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켈리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통제 불능>(김영사, 2015)


 [지금 이 책!]

 이 코너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시의적인 학술주제를 가진 서적을 소개해 여러 분야의 연구동향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21세기가 어떻게 행동·진화생물학의 시대가 될 것인지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기계와 생물의 상호작용에 관한 통찰을 보여주는 책 <통제 불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만물의 네트웍이 어떻게 등장하는가


케빈 켈리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통제 불능>(김영사, 2015)


 

 이두갑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통제 불능>의 저자 케빈 켈리는 1990년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서 촉발된 네트웍 혁명의 가장 중요한 관찰자 중 한 명이다. 켈리는 미국의 반문화 운동의 중심이자 민주적이고 환경 친화적 대안 기술의 포럼이었던, <온전한 지구를 위한 카탈로그>라는 잡지 주도로 만들어진 인터넷 포럼의 주요 참여자였다. 1985년 설립된 <온전한 지구를 위한 전자망(Whole Earth 、Lectronic Link, WELL)>은 이 잡지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던 컴퓨터 공학자, 벤처 투자자, 미래학자, 그리고 여성운동가, 사회개혁자, 환경운동가들이 만든 컴퓨터 네트웍이었다. 이 포럼은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 혁명의 중심인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영향력 있는 인터넷 포럼으로 성장하게 된다.


켈리는 WELL 포럼의 시작과 성장, 그리고 그 영향력의 확대를 관찰하며 네트웍 혁명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엇보다 WELL 포럼이 그 네트웍 내에서의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발전시키는 과정에 큰 감명을 받았다.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해 고민하던 환경 운동가와 공학기술자들이 새로운 기술 시스템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중앙집권적 정보의 통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던 정치운동가와 네트웍 엔지니어들이 만나 민주적 기술의 설계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토론을 통해 공학자들은 새로운 컴퓨터 기반 기술 시스템을 설계하고, 네트웍 망의 민주적인 사용과 이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사회운동가들과 작가들 또한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광범위한 논쟁을 벌였으며, 가상현실을 개발하며 이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적·문화적 상상력의 실현 가능성을 실험해 보기도 했다.


켈리는 이 네트웍 망이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과거 중앙집권적 계획과 통제로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시켰음에 주목했다. 자율적 참여와 상호작용을 통해 이 네트웍 공동체는 개별 참여자들이 지닌 아이디어를 뛰어넘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공동체로 진화했다는 것이었다. WELL은 이러한 네트웍 혁명의 시작이자 그 원동력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실제로 WELL 포럼에 참여한 이들 중 일부는 글로벌 사업 네트워크를 결성해 이후 인터넷 기반 신경제의 주창자이자 인터넷 산업의 경영자, 주요 옹호자가 된다. 네트웍 혁명의 선두에 있었던 선마이크로 시스템사의 빌 조이, 가상현실 산업의 선구자였던 제론 라니에르,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인터넷 문화의 선도자 역할을 했던 윌리엄 깁슨 등이 그들이다.


네트웍 혁명의 초창기인 1994년 출판된 켈리의 <통제 불능>은 자신의 WELL 네트웍 경험을 기반으로 해 어떻게 개인들 간 네트웍의 형성이 그 공동체의 창발적 질서의 등장에 기여하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마치 <온전한 지구를 위한 카탈로그>와 유사하게, <통제 불능>은 네트웍 혁명의 함의를 상세히 기록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학문적 발전을 언급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무려 천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통해 켈리는 서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사람, 생명체, 물체와 원자로 이루어진 시스템이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창발적 질서를 지닌 시스템으로 진화하는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연구들-일례로 복잡계에 대한 연구, 사이버네틱스, 인공생명, 정보이론, 네트웍 외부효과 등-을 설명한다. 이에 기반해 그는 생명현상과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시스템, 그리고 기술 시스템과 기계들 모두가 네트웍을 통한 사이버네틱적 정보의 전달, 그리고 이로 인해 나타나는 자율적이고 창발적인 질서의 형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통제 불능>은 마치 개인들이 컴퓨터를 통해 네트웍을 이루어 혁신적 공동체 WELL을 이루어냈듯이, 인간과 기계, 경제와 사회가 하나의 자율적 질서를 지닌 창발적 시스템으로 진화돼가고 있으며, 이는 중앙 집중화된 설계와 통제에 의한 시스템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창의적이라 결론 내린다. 켈리는 이후 인터넷 혁명과 이에 기반한 신경제의 무한한 가능성을 찬양하는 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자로 네트웍 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경제체계와 사회혁명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로 떠올랐다. 그는 1997년 와이어드지 표지기사 <장기 호황 The Long Boom>에서 컴퓨터와 인터넷망으로 연결된 지구촌의 탄생이 앞으로 사반세기 동안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엄청난 경제적 부와 정치적 자유,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사회기술 시스템을 가져다줄 것이라 주장했다. 21세기,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고 그 발전과정이 통제 불능인 것처럼 보이는 이 시점, 정부와 정치가, 다국적 기업들의 통제를 배제할 수 있다면 네트웍 혁명이 전 지구적 경제, 사회 혁명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비전의 기원을 <통제 불능>을 통해 비판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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