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 사회학과 교수

[연구실에서 보낸 편지]


고등교육과 혁신

신광영 / 사회학과 교수

근대 이전까지 대부분의 사람은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았다. 조선시대 서원이나 유럽의 대학은 상류층 자제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고, 대부분의 서민은 교육을 받지 않아서 글조차 읽을 수 없었다. 아동 노동을 금지하기 전까지 아동들도 8~9세부터 노동을 시작했고, 평균 수명이 40세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교육은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12년 이상의 교육을 받는다.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 16년 이상 교육을 받는다. 유치원 교육까지 합하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근 20년 가까이 교육을 받는 셈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교육을 받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근대 교육제도는 프랑스 혁명 직후 나폴레옹에 의해서 도입되었다. 나폴레옹은 이전 가톨릭 교회가 종교 교육을 목적으로 수행했던 교육을 국가가 담당하는 공식적인 교육으로 대체하고, 종교 대신에 공화주의와 계몽주의에 기초한 프랑스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의 교육인 중학교(리쎄)와 고등학교(그랑제꼴) 교육도 함께 도입하였다.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성립되면서 프랑스는 유럽에서 교육과 학문에 있어 가장 선진적인 나라가 되었다.

세계화 시대 고등교육 제도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유럽연합은 각기 달랐던 유럽 여러 나라의 교육제도를 통일시키는 ‘볼로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볼로냐 프로젝트는 학위제도를 통일하여, 배우는 학생들과 가르치는 교원들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고 고등교육의 질을 제고하여 학생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개방성과 교육 기회의 확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고등교육의 질 제고는 지속적인 과제로 남아있다. 동유럽과 같이 국가 중심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에서는 고등교육의 질을 제고하는 방법도 관 주도로 이루어져 각종 정부 위원회와 관료가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에, 서유럽에서는 고등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평가와 개선책이 외국을 포함한 외부의 고등교육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관 주도의 개혁은 규제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 반면, 전문가 중심의 개혁은 자문과 상담을 특징으로 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고등교육의 개혁이 시도되고 있다. 개혁의 목표는 너무 다양하다. 세계화 시대 대학의 경쟁력 제고, 인구 감소에 따른 입학생 감소 문제 대처 그리고 산업계의 인력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문과/이과 학과 개편도 포함되어 있다. 동아시아도 동유럽처럼 국가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관 주도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습관화된 생각’이 계속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아비투스라고 부른 ‘습관화된 생각’은 타성의 근본 원인이다.

고등교육은 ‘습관화된 생각’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하는 곳이어야 한다. 벤치마킹을 금과옥조처럼 말하는 것은 혁신이 아니라 모방이다. 대학과 대학원 교육에서 ‘습관화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고력을 키우는 교육은 때로 대학과 대학 교수들의 자기 부정까지도 포함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