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 사회학과 교수

혐오사회 ① 혐오사회, 왜 나타났는가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된 ‘혐오 발언’은 이미 그 수위를 넘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발언 수위와,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공감 부재 및 감정의 과잉은 일시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이 시대의 주요한 추세인가. 본 지면에서는 오늘날 ‘혐오’가 부상하게 된 이유와 국내외 혐오 사례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혐오사회, 왜 나타났는가 ② 혐오의 심리학적 분석 ③ 온라인 혐오표현의 현재와 미래 ④ 일상에 녹아든 인종혐오


외화된 편견의 또다른 이름, 혐오


신광영 / 사회학과 교수

최근 새롭게 나타난 사회 현상 중의 하나는 집단적인 혐오의 분출이다. 사적 감정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혐오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혐오 발언이나 혐오 감정에 근거한 집단행동들이 최근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혐오는 성, 종교, 이념, 지역, 인종, 집단, 성적 취향, 장애 등과 관련된 편견에서 유래한다. 젠더 관계에 바탕을 둔 ‘여성 혐오’, 인종 관계에 바탕을 둔 ‘외국인 혐오(제노포비아)’나, 세월호 유가족에게 욕설을 퍼붓는 이념 과잉 극우 단체들의 혐오 발언과 행동이 대표적인 혐오 현상이다.

혐오는 특정 집단에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파괴적이고 병리적인 사회 현상이다. 혐오 현상의 대두는 사회 집단들 사이의 차이와 편견을 극복하고 공존을 모색하기보다는, 오히려 집단 간 증오와 대립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사회를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한국의 현실은 한국 사회가 공유하는 기초적인 행위 규범이 크게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층적 속성의 혐오

혐오는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주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편견과 폄하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편견은 특정한 사회 집단을 대상으로 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태도를 의미하며, 그 집단에 대한 믿음이나 가치 평가를 동반한다. 폄하 감정은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에 근거하여 그 집단을 무시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이다.

최근 교육부의 한 고위 관료가 “민중은 개, 돼지”라는 말을 거침없이 한 것은 그가 국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국민을 무시하는 혐오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 년 전 한국인 남성이 버스 안에서 인도 출신 성공회대 연구교수 보노짓 후세인에게 “더럽다, 냄새난다, 아랍인이냐”며 욕설과 폭언을 일삼은 행위도 특정 지역 외국인에 대한 혐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행위자가 하위에 있는 행위자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 발언들이다.

혐오는 중층적인 사회적 관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성도 중층적이다. 국민 중 일부 남성은 공개적으로 여성을 혐오하는 발언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지난 5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살해된 여성에 대한 추모를 조롱하는 글들이 극우적인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라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혐오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이슬람을 혐오하는 경우도 많다. 권력자의 눈에는 모두 개, 돼지로 보이지만, 그 내부에서도 또 다른 균열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차원에서 혐오의 피해자인 집단이 다른 차원에서는 혐오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혐오는 편견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편견이 외화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편견은 무지나 이해 부족에 따른 편향된 인식이지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영역에 속한다. 반면에, 혐오는 외부로 드러난 공적 영역의 사회 현상이다. 혐오 발언과 그것에 따른 집단행동을 통해서만 혐오의 존재가 확인될 수 있다.


약자에게서, 더 약자에게로

오늘날 인터넷과 SNS는 혐오를 쉽게 드러낼 기회를 제공했다. 인터넷의 각종 웹 사이트와 SNS는 여과 없이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는 배출구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에서 냉소, 불신과 조롱 등의 혐오 감정들을 배출하고 그것을 통해 해방감을 맛보며, 더 나아가 그런 감정을 공유하면서 서로 연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에 집결하였다. 이제 혐오는 더 이상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는 집합적 감정이 되었고, 더 나아가 디지털 공간을 확보하여 확고한 거점을 구축했다.

왜 혐오 감정을 갖게 되는가. 혐오는 대체로 스스로 주류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집단이 비주류라고 생각되는 집단을 대상으로 한 불신과 불만의 투사이다. 비주류 집단에 대해서 혐오 발언을 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더라도 비주류는 저항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비주류를 대상으로 불만이 투사된다.

그러므로 자신들보다 사회적으로 더 약한 집단을 대상으로 혐오 발언이나 집단행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재일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혐한’ 발언이나 집단행동이 주로 일본 내 소외계층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이러한 예이다. 또한, 한국에서도 여성 혐오는 남성들 가운데서도 특히 학력이 낮거나 소득이 낮은 남성들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 종류의 혐오 감정은 다른 종류의 혐오 감정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다. 예컨대 여성에 대한 강한 혐오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로 전환될 수 있다. 역으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강한 혐오는 여성 혐오로 전환될 수 있다. 혐오는 편견과 성찰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혐오사회 극복을 위해

사회 현상으로서의 혐오 현상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또 병들게 한다. 통제되지 않는 혐오 발언과 집단적인 행동은 한국 사회의 공유된 가치와 규범을 파괴하여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공감과 인정 대신에 편견과 불신을 낳는 혐오는 상대적으로 주류 집단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받을 때 더 강하게 나타난다. 편견에서 시작되어 혐오 발언과 혐오 범죄로 이어지는 일련의 혐오 현상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혐오의 출발점인 편견은 대체로 무지와 사실에 대한 몰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과 계몽이 편견을 없애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교육을 통해 이해와 관용의 아비투스(habitus)를 습득하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혐오 발언에 대한 도덕적·법적 제재도 필요하다.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벨기에, 스웨덴 등 많은 나라에서는 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인 공격이라는 점에서 혐오 발언을 법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혐오 발언은 언어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혐오를 뜻하는 글, 제스처나 행동도 포함한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법적 규제가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또한, 혐오는 이성적인 판단과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대중적인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들이 혐오 발언을 삼가야 한다. 이성적인 소통과 담론이 공론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될 때, 혐오 발언과 행동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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