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시행 2년 유예, 그 후

 

포커스: 강사법 시행 2년 유예, 그 후

 

당신이 ‘강사법’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


대학원생 중 많은 이들이 학자로서의 삶을 ‘강사’로 시작하게 된다. 때문에 자주 논의가 되고 있는 강사들의 처우와 복지, 대학교육의 변화를 가져올 강사법 개정은 신진 연구자인 대학원생들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지난 1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던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또다시 유예되었다. 몇 년 동안 거듭해서 시행 유예만을 반복하고 있는 강사법은 그 당사자인 강사들과 대학기관으로부터 거부당하며 ‘악법(惡法)’이란 평을 듣고 있다.

 

강사법이 안고 있는 지루한 문제들


‘강사법’의 출발 배경은 2010년 조선대 시간강사 서정민 씨의 죽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교수로부터 10년 동안 논문 대필을 종용받고, 교수 임용에 돈이 오가는 부조리한 강사 현실과 부당한 처우를 자살로써 고발한다. 이렇게 한 시간강사의 죽음으로 비로소 대학 내 강사의 처참한 현실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2011년 12월 국회는 부랴부랴 ‘강사법’을 통과시킨다. 강사법은 강사에게 한 학기에 9학점, 1년 이상의 임용기간을 보장하고 4대 보험 적용 등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대학 강사의 처우 개선과 권익을 보호하자는 취지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강사법이 대학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4대 보험 의무화로 보험료가 발생하는데다 1년 이상의 계약을 강제하기에 계약 만료 시 모든 강사에게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별다른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대학 본부가 많은 강사를 교원으로 채용할 리 없다. 대학은 전임교원의 담당 시수를 늘려 비용을 최소화하고, 강사를 채용하는 대신 퇴직금과 4대 보험을 부담할 필요가 없는 겸임교수, 초빙교수 등 다양한 이름의 비전임 교수를 늘리면서 이를 피해 가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한편, 강사 입장에서도 이 법안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4대 보험 가입이 되고 1년 이상의 임용기간이 보장되며 교원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주당 3-4시간을 강의하던 기존 강사들은 일주일에 9시간 이상의 의무 강의시간이라는 항목에 발이 걸리고 만다. 선택받은 소수의 강사들에겐 비교적 안정적인 자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9학점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한 명의 강사를 쓰기 위해서는 기존의 강사들 대부분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강의마저 빼앗기는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나는 게 정해진 수순이다.
본교 역시 2011년 2학기부터 ‘강의전담교수제’를 실시하며 시간강사제를 대체하는 분위기에 앞장서 왔다. 현재는 그 인원이 ‘별정제 전임교원’으로 대부분 통합되었지만, 2년 단위로 연봉 계약을 하며 한 명의 교원이 12시간 이상의 시수를 책임지는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교무처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별정제 전임교원의 수는 90명으로 1,300명이 넘는 시간강사를 보완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그들 역시 연봉에 비해 무리한 양의 강의를 소화하고 재계약을 기다려야 하는 ‘비정규직’ 전임교원인 것도 문제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소수의 교원이 부담을 떠맡게 되는 강의가 다양한 전문분야의 강사 수업과 비교해 더 나은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학교 측이 시간강사제를 대체하는 방식은 그 근본 목적부터가 투명하지 못하다. 이 같은 움직임은 강사들의 처우 개선이나 내실 있는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 강사법이 시행될 것을 대비하고, 대학 평가 지표에 포함되는 전임교원의 강의 비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가뜩이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시간강사들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위와 같은 갈등으로 인해 교육부는 2011년 발의된 강사법의 시행시기를 세 차례 늦추며 근본적 해결책과 대안 없이 눈앞의 불만 끄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유예된 강사법을 2년 후인 2018년에 시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가오는 8월 중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특히 이번 수정안은 새롭게 들어선 20대 국회에서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기 때문에 ‘강사법’ 문제는 국면의 전환기를 맞이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일단 강사법 시행이 2년 더 미뤄지기는 했지만, 실질적 처우개선이 가능한 강사법을 도출해 내기에 남은 시간이 결코 여유롭진 않다. 8월까지 개정안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5월까지 강사 지위와 처우, 근무여건 등 강사제도 개선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수년간 시행도, 폐지도 안 되던 강사법이 불과 몇 개월 만에 탁월한 개선안을 찾아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교육부는 수정된 법안을 위해서 지난 2월 ‘대학 강사제도 개선 정책 자문위원회’를 발족해 관련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자문위원회는 대학에서 4명, 강사 4명, 전문가 4명 등 총 12명의 위원이 위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그 정확한 구성인원과 운영상황을 알리지 않고, 비공개 방침으로 해 대학가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또한, ‘정책 자문위원회’가 ‘협의체’의 성격이기는 하지만 그 구성이 국회가 추천한 교육 관련 전문가들로만 이루어져 있어 다층적인 대학원생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에 맞춰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에서는 ‘강사법’에 신진연구자인 대학원생들의 의견이 좀 더 구체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각 대학원 박사과정 및 수료생을 대상으로 ‘강사법’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본교 대학원 총학생회도 이 과정에 동참하고 있다.
문화연구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정원옥 강사는 “강사들의 권익 보호가 임금 인상과 처우개선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다. 획기적으로 예산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선택과 배제가 생기게 마련이고 지금의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강사 지위가 개선되어 교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 발언과 협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사의 인권, 다양한 처우 문제가 비단 강사법 하나에만 달려있지는 않을 것이다. 강사법을 대비하기 위한 대학들의 허울 좋은 임용제도 뒤에는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 평가라는 더 큰 그림자가 있다.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해야 하는 곳이 취업학교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강사들은 그 권익을 보호해준다는 길로 가도 낭떠러지 앞이다. 김누리 교수(유럽문화학과) 칼럼의 한 부분을 빌리자면 “시간강사는 교수들의 과거이고, 제자들의 미래”다. 기득권을 가진 정규직 교수들이 강사들과 연대해야 하는 이유이고, 학문 후속세대인 대학원생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안혜숙 편집위원|ahs11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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