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몬롤 / 문화비평가

 

개인과 지식공동체

시나몬롤 / 문화비평가

‘그렇다면’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은 언제나 좋은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은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시키고 그 이야기의 외전들을 그리고 그 외전 밖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지식순환협동조합은 대학 내 변화를 꿈꿨지만 완성하지 못한 이들이 외치는 ‘그렇다면’이다.
지식순환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말하듯, 제8대학 등의 수많은 사례 속에 이어진 연장이다. 얼 쇼리스를 위시로 국내외 수많은 학자가 상아탑 밖의 거리에서, 감옥에서,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죽은 지식의 위대한 힘, 죽은 지식이 사람을 능동태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을 일깨웠다. 물론 그 와중에 많은 코뮨적 지식 공동체들이 살면서 저지르게 되는 일 때문에, 혹은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들 또한 관조와 논쟁과 고양된 순간 밖에서는 피동태로서 살아지게 되는 리좀(Rhizome)이지 못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위대했던,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남은 ‘실험’으로서 사라지거나 변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식순환협동조합은 아직 외부인으로서 관찰한 결과로는, 학제간의 통섭과 학력간의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탈피하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 본고에서는 이를 모델화하고 사회적 필요성과 한계를 짚기보다는 개체의 입장에서 효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지식이라는 포만감

경험적으로, 많은 사람은 생에 대한 허무함을 느낀다. 많은 사람 중 또 많은 사람은 더 많은 물질이나 사회적 가치를 획득함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 하며, 그 많은 사람 중 적당히 많은 사람은 이를 상기한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통해서 충족시키려 한다. 그리고 그 다른 가치 중 하나는 지식이다. 그 지식 사이에는 연역적 사유를 돕는 특정 원리에 대한 이해가 있다. 이러한 종류의 지식은 그 특성상 성급한 일반화의 가능성과 중층적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으나, 동시에 ‘내가 세상을 이해하였다’는 일종의 충만감을 주기도 한다. 이 충만감은 특정 유형의 사람들에게 생에 대한 허무를 잊게 할 만큼 강한 진통제이기도 하다. 많은 대중 인문학 강의, 서적들은 이 지점을 노린다. 당신의 지적 충만감은 대가의 권위와 유명 강사의 이름으로 진리의 반열에 들어선다. 그들과 대척하기 전까지, 혹은 너무 잘난 척 하기 전까지. 어찌 보면 종교와 유사하게 기능하는 것이다. 물론 지순협의 과정은 인문학 일변도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지적 쾌락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분명 이는 허무를 망각하기 위한 물질적 탐욕이나, 타인에 대한 사회적 권력의 행사, 타인에 대한 혹은 스스로에 대한 물리적·심리적 폭력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그러니 경제적 조건으로 인해 생명체로서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을 정도라면 지순협이든 여타 지적 풍토를 지닌 사회적 실험을 소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한 달에 33만 원으로 당신의 삶의 허무가 조금이나마 잊혀질 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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