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게임비평가 이상우
인터뷰 : 게임비평가 이상우
사유하는 게이머들을 꿈꾸며
게임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게임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도 생겨났다. 게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게임 규제정책에 대한 옹호와 비판 위주로 이루어지는 동안, 문화로서 게임의 가치에 대한 고민과 반성은 몇몇 비평가들의 몫이었다. 게임으로 문화를 읽는 사람, 게임비평가 이상우를 만났다. 이하 일문일답.
저서 <게임, 게이머, 플레이>에서 ‘시적 게임’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보통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의 구조는 영화와 비슷하며, 몰입을 유도한다. 정신없이 던져지는 임무와 적을 상대하다 보면 어느새 플레이가 익숙해지면서 점차 무의식적이게 된다. 그렇게 게이머는 게임의 서술적 장치에 끌려다니게 된다. 이것이 몰입이다. 그러나 내가 시적 게임의 예로 제시했던 ‘Journey’(게임 제목-편집자 주)는 다르다. ‘Journey’는 서술적인 장치가 없다. 넓은 공간에 던져진 후 빛을 향해 걸어가기만 한다. 할 것이 딱히 없으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시가 그렇지 않나. 시는 읽을 때 계속 생각을 해야 한다. 이렇게 자기를 되돌아보거나 의미를 고민할 틈이 많은 게임을 시적인 게임으로 볼 수 있다.
<게임, 게이머, 플레이>의 마지막 글이 “문화적 실천으로서의 게임플레이”다. 문화적 실천으로서의 게임플레이는 어떤 건가.
간단히 말하면 수동적인 플레이의 대안인 적극적인 게임플레이를 말한다. 책을 읽을 때 베스트셀러만 뽑아 읽는 독서는 수동적 독서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공부해 보고 더 호기심을 가지고 나면, 서가 끝에 있는 책도 능동적으로 찾아서 읽을 수 있다. 게임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여러 가지 게임을 접해보고, 나는 어디서 재미를 느끼는지, 나에게 어떤 게임이 필요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게임론자들은 문학이나 영화 등 다른 분야 연구가 게임을 자신들의 연구영역으로 식민화하려 한다고 비판했던 바 있다. 게임연구를 위한 이론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은 없나.
게임이 평론분야에서 이슈가 됐을 때, 여러 학문 영역에서 게임 영역을 선점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자 아세스 등 게임론자들은 다른 학문 영역의 이러한 움직임이 게임의 순수성을 침해한다고 비판하면서 게임은 게임으로 분석하자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주장에 반대한다. 게임만 가지고 게임을 깊이 있게 연구하기는 어렵다. 모든 학문은 이론이 중요한데, 게임만 가지고 이야기하기에는 게임 자체가 토대로 삼을 이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주장이 쉽게 무너지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따라서 영화 등 다른 영역이 연구한 이론들을 도입해서 게임을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게임을 충분히 이해한 상황에서 이론을 접목해야 한다. 표면적인 이해만 하고 이론만 적용하여 설명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충분히 게임을 즐기고 이해하는 것이 이론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래야 하나.
게임은 이제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TV 시청보다 게임을 더 오래 한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 이후로 게임은 확실히 주류문화다. 남녀노소 누구나 한다. 대중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게임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를 단순한 시간 낭비로 평가절하하고 끝낼 수 있나. 우리가 게임을 왜 하는지 누군가는 고민해야 한다. 주류문화가 된 게임이 우리 삶에서 더 의미 있기 위해서는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게임이 5·18이나 4·16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룰 수 있다고 보나.
시리어스 게임에 대한 이야기다. 시리어스 게임이란 재미 이외에 다른 것을 전달하는 게임을 말한다. 예컨대 ‘9/12’ 같은 게임은 점수를 내고 재미를 얻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방식으로는 테러를 종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게임의 강점은 주장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대신 ‘직접 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게임디자이너가 의도한 틀 안에서이긴 하지만, 그 틀 안에서 게이머는 자신의 몸으로 적극적으로 조작하고 직접 경험한다. 이렇게 게임은 행동을 끌어내면서 이를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좋은 쪽으로 쓰일 수 있다. 내 생각에 게임은 세월호 참사나 옥시 사태 같은 이야기도 충분히 다룰 수 있다. 다만 당장 사회적 이슈를 게임으로 다루기는 상당히 힘들고 위험할 것이다.
요즘의 한국게임에 대한 생각, 특히 문제의식이 있나.
앱스토어가 열리면서 1인 개발자들이 유통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유통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상점이 생기면서 다양한 게임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은 구축이 되었는데, 그 환경을 우리나라에서는 수명 짧은 게임을 유통하는 데 쓰고 있다. 모바일로 게임이 넘어온 이후 게임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졌다. 예전에는 2-3년은 사이클이 지속이 되는데 지금은 3개월 정도다. 이러니 개발자들도 힘들다. 열정으로 게임을 만들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수명 짧은 게임만 만들면 결국 질은 떨어진다. 이익만 극단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건 상품이다. 정말 문화라고 할 수 없다. 새로운 경험, 놀라운 경험을 주겠다는 목적보다 돈 벌 생각이 우선이다. 장기적으로 가면 유저나 개발자 모두가 멸망하는 시나리오다. 이러면 사람들이 점점 게임을 싫어하게 될 것이다.
시인지망생이었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대학에 갈 때는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했지만 공부해보니 내가 기대했던 것과 좀 달랐다. 대학원에 가서도 이것이 나에게 맞는 공부인지 고민이 많았다. 몸까지 아파 일 년 정도 하게 된 휴학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재밌어하던 것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게임을 연구하게 되었다.
앞으로 게임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나.
게임연구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힘든 점이 있다. 영미권에서는 연구가 많이 되는 편이다. 영어 논문이나 단행본을 많이 접해서 외국에서 있었던 연구와 이론을 많이 참고해야 한다. 너무 이론에 치우친 현학적인 연구보다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연구를 위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적극적인 게임플레이가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의 이론과 접목하면 더 풍성하고 새로운 논의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게임의 작년 매출액은 10조 원에 달했고, 올해 온라인 게임시장 규모는 5조 8천여억 원,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는 3조 9천여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커지는 게임시장 규모에 비해 비평가들이 진지한 게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우 평론가는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다.
윤영식 /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