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6.4 월 12:21
기획예술
[도시예술②] 종이로 그린 결, 다시점(多視點) 회화의 시각화도시예술 ② 현대미술가 이승오
정우정 편집위원  |  jeongwj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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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호]
승인 2016.04.06  00: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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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예술② 현대미술가 이승오

종이로 그린 결,
다시점(多視點) 회화의 시각화


지대를 침범하고 있는 현대성에 대해 표현한 작품으로는 직접 도시의 파괴를 드러내는 작품이 있고, 그 반대 표현을 차용하는 작품도 있다. 표현하는 대상 혹은 프레임 속 한 서사만이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의미의 전부라고 생각할수록 작품을 읽는 방식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작가는 프레임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서 끊임없이 변용을 시도하려는 자이기에 파괴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도시 곁 마을, 사물, 인물의 흔적들, 그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결을 드러내 주면서 새로운 방식의 시각을 제시하는 작가, 현대미술가 이승오다.

   
▲ Layer-들풍경 90x120

 
작품 속 주체를 거부

서양화가 출신의 이승오가 붓이 아닌 ‘종이’를 선택해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끊임없이 설치미술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 그의 집이 인쇄소를 했기 때문이었으며, 그는 자신이 바라본 시각을 작품에 그대로 투영하고자 했다. 바닥에 널려 있거나 쌓여 있는 종이뭉치가 곧 자신의 세계이자, 현대인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러한 잔상은 1990년대 후반 설치미술 작업으로 이어졌으며, “깔려 있는 것이나 밟을 수 있는 것”이 곧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자유로운 입장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프레임이라는 틀의 한계를 이미 넘어서고 있는 그의 작품 활동이 다시 틀이라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바로, 이른바 ‘반공 포스터’에 대한 기억이다. 그가 경험했던 1970년대, 1980년대 사회적 이념은 ‘반공’이라는 병적인 주술에 의해 통용되었으며,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에는 ‘포스터’ 방식이 무척 익숙했던 것이다. “날이 밝으면 포스터를 보고, 또 날마다 포스터를 그려보라 하는데, 누가 여기에 익숙해지지 않겠나. 포스터는 지금도 계속되고, 그 프레임에 들어가는 대상만 다를 뿐이다”. 작가는 포스터에 대한 기억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곧 우리였다”고 말한다. 단지 그 속에 그려내는 것들이 ‘주체’로 해석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일 것이다. 그가 그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어쩌면 그날의 ‘시간’이자, 눈앞에 ‘보이는 낯선 것들’일 수밖에 없다.


“생명을 다한 각가지 종이들을 수집해 붙이고, 썰고,
다시 붙이면서 소멸과 탄생을 발견하고,
공유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한다.
선과 색으로 변한 종이들은 여러 가능성을 가진
준비이고 수많은 것과 연관관계를 갖게 되며 자타를
위한 향연으로 전환한다.
시간과 사건이 만나 역사를 만들듯 종이는 동서고금의
형태를 종횡한다.”

이승오 작가 노트

   
▲ Layer Documentary 117x91

 

   
▲ Layer Documentary 117x91

  

   
▲ Layer Documentary 117x91

 

새로운 평면성의 회복

헌책을 비롯한 폐지를 모아서 죽 쑨 풀을 바르고, 하나의 고체 덩어리로 응축시킨 뒤, 전기톱에 밀어 넣는 일련의 작업 과정은 그가 살려내고자 하는 것과 부정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상상의 방식이다.

특히 반복적인 흔적과 평면의 나열은 그가 작품을 그리는 방법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몇몇 미술평론가들은 단지 이승오 작가의 작품을 “붓이 아닌 손에 의존한 작품” “종이라는 친숙한 재료를 사용한” “일루젼의 환영 혹은 재연”으로만 해석할 뿐, 그가 말하고 있는 ‘다시점(多視點, multi-view. 엄밀하게 말하자면 표현방식을 포함한 다시점)’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다. 단지 종이라는 재료만을 쌓아서 회화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이 그의 유일한 특이성인 것처럼 말한다. 혹자는 “물결치는 듯한 결을 따라 쌓여지는 시간과 역사, 다시 문명의 체취까지도 포괄하는 의미”를 언급한 바 있지만, 실상 그 시간과 역사라는 사건들은 더욱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개발 도심에서 나고 자라 독재 정권을 경험하고, 신자유주의 속 범람하는 문화산업에 노출된 한 현대미술가의 시각에 포착된 끊임없는 잔상들이다. 작가는 그 속에서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찾아갔으며, 작품과 대중이 만나는 접점을 현대미술이라는 도구로 모색해 온 것이다.

그는 원근법을 뭉개고, 다시점 회화의 가능성에 대해 작품으로 말한다. 일면적인 시각이나, 초점, 작품을 바라보는 통제 양식, 즉 중심을 찾으려는 태도는 현대성의 전형인 태(態)다. 그가 말하고 있는 ‘쌓임’ 혹은 ‘결’이란 결국, 근대에서 이양된 원근법도, 무조건적인 파괴성을 내재한 방법도 아닌, 그의 말에 따르면, “경험되고 실천된” 방식으로 드러나야 하며, 이것은 작가 못지않게 대중에게도 필연적인 태도로 요구된다. 단지 작품 자체를 인상적이고, 시각적인 대상으로만 받아들이는 게 아닌, 한 발짝 다가가서 작품의 어느 한 지점, 한 부분에 시각을 머무르게 하는 차원이 존재 해야 한다는 셈이다. 예술이란, 애초에 부정한 것(혹은 신성한 것), 어두운 것(혹은 빛나는 것), 추한 것(혹은 아름다운 것)들의 잔상이자 표상이 아니었나. 이 속에서 어떤 측면의 이면을 들여다볼지 선택하는 건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 Layer Documentary 117x91

 

이승오(1962~) 현대미술가. 중앙대 예술대학 및 동 대학 일반대학원 서양화학과를 졸업했다. 폐책 등을 이용한 종이 겹으로 회화적 표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주목을 받아왔으며, 주로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 서양의 명화를 패러디한 팝아트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표작품으로는 <적(積)>, <결>, <풍경>, <포스터> 시리즈 등이 있다.

 


정우정 편집위원|jeongwj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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