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달 마지막 주 학내에는 학부생들의 축제가 한창이었다. 정문, 중문, 후문 할 것 없이 바닥이 보이는 곳은 ‘술판’이 됐다. 정오가 지나면 어디서 오는지 모를 트럭이 들어와 수백 파란 의자와 식탁을 일사불란하게 깔았고, ‘술짝’과 스피커만 있으면 그곳은 금방 축제의 장이 됐다. 문과생들의 유일한 연구공간으로 여겨지는 대학원 건물 302동과 교수연구동 사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려하게 올라선 310관은 그들의 근사한 밤 조명이 되어 주고 있었다.

논문 심사 기간을 앞둔 원우들은 일주일 내 광란의 길을 뚫고 대학원 건물로 들어섰다. 오히려 심란한 기분을 이들의 요란함 속에 묻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중화장실로 변해버린 대학원 1, 2층 화장실과 취객(?)들의 휴게소가 되고 있는 1층 로비를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없는 일이다. 평소 밤 10시 이후에는 잠가 놓고 출입증으로 통제하던 1층 문은 오히려 활짝 열어 공간을 함께 썼다. 그래, 나도, 당신도 사느라 힘들었으리라.

학부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축제를 즐겼다. 마치 이태원의 밤거리가 이와 같을까. 강남역 유흥가가 이런 모습일까. 단과대별로 공간을 구획 지어 자리한다는데, 각각 주점마다 상도덕도 있어 보인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목요일 오후에는 대학원 ‘원우 한마당’도 반짝 열렸다. 대학원 학생증을 보여주면 보쌈을 나눠주고, 술도 준단다. 여자 팔씨름 대회도 열렸다. 재건축으로 여기저기 건물들이 흉측하게 허물어지고 있는 흑석동은 일순간 ‘축제의 땅’이 되어 들썩였다.

이럴 때 보면, 무엇이든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못하는 법이다. 기업가들의 현란한 상술을 방불케한 학부생들의 축제도, 대학원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본부도 ‘거부’가 아닌 ‘용인’으로 ‘다가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 수십 년 원우들의 기억과 함께한 학생회관이 내일 허물어질지도 모르는데 그 땅은 일순간에 축제의 땅이 될 수도 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대학원생들은 당장 성과를 수치로 환산하기 위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 이번 학기 대학원신문을 맡았던 본인 역시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때였음을 고백해야 하겠다. 이렇게 준비되지 않았을 때 무언가를 맡는다는 것은 그동안 이어왔던 땀과 노력을 한순간에 뒤집어엎어 쏟아버릴지도 모르는 위태로움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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