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돈': 0. 이야기를 시작하며

특집ㅣ돈
0. 이야기를 시작하며

소크라테스는 왜 배고파야만 하는가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누구나 그럴싸할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이 말을 이렇게 바꿔 보면 어떨까.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잔고가 바닥나기 전까지는.”

 

돈에 살고 돈에 죽고

자동차에 연료를 넣어 줘야 움직일 수 있듯, 돈 없이 이 사회를 살아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돈이 넘쳐나서 허우적대며 사는 사람에게나, 혹은 만 원 한 장도 인출할 수 없는 팍팍한 통장사정에 한숨짓는 사람에게나, 돈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뿜어낸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금권주의 이데올로기를 고까워하면서도, 돈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누구나 돈 앞에 몸을 구푸릴 수밖에 없다.

돈은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누구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학원생도 마찬가지다. 자력으로, 혹은 남의 도움을 받아 학비를 마련할 수 없는 학생은 더는 온전한 ‘학생’일 수 없다. 대학원생은 자신이 소유한 구매력에 걸맞은 학생으로서의 신분을 지니며, 경제적 능력이 낮아질수록 그의 정체성은 학생보다는 ‘조교’ ‘아르바이트생’ ‘과외 선생’에 더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다. 돈을 벌기보다는 뱉어낼 일이 더 많은 학생의 신분 하나만을 걸치고 대학원 과정을 마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윤택한 소수를 제외한다면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돈’, 미워도 다시 한 번

이번 기획에서는 대학원생을 비롯한 우리 모두의 일상에 이토록 밀접한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구조적 모순, 그리고 이로 인한 불평등과 착취의 심화는 우리 모두가 곳곳에서 목도하는 바다. 이러한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부정하거나 경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돈이라는 문제가 우리의 삶의 궤적, 지금의 현실, 나아가 향후 전망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고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집중하여, 우리 삶에 얽혀 있는 ‘돈’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돈이 없다, 힘들어 죽겠다’ 식의 푸념이나, 돈이 많으면 좋을 텐데 식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지면을 꾸리려는 것은 아니다. 돈은 이렇게 모으고 이렇게 굴리라는, 닳고 닳은 재테크론을 설파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대학원생에게 돈이 갖는 의미, 학문 후속세대인 시간강사가 직면한 경제적 형편, 금융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와 불평등, 배금주의의 심리, 기초소득 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돈’이라는 물신화된 빛을 분해해 보려 한다.

인간이 돈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돈이 인간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 시대, 이 땅에서 돈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돈을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돈 때문에 불행해지고 목숨을 끊기까지 하는 비극적인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돈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돈을 사용하고 돈에 일희일비하는 사람, 그리고 이들을 엮어내는 제도의 현재와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다각도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증표인 동시에 그 가능성을 제약하는 자물쇠가 되기도 하는 ‘돈’의 생리를 새삼스레 들춰보고자 하는 이유이다.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기 위해

이번 특집은 배금주의의 심리적 속성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풀어낸 글로 시작한다. 이어 오늘날 자본주의가 자기조절능력을 잃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약탈적 면모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지면을 준비했다. 지난 학기에 이어 선보이는 ‘판’에서는, 대학원생 이후 시간강사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한 번쯤은 자신의 미래로 생각해 보았음직 한 ‘시간강사’의 삶과 고충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소득불평등이 날로 심각해지는 이 사회를 교정할 대안으로 떠오르는 ‘기본소득’ 담론에 주목해볼 것이다.

수차례에 걸친 기획회의를 통해 특집 주제를 ‘돈’으로 정하고 드디어 지면에 특집을 얹는 이 순간까지도, 이번 특집 주제가 독자들에게 영 고루한 이야기로 비춰지지는 않을까 하는 찜찜함이 남는다. 조금이나마 식상함을 덜고자 푸짐하게, 다양하게 추려 담았다. 그리고 설령 돈 이야기가 진부하게 느껴지더라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돈이 오늘날 사람들을 어떻게 얽어매는지 그 원리를 간파할 수 있어야만 최소한 돈의 노예로 전락하지는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한 손으로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다른 한 손으로는 ‘돈 때문에 죽지 않을 권리’를 모두가 움켜쥘 날을 고대하며, 출발해보자.

김대현 편집위원|chris30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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