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6.4 월 12:21
기획예술
[도시예술①]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방관자의 고백하태범 / 현대미술가
정우정 편집위원  |  jeongwj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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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호]
승인 2016.03.02  17: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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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예술① 현대미술가 하태범 ‘White’

중세에는 고대 로마 때 석회 부조를 흉내 내 만든 그리자유(grisaille) 형식을 띠는 작품들이 교회 제단이나 벽면을 장식했다. 인물을 묘사한 이 조형들이 재현하거나 가리키는 것은 절대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미술가 하태범은 미디어를 통해 바라본 사건들을 단색의 명암으로 만든 조형물, 이를 찍은 사진, 영상으로 비판한다. 이것은 나와 당신,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 모두가 공범자”다. <편집자 주>

 

   
▲ 하태범, Terrorist attack International University Islamabad, Pakistan_pigmentprint & facemount_120x180_2010

“인터넷에 올라오는 여러 사건들을 다룬 뉴스의 사진자료들을 수집하여 작은 모형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모형을 처음에 수집한 사진과 같은 구도와 느낌을 갖도록 다시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재구성한 모형으로 재현된 현장은 흰색으로 인해 피가 거세되고 작은 원본에 의존한 탓에 세부는 생략되어 있다. 인위적이고 축소된 형태로 인해 사진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실제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얼핏 그리스 유적지와 같은 고요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정경, 인간은 얼마나 무심하며 잔인한가.”

-하태범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방관자의 고백-


하태범 / 현대미술가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들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 뉴스를 보며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저 바다 건너 어느 나라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하여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기사와 어젯밤에 발생한 총기사고의 기사를 보며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다.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걸 느끼며 이내 그들이 겪는 고통이 아닌 어제 마신 술로 쓰린 내 속이 괴로워서임을 자각한다.

또 하루가 지나고 나와 주변의 일상은 큰 변화가 없는데 뉴스에서는 새로운 사건이 나를 기다린다. 지금도 모니터 화면에서는 전 세계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해가 지날수록 그런 사건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더욱 위태롭고 두렵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1년 전이나 2년 전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렇듯 매 순간 벌어지는 참혹한 일들은 그렇게 기억에서 사라지고 또 다른 공포와 연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 하태범, Tragedy in Yong San-1_150x112_pigmentprint & facemount_2010

사진은 거짓 또는 진실을 전달하는 양날의 칼과 같다. 2009년 용산의 분쟁을 담은 참혹한 사진 한 장에서 나는 부조리를 일으키는 정치나 비인권에 대한 분개보다 강렬한 이미지에 시선을 빼앗겼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타일러 힉스(Tyler Hicks)가 찍은 사진 <처형당하는 탈레반(Taliban Execution)>을 놓고, 이런 사진들이 자아낸 연민과 메스꺼움으로 마음이 심란해진 나머지, 그 밖의 다른 어떤 잔악 행위들과 어떤 주검들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세상의 사건사고는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소비되면서 대중을 무디게 했다. 대중은 참혹함에 익숙해졌으며 미디어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더 자극적인 것을 생산한다.

나의 사진 작업인 <화이트(White)>는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의 여과 혹은 냉정함이라고 할 수 있다. 작업 과정은 여러 사건을 다룬 인터넷 뉴스의 사진 자료를 수집하면서 시작된다. 이 이미지들은 대부분 분쟁지역이나 재해를 다룬 사진들로, 파괴된 건물과 잔해 등 폐허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실제 상황의 긴박함을 느낄만한 화재의 흔적이나 혈흔은 색채와 함께 제거되고 백색의 모형으로 만들어지며 다시 사진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변형된 사진에서 보이는 모습은 실제의 그것과는 달리 몽환적으로 다가온다.

백색은 기억에서 사라진 당시의 연민 그리고 두려움을 덮어버림을 상징한다.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차츰 불필요해 보이는, 어쩌면 상대적으로 무관해 보이는 배경을 의도적으로 삭제하면서 여백을 만든다. 이 여백은 나의 방관자적 시각을 점점 극대화하고자 함이다. 나는 이런 냉정함과 방관자적 시각의 이면에 존재하는 안도감과 그에 따른 카타르시스를 영상작업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재해나 재난 따위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해 조직한 구호단체 또한 사회와의 이해관계, 자본의 틀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재난마켓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구호단체는 재난으로 돈을 버는 식의 모순된 이미지를 양산한다. 구호단체의 광고는 한 달에 2만 원이면 그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나 또한 아주 적은 금액의 기부를 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점점 나아지는 듯하며 동시에 구호의 손길도 오랜 기간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변함없이 배고픔과 죽음이라는 공포에 떨고 있다. 슬픔에 잠긴 어린이의 모습이 다양한 매체와 커다란 전광판에 드리운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움의 손길을 요구하는 광고는 늘어만 간다. 광고 속 얼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얼굴은 어느 배고픈 나라와 전쟁의 소용돌이에 희생당하는 어린이들을 상징한다. 한 개인의 초상이 아닌 우리의 슬픔과 연민을 자극하는 매개체로서의 상징물이 된 것이다. 이렇다면 결국 얼마의 기부금은 그들을 돕고자 함보다 우리를 속죄하기 위함이 아닌가?

아침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모니터를 마주한다. 어김없이 숙취가 괴롭히지만, 모니터 속의 기사를 본다. 보도사진을 다운받고, 슬슬 사진 속 현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무너지거나 부서진 건축물들을 모형으로 재현하는 것은 원형의 건축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사건이 저질러져 버린 후의 현장을 만들다 보면 곳곳에서 단순화하거나 생략해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모형이 보도사진의 모습을 갖추면 다시 사진을 찍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고 스스로의 딜레마에 빠진다. 나 또한 그들의 슬픔과 고통의 모습을 내 방식대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백색으로 칠해진 벽과 백색의 작품이 가득한 전시장은 보도사진으로 전달된 사건들과 흡사하다. 참혹한 소리도 슬픈 색도 잠들어 고요하다. 다만 길게 늘어진 전시장 끝에 작업실은 다소 복잡하고 소란스럽다. 책상 위 모니터에서는 전쟁, 테러, 기아, 난민 등의 소식이 반복되어 검색된다. 재현된 작업실을 통해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나 자신이 어떻게 물들고 무뎌지며 반성하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연속되는 딜레마의 늪에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어떤 태도로 그것들을 대하는지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가 공범자’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하태범(1974~) 현대미술가. 중앙대 예술대학 및 동대학 일반대학원,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 조형예술대학 조소학과를 졸업했다. 매체에 기록된 사건 사진을 중심으로 작업한 조형물, 사진, 영상 작업을 통해 다시 한 번 미디어를 비판한다. 대표 전시로는 <나는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2008, 베를린), <화이트>(2012, 서울), <윈도>(2013, 서울) 등이 있다.

 

   
▲ 하태범, Tragedy in Yong San-2_120x180_pigmentprint & facemount_2010

 

 

   
▲ 하태범, Dance on the City 2 600x300cm Video & Installation A4 paper, Single channel video 00:04:20 2011 중에서

 

   
▲ 하태범, Dance on the City 2 600x300cm Video & Installation A4 paper, Single channel video 00:04:20 20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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