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숙 /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연구실에서 보낸 편지

마들렌과 홍차, 그리고 정동(affect)

강진숙 /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유를 알 수 없는 감미로운 기쁨에 사로잡히며 나를 고립시켰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와 닿았을 만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다. 유년 시절부터 병약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삶을 살았던 프루스트의 이 자전적 소설에는 다양한 정서가 등장한다. 어린 마르셀이 유년기에 느꼈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기다림을 비롯해 청년기의 사랑까지, 그 정서들은 사방의 사물과 사람들을 만나 생성된다. 다양한 마주침을 통해 생성해내는 것은 바로 슬픔, 기쁨, 욕망의 정서들이다.

그러면 그 정서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우선, 슬픔의 정서는 후각을 통해 기억된다. 마르셀은 “슬픈 마음으로 올라가는 가증스러운 계단”에서 ‘니스’라고도 불리는 바니시 냄새를 맡으면서 그 감각에 자기만의 특별한 슬픔을 흡수하고 고정시킨다. 머리가 아닌 마르셀의 후각이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 번째로 기쁨의 정서는 미각을 통해 나타난다. 소년 마르셀이 레오니 고모 방으로 인사를 갈 때마다 맛보곤 했던 프랑스의 조가비 모양 케이크인 마들렌을 홍차와 함께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 느낌은 이전까지 느꼈던 슬픔의 정서를 기쁨으로 변이시킨다. 그가 경험한 그 당시의 감각은 외롭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정서’에서 벗어나 ‘환희’로 이행하는 정서의 변이에서 배가된다. 마르셀 자신이 느꼈던 “초라하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자기 비관은 그 감미로운 맛을 통해 삶의 이유를 재발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떠올리는 것은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하는 물음이다. 그 기쁨은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욕망의 정서는 발베크 해변에서 만난 소녀들을 통해 생성된다. 마르셀은 할머니와 함께 떠난 바닷가 여행지에서 “장애물을 만나면 껑충 뛰거나” 두 발을 모아 뛰다가도 우아하게 정지하는 소녀들을 만난다. 그중에서도 “뺨이 통통한 갈색 피부 소녀”와 시선을 마주하며 느꼈던 호기심은 사랑의 욕망을 자극한다. “난 당신이 참 좋아요”라고 쓴 그 소녀 알베르틴의 작은 쪽지는 마르셀에게 ‘사랑의 소설’을 만들겠다는 설렘까지 불러일으킨다. 비록 알베르틴이 파리로 떠난 후 물음표만 남긴 사랑이지만, 그 다양한 만남의 욕망들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믿음들로 마르셀의 영혼을 풍부하게 했다.

이렇듯 슬픔, 기쁨, 욕망의 정서들은 누구와 혹은 어떤 음식들과 마주하는지에 따라 언제든 변화하고 삶의 의미들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정서들의 변이, 곧 정동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이를 파괴하지 않고도 내 정서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떠나 내 감정, 의지, 본능, 욕구들을 성찰하고 능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만남들을 기획하는 것이다. 어떤 다양한 이유로든 지금 혐오의 감정에 휘말려 있거나 지친 이들에게 권한다. 자신 있게 마들렌에 홍차를 찍어 먹을 누군가(개미라도)를 현혹하라! 그리고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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