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아브르>,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2011

[더 함]

당연한 기적에 대한 이야기
<르 아브르>,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2011

 
 

보헤미안으로 젊은 시절을 보낸 마르셀은 구두를 닦아 하루 식사를 해결한다. 아내가 챙겨준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열심히 구두를 닦아 조금이라도 돈을 더 모으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그런 그의 일상에 불법이민자인 한 소년이 찾아온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지만 마르셀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아내 대신 낯선 소년 이드리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생활할 뿐이다. 영화 <르 아브르>는 조용한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 도착한 난민소년을 경찰로부터 보호하는 마르셀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년을 지키려는 마르셀과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일말의 주저함이 없다. 마치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처럼 당연한 행동으로 보인다. 시간이 흘러 경찰의 수사는 점차 가까워지고, 결국 모두의 집을 수색 당하게 됨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아침이야”라는 인사와 함께 자연스레 소년을 숨겨낸다.

조용한 항구도시라는 ‘르 아브르’의 제목처럼, 불법이민자가 숨고 쫓기고 탈출하는 생사가 걸린 사건을 영화는 조용하고 평탄하게 보여준다. 경찰은 과도한 공포를 만들지 않고, 마을 사람들도 이드리사를 도와주지만 비장하지는 않다. 심지어 하루아침에 완쾌가 된 부인의 상태 역시, 의학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로 넘어갈 뿐이다.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에 가까운 이 이야기는 “얼른 밥 차려줄게”라는 완쾌된 아내의 일상적인 말로 끝이 난다. 난민을 둘러싼 각종 법과 제도의 기준을 내세우는 지금, 우리는 이드리사의 허기짐에 자연스레 밥을 차린 마르셀이 될 수는 없을까.

김현진 편집위원|kim199801@naver.com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