마침 지방 어느 대학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왔었어요. 시간당 3만 원이었는데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차비가 더 나와요. 그런데 주변에서 “너 경력 필요하잖아” “여기서 한 학기라도 경력 만들어서 오면 다음 학기 강의하게 해줄게” 식의 압박이 와요. 폐강이 되긴 했지만 공포스러웠어요.
박_ 어떤 학교는 글쓰기 수업이면 1시간 밖에 안 하는 수업이 있거든요? 1시간 해봤자 사립대는 3만 5천원이에요. 그럼 그걸 하루에 몰아주면 되는데, 그걸 이틀에 나눠주는 거죠. 원래는 두 반을 나눠서 할 규모의 수업을 하나로 몰아서 큰 대형 강의로 해 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돈을 더 적게 주니까요. 이런 것 때문에 모 대학에서 시간강사 노조 운동이 활발했어요. 그런데 강사 노조 다들 안 해요. 아무리 진보적이라고 할지라도 쌍용차 노조 연대를 가면 갔지 자기 스스로는 강사노조는 안 드는 경향이 있어요. 일종의 자기검열이죠. 노조에 몸담았다가 강의가 더 이상 안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서_ 연결되는 이야긴데요. 사실 오늘 나오기 싫었어요. 친한 선배 권유로 나오긴 했는데, 혹시 내가 말을 잘못 해서 애매하게 글이 실려 버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요.
박_ 이게 부담스럽거나 무서우면 안 되는데, 여기저기 다 검열의 전당이에요. 학교에서도 프로젝트 못 받을까 봐 교수님 욕 못 하고 교수님도 프로젝트 못 받을까 봐 국가 욕 못 하죠. 그렇게 시스템적으로 조여와요. 이게 정말 문제예요.
서_ 저도 스스로 모순을 느껴요. 저도 사회 쪽 강의를 하다 보니 입바른 소리를 하게 되는데 정작 저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예요. 어떻게 될 줄 모르고 겁나거든요. 우리 교수님은 날 어떻게 볼지도 겁나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 강의를 할 때, 강하게 표현을 못 해요. 강의평가도 무섭잖아요.

생사여탈권을 쥔 강의평가

사회자_ 강의평가 말씀하셨는데 그것도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박_ 제가 강의를 좀 오래 해온 편이라 경험상 말씀 드리면, 요즘 강사법 도입된다 해서 강의평가가 엄격해졌어요.
서_ 강의할 때 저는 a라고 생각하고 말했는데, 40명 중에 a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30~35명 있으면 b라고 생각하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c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두세 명 있어요. 그 학생들이 꼭 강의 평가에 뭐라고 적어요.
안_ 큰 강의일수록 그런 학생들이 있을 확률이 더 높아요. 우리는 자리가 보장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평가에 신경을 쓰게 되죠.
서_ 저는 지역 특성인지 사회적인 이야기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에요. 그렇지만 젠더 이야기는 힘들죠. 남학생들이 부담스러워 해요.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괜찮은데 c가 있는 거죠. ‘이 선생님은 여학생들만 예뻐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할 말이 없는 거죠.
박_ 저는 일베 학생에게도 한 번 공격당해 본 적이 있고, 아까 그 c 이야기가 되게 공감 되네요.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로 글을 써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어떤 학생이 얼마나 쓰냐고 해서 1페이지, 어떻게 쓰냐고 해서 대충 기본적인 형식으로 쓰라고 했는데, ‘대충 쓰라’고 했다고 학장에게 메일을 쓴 거예요. 그게 저에게까지 전달된 적이 있었어요. 실은 그것이 문제라기보다, 내가 말한 다른 것들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그걸로 꼬투리를 잡은 거죠.
서_ 소위 말하는 ‘평점 테러’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악의적으로 체크를 한 거죠.
박_ 강의 규모를 반영 안 하고 평가되기도 해요. 모 대학에선 잦은 결석으로 F학점을 받은 학생들을 포함시켜 평가하니까 강의 점수가 확 내려가요. 수업 안 나오는 학생들이 강의평가 잘 줄 리가 없죠. 강사 노조에서 ‘D 이하로 나오는 학생의 강의평가 점수는 빼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어요.
안_ 중앙대에서 강사에게 좋은 것 중 하나는 수업태도 불성실 학생은 지정해서 강의평가에서 제외할 수 있는 거예요.
사회자_ 강의평가가 강사 선생님들에게는 중요한 부분인데, 학생들은 막 하는 경향이 있군요.
박_ 그렇죠. 거의 생사여탈권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나

사회자_ 그럼, ‘나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나’ 하는 식상한 질문으로 오늘 자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박_ 한 마디로 흑색이에요. 헬조선에 태어난 걸 보니 전생에 나라를 팔았거나 한 것 같네요. ‘옥바라지 골목’에서도 그렇고, 그 전에는 ‘우장창창’에서도 그렇고 용역 깡패들이 칼을 들고 설치는데 되게 무서웠어요. 어제는 지키려던 건물을 못 지켰단 말이에요? 이런 것도 스트레슨데, 강의 자리도 언제 잘릴지 모르겠고, 강의평가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고 우리나라 전반적인 복지 서비스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민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영어는 영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곧잘 하지만 기반이 없어서, 가 봤자 비슷한 헬이라는 것을 알거든요. 저는 그래서 다시 태어나야 하나 봐요.
서_ 저는 전에 저에게 대학원 오라고 했던 선생님을 한동안 원망했어요. 나는 잘 지내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저는 글 쓰면서 만화방 주인 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미래……. 미래가 없죠. 포닥(박사 후 과정)을 나가면, 그게 미랜가? 아닌 거 같거든요. 2년 더 유예된 것뿐이죠.
안_ 저는 컨설팅 회사를 다녔는데, 연구가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원을 왔어요. 학교에 신물이 나기도 하지만, 재밌는 읽을거리 많이 나오고 좋은 사람들과 토론하면 그게 참 좋거든요. 어떻게 이 시간을 기왕이면 돈 걱정 없이 가늘고 길게 늘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비주류의 삶을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내가 늙어죽을 때 이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 것이 제 꿈이에요.

 처음 섭외를 부탁받았을 때, 강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지면을 통해 그들의 삶을 한 절이나마 담아낼 수 있을까.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내는 이들과 함께 ‘판’을 닫았다. 학문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학문을 업으로 삼은 이들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정리 정윤환 편집위원|bestss20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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