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1.4.7 수 01:33
기획학술
오스카 로메로(Oscar Arnulfo Romero, 1917~1980)
안혜숙 편집위원  |  ahs11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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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호]
승인 2016.05.31  21: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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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이ㅎ·다 [‘연결하다’, ‘사이에 두다’의 옛말]


 오스카 로메로(Oscar Arnulfo Romero, 1917~1980)

 

1977년,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 대교구장으로 임명된 오스카 로메로 신부는 삶의 큰 전환기를 맞는다. 그가 대교구장이 된 지 불과 20여 일이 되던 3월 12일, 예수회 소속의 신부 한 명과 농민 두 명이 정부에 의해 피살됐기 때문이다. 당시 엘살바도르는 정치적 억압, 특히 노동자와 농민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극에 달해 있었고, 이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현실 참여적이기보다는 학구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로메로 신부는 이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 ‘회개’ 혹은 ‘전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된다.


그는 ‘죽음 저편’뿐만 아니라 ‘여기 땅 위’에서도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교회를 부르짖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경제·사회적 현실을 복음적 가르침과 실천으로 이겨내고자 했다. 그는 엘살바도르 군사독재정권에 대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어긋나는 불의를 거부하며, 따르지 말 것”을 설파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부당한 것으로 지적하기 시작했고, 주일 미사에서 무력 탄압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을 매주 호명했다.


1980년 3월 24일, 로메로 신부는 미사 집전 중 엘살바도르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러나 1980-89년 사이 6만 명 이상의 엘살바도르인들이 죽임을 당하며 정의와 인권을 위해 싸움을 계속할 때에도 “폭력이 숨 쉬는 것처럼 일반화된 이 나라의 불의에 대항하라”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함께 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고 나서야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은 순교로 인정됐고, 종교가 아닌 정치적 이유로 살해되었기에 지체되던 성인추대가 승인돼 그해 5월 23일 마침내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안혜숙 편집위원|ahs11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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