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영 /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

과학스크린 ② 영화 <인터스텔라>와 우주의 시공간

본 기획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과학’분야의 학술적인 주제들을 고민해 보고 ‘과학’과 ‘인문학’의 연결고리가 이어지도록 그 의미를 확대해 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2월 11일, 100년 전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우주의 운동을 설명하면서 예측한 ‘중력파’의 존재가 최초로 확인된 것을 맞아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블랙홀과 우주의 시공간 개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인터스텔라 그리고 중력파

 

블랙홀을 ‘보는’ 법


 

 이강영 /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

 

“블랙홀이야말로 우리가 경험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우리는 블랙홀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볼 수 없고, 찾아가 볼 수도 없다. 그래서 블랙홀을 연구하는 것은 아주 어렵고, 오랫동안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이었다.”

 

 
 
 

 

자연과학의 지식은 경험적 지식이다. 우리는 이 지식을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 뿐 아니라 적극적인 관측에 의해, 나아가 고도의 기술을 사용해서 만든 잘 통제된 실험을 통해 얻는다. 관측과 실험 기술이 나날이 정교해짐에 따라 지금 우리는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상까지도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다. 그에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범위는 극적으로 확장되었고, 과학적 지식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실제로 관측할 수 없는 현상도 있다. 예를 들자면 우주가 시작된 빅뱅의 순간을 인간이 실험할 방법은 아마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공룡이나 네안데르탈인도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이 과거의 일이라서 그러하다면 지금 현재 일어나는 사건이나 현상은 어떠한가. 역시 예를 들어 우리는 아직 심해를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인간이 다루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는 현상은 현재에도 아직 많다.
영화는 많은 사람이 대규모로 간접 경험을 하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물론 보통의 극영화에서 우리는 현상에 대한 지식보다는 잘 계산된 연출에 의한 정서적인 경험을 주로 할 것이다. 그래도 영화를 통해 우리는 다른 시대를, 다른 사회를, 그리고 다른 계급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우리는 독특한 영화를 한 편 만났다. 2014년 11월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다. <인터스텔라>는 우리에게 전무후무한 간접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바로 블랙홀을 체험하게 해 준 것이다.

 

