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 서울대 국제대학원 EU센터 연구위원


이 기획은 21세기 지구촌 공통의 과제로 등장한 난민 현상의 원인과 문제를 오늘날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맞춰 파악하고자 마련되었다. 과거부터 이어온 난민이 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로 등장했는가. 다시 언급되는 난민문제는 특정 이념이나 지역에 한정된 문제와 책임을 갖지 않는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심화되는 난민 증가의 배경과 각국의 대처방안 그리고 관련된 법을 통해 난민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지금 난민이 왜 이렇게 급증했을까? ② 국경을 벗어나는 과정 ③ 번복되는 유럽의 난민정책 ④ 난민을 위한 법, 법에 의한 난민

 

유럽연합의 난민 정책,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박선희 / 서울대 국제대학원 EU센터 연구위원

유럽이 난민 위기를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2년 유고내전의 발발로 인한 70만 명에 가까운 대규모 난민 유입은 난민 문제를 개별국가 차원이 아닌 유럽연합 공동으로 해결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2015-16년 난민 유입사태는 이전의 유입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는 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난민 유입사태로 일컬어진다. 유럽사회는 한편에서는 인도주의적 난민정책을 위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으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질적 문화의 대규모 유입을 경계해 난민 수용을 억제하라는 요구를 내부로부터 받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와 같이 모순된 두 요구 사이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있는가.

EU협력체제의 구조적 한계

EU의 난민협력체제의 기본 틀은 1997년도에 발효된 더블린협정(Dublin Convention)에 기반한다. 더블린협정은 난민이 EU 회원국에 도착하여 난민신청을 냈을 때, 이를 접수할 책임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에 대한 회원국 공동의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제3국민이 유럽연합 역내에 도착하여 여러 회원국에 난민신청을 요구하는 이른바 ‘난민 쇼핑(venue shopping)’을 방지하기 위해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난민 문제에 대한 공정하고 효율적 관리를 목표로 한 공동난민 정책은 오히려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켰다. 더블린협정에 의거한다면 난민이 목적지 국가로 진입에 성공해도 EU 내에 경유지 국가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EU 진입 후 첫발을 내딛은 국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체코, 헝가리 등과 같은 국경 지역과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해안지역에 난민부담이 집중했고 이는 더블린협정의 두 차례의 개정(이후 더블린규정으로 불림)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았다.

헝가리와 체코가 2015년 최악의 난민 위기로 더 이상 더블린규정을 준수할 수 없음을 공표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시기 2015년 난민 위기에 대해서 “열린 문 정책(open door policy)”이라는 인도주의적 해법을 제안했던 독일 메르켈 총리는 헝가리와 체코와는 반대의 이유로 더블린규정의 중지를 결정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건너온 시리아 난민에 대해서 그들이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를 경유하여 유럽연합의 역내로 진입했다고 하더라도 경유지 국가로 이송하지 않고 독일 내에서의 난민신청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더블린규정 중지 결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례 없는 인도주의적 난민 정책을 선언하였으나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 난민유입 때문에 더블린규정 중지 선언 두 달여 만에 다시 이를 철회하게 되었다. 한편 EU 차원에서는 이미 2011년에 그리스로의 난민 이송 중지를 공포한 바 있다. 그리스 같은 대표적 경유지 국가에서 난민 보호 위기의 심각성이 이미 중대한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Petr David Josek
                                                                                                                                                                            ⓒPetr David Josek

난민보호 위기를 부추기는 정책

한편 난민의 대표적 경유지 국가인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포함하는 EU 회원국은 난민 부담을 덜기 위한 방편으로 재입국협정(Readmission Agreement)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EU 국가는 제3국과 맺은 ‘재입국협정’ 카드를 사용해 난민을 다시 출발지로 돌려보낼 수 있다. 재입국협정이란 EU 역내에 대량으로 유입되는 난민이나 불법 이민자를 출발지나 경유지로 돌려보내기 위해 EU와 제3국가의 상호의무를 규정한 협력을 의미한다. 이는 난민 출신 국가뿐만 아니라 이들이 통과한 경유 국가에게도 재수용의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일반적인 추방은 출신지(경유지) 국가의 비협력적 태도로 절차적 어려움이 생길 수 있지만, 재입국협정은 상호 의무를 수용하기로 한 약속을 전제로 시행됨으로 역외 추방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재입국이라는 용어는 이송(deportation)처럼 추방(expulsion)의 범주에 속하는 용어인 것이다. 따라서 재입국협정이란 합법적이 아니라고 판단된 외국인을 국외로 신속히 이동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인 셈이다.

EU가 맺은 대표적 재입국협정 사례로는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의 중요한 경유지 국가인 터키와의 협정이 있다. EU는 터키와의 비자 면제 조건으로 재입국협정 협상에 착수했으며 터키는 재입국협정이 부담이 되지만 비자 면제 조건과 재정지원을 대가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문제는 터키의 난민보호정책에 신뢰를 가질 수 없다는 점에 있다. 터키가 재입국협정에 의해 유입된 이주민에 대해서 보호가 필요한 난민인지 경제적 이주민인지 여부에 대해 공정한 심사를 할지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터키를 통해 유럽으로 유입되는 사람들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소말리아처럼 내전 중이라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국가 출신이 다수라는 점에서 난민의 본국 송환이 가져올 위험에 대한 우려가 크다.

게다가 터키인의 비자 면제와 재입국협정 즉 터키를 경유한 제3국민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정책은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사안이다. 또한, 비자 면제를 전제로 이주민에 대한 협상을 벌였다는 점은 그 자체로 비윤리적이다. 난민의 생명은 터키 관광객들의 여행 편의와 동급인 것이다. 이처럼 터키와의 재입국협정 체결은 EU의 난민정책이 박해받는 사람에 대한 보호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더욱이 재입국협정은 다음과 같은 제네바난민협약(제33조)의 핵심 조항인 ‘강제 송환금지 조항’에 위배된다.

“체약국은 난민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그 생명 또는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하여서는 아니된다.”

EU의 재입국협정은 목적지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 난민보호책임을 경유지 국가와 출발지 국가에 전가하고 있다. EU는 난민의 개념이 처음 발생한 곳으로 난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네바난민협약과 같은 국제적 책임을 처음 제기한 곳이었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 두 나라가 받아들인 난민보다 4배가 넘는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듯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은 급격한 난민 유입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에 주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최근 대규모 난민 유입에 대해 ‘열린 문 정책’으로 전향적인 조처를 취하는 듯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EU는 난민의 보호책임을 EU 국가보다 난민 기준이 취약한 역외 국가에게 전가시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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