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 정치국제학과 교수

[교수칼럼]

대학원에 입학한 M에게

최영진 / 정치국제학과 교수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자네의 메일을 받고 잠시 흥분했었네. 학부 시절 자네가 보여주었던 다소 엉뚱하지만 자극적인 질문들이 기억났기 때문이지. 3년 전인가 여름 더위에 지쳐갈 무렵 난데없이 자네가 돌직구를 날렸지.

“교수님, 이런 책 꼭 읽어야 해요? 몰라도 전혀 문제없을 것 같은데요. 교수님들도 이런 책 다 읽었어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나의 진부한 설파에 난데없이 카운터펀치를 날린 거지. 사실 교수들이라고 해서 뭐 그리 많은 고전을 읽은 것은 아니니깐 말이야.

개강하면 한번 찾아온다고 했지만, 막상 수업이 시작되면 눈코 뜰 새 없을 거야. 대학원 공부, 생각보다 녹록하지 않지. 한 학기에 세 과목 수강하면 3일은 밤샘한다고 생각하면 맞을 거야. 참고문헌을 읽고 수업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그리 만만치 않거든. 그렇게 안 해도 된다면, ‘이렇게 편하게 다녀도 되나?’ 하고 의심해야 해.

편하게 공부하는 방법. 그런 건 없어.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하는 게 제일 좋아. 가장 좋은 공부방법은 말 그대로 학(學)과 습(習)이야. ‘학’이 잘 배우는 것이라면 ‘습’은 스스로 익히는 거지. 새가 날기 위해 최소 백 번의 날갯짓이 필요하다는 게 익힘의 정신이야.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것. 이게 제일 좋은 학습방법이지.

그나마 요령이 있다면 사유의 가닥을 파악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어떤 사유의 맥락에서 나오는지 알려고 노력하는 거야. 예컨대 구조주의와 현상학의 내용을 이해한다면 그러한 관점에서 도출된 이론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고 비판적 분석도 가능하겠지. 이러한 사유가 발생하게 되는 역사적 맥락까지 파악한다면 더욱 좋겠지. 이쯤 되면 인식론의 역사로 나아가게 되고, 철학적 깊이를 더하게 되지.

전공수업을 통해 대학원 수업이 진행되지만, 대학원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고 생각해. 자기 자신의 학습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필요한 수업을 선택해야 해. 그런데 현실적으로 듣고 싶은 과목이 개설된다는 보장도 없고 시간도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그런 부분은 스스로 혼자 공부해야 하지. 의지만 있다면 필요한 전공서적이나 강의계획서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직업으로서 학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공부를 자신의 책임 아래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해. 남 탓하지 말 것.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고 해서 동료들과의 만남을 회피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기 바라. 학문적 대화만큼 공부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없어. 동료들과 거리낌 없이 나누는 대화야말로 인간의 지성을 성장시키는 빛나는 자극제들이지. 어떤 점에서는 거인들과의 대화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 대화 자체가 ‘지적 근육’을 강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어. 생각만 해서는 안 되지.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지적 근육은 더욱 단련되는 거지. 희뿌옇게 동터 오르는 새벽까지 격론을 벌인 경험이 없다면 대학원 헛 다닌 거야.

나이가 드니 잔소리만 늘어나네. 이만 줄이자. 며칠 전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다 좋은 건배사를 들었네. “인생은 정비공”이라고. 인생에는 ‘정답도 없고, 비밀도 없고, 공짜도 없다’는 거야. 걸어가야만 할 길만 있는 거겠지. 초록이 지쳐 단풍 들면 막걸리 한잔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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