블랙홀과 시공간의 휘어짐


블랙홀의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거의 함께 태어났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 11월에 일반상대성이론의 ‘장 방정식’을 발표한지 불과 두 달 후에, 유태계 독일인 천문학자인 슈바르츠실트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의 해(解)를 하나 구해서 프러시안 과학 아카데미에 제출했다. 이 해는 별이 하나 있을 때 주변 시공간의 곡률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해가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별의 질량에 따라 어떤 임계 크기에 이르면, 별의 내부에서는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고 별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은 무한히 길어지는 것이다. 당시에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이 상황은 물리적인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이 특별한 경우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이 후일 밝혀졌다. 이것이 바로 블랙홀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이 시공간의 휘어짐이라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은 바로 이 휘어짐이 물질-에너지와 어떻게 관계되는가를 나타내는 식이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일반상대성이론의 르네상스를 이끈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며, 블랙홀과 웜홀이라는 단어를 만든 존 휠러는 이 방정식을 두고 “시공간은 물질에게 어떻게 운동해야 할지를 이야기하고, 물질은 시공간에게 어떻게 휘어야 할지 이야기한다”라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블랙홀 역시 아인슈타인 장 방정식의 특별한 해다. 즉, 시공간이 극단적인 형태로 휘어져 있음을 나타내는 해인 것이다.
우리가 영화 <인터스텔라>를 통해 블랙홀을 체험했다는 말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묘사된 블랙홀의 모습은 미술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블랙홀은 존 휠러의 제자이며 블랙홀의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고, 바로 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 자문이라고 할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 물리학과 교수인 킵 손이 물리학 이론을 동원해서 묘사한 결과물이다. 즉 시간이 지연되는 정도라든지 주변의 별에 미치는 영향 등 영화의 필요에 맞도록 블랙홀을 설계하고, 이 블랙홀이 실제로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최신 물리학 이론을 통해 시뮬레이션 한 결과를 스크린에 옮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 블랙홀은 현재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실제에 가까워 보이는 모습이다.
블랙홀을 본다고? 블랙홀은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해서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물체 아니었나? 맞다. 블랙홀은 빛도 아무 신호도 내놓지 않는다. 그러면 블랙홀을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블랙홀을 본다는 것은 블랙홀이 다른 천체에서 나온 빛에 미치는 영향을 본다는 것이다. 블랙홀도 어떤 은하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 은하에 속한 무수한 별들이 빛나고 있는 한가운데에 블랙홀이 놓이면 블랙홀 자체가 검은 그림자를 드리워서 뒤에 존재하는 별빛을 가리게 되고, 동시에 별에서 오는 빛을 휘어지게 해서 우리가 보는 모습을 일그러뜨린다. 이를 ‘중력 렌즈 효과’라고 부른다. 또한 블랙홀 근처에 다가간 별은 산산이 부서져서 그 일부가 블랙홀에 붙잡히는데, <인터스텔라>의 블랙홀은 회전하는 블랙홀이기 때문에 별의 잔해인 기체는 블랙홀 주변을 돌면서 강착원반(accretion disk)을 이루게 된다. 영화에서 블랙홀을 둘러싼 고리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인터스텔라>에서 보는 블랙홀의 모습은 강착원반 모양 블랙홀의 중력 렌즈 효과를 고려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지금까지 어떤 물리학자도 해 본 일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킵 손이 영화 제작을 마치고, 여기서 본 블랙홀의 모습과 관련해서 몇 편의 논문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인터스텔라>는 블랙홀에 관한 한 확실히 인간에게 새로운 간접경험을 제공한 것이다.

 

 
 

 

 

중력파의 발견과 인식의 확장


한편 인간은 최근 또 다른 방식으로 블랙홀을 ‘보는’ 데 성공했다. 14개국 90여 개 대학과 연구소에 소속된 1,000명 이상의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 그룹 라이고 과학 협력단(LIGO Scientific Collaboration, LSC)이 2015년 9월 14일에 미국 루이지애나 주 리빙스턴과 워싱턴 주 핸포드에 설치된 두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 라이고(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LIGO)에서 중력파를 검출했다고 지난 2월 11일에 발표한 것이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의 해 중에서 파동 형태로 나타나는 해다. 중력파 해의 존재는 일찍이 아인슈타인 본인에 의해 제기되었고, 그 후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기는 했지만 1960년대쯤에는 모든 물리학자에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중력파는 너무나 미약한 현상이라서 이를 직접 검출하는 일은 지난할 것으로 여겨졌고, 누구도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라이고 실험은 인터스텔라의 킵 손과 같은 대학의 로널드 드레버, MIT의 라이너 와이스 세 사람이 1970년대 말에 제안하고 추진하기 시작한 프로젝트다. 이 실험은 중력파가 지나갈 때 생기는 시공간의 떨림이 레이저 빛의 간섭에 일으키는 변화를 검출하는 장치다.
보통의 중력파는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에 블랙홀이나 중성자별과 같이 강력한 중력 현상이 있어야만 측정이 가능할 정도의 중력파가 나온다. 이번에 라이고가 검출한 중력파는 지구로부터 약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각각 태양 질량보다 29배와 36배 무거운 두 블랙홀이 충돌할 때 나온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블랙홀 그 자체로부터 나온 신호를 처음으로 포착한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상으로 블랙홀, 그리고 이에 대해 이루어진 급진적인 발전에 대해서 영화 <인터스텔라>와 중력파 실험을 통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인간이 세상을, 우주를 보는 눈은 놀랍게 발전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의 지식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인식 자체도 역시 확장되어 간다. 이런 것이 진짜 인간 문명의 최첨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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