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생자치 톺아보기 ④ 대학원 총학생회장단 선거

선거운동 없는 선거, 투표를 위한 투표

지난달 24일(화)-26일(목) 사흘에 걸쳐 37대 대학원 총학생회 회장단 및 계열대표 선거가 치러졌다. 등록한 회장단 후보가 없어 3차 모집 끝에 단선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일반대학원 35대 총학생회장이자 36대 정책교류국장이었던 이구 총학생회장 후보(동북아학과 박사1차)와 이동욱 부총학생회장 후보(생명과학과 석사2차)가 투표자 기준 85.1%의 찬성률로 당선되었다(찬성 315, 반대 37, 무효 18표. 전체 투표율 12.8%).

선거 진행 과정은 고요했다. 대학원 건물에 붙은 자보와 포스터, 후보등록을 독려하는 세 차례 문자를 제외하고는 선거기간임을 알아차리기조차 힘들었다. 원우들은 이번 선거를 어떻게 느꼈을까. 막 투표를 하고 나온 원우A씨(사회계열 박사과정)를 만나 선거에 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망설임 없이 투표할 수 있었다.” 원우A씨가 운을 띄웠다. “그 이유는, 내가 후보에 관해 아는 바가 전혀 없고, 그 후보가 자신을 알리려는 의지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원총을 잘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어필이 전무했기 때문에, 보이콧을 하기보다는 의사표명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투표를 했다.” 선거운동 기간임을 느낄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대학원 건물에 포스터가 붙어있었기 때문에 선거 기간인 줄은 알았지만, 후보의 어떠한 노력도 볼 수 없었다”라고 답했다. 또한, 계열대표의 경우 20인 이상의 추천을 받아 등록이 가능한데, 이것만으로 후보자격 검증 절차가 과연 충분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원우A씨는 “전체적 상황이 개탄스럽다”고 강하게 발언했다. “공약은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인데, 그런 것들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어느 학교 무슨 과 출신인지가 제일 먼저 배치된 똑같은 형식의 포스터들이 당황스러웠다. 0점짜리 포스터라고 생각한다. 선거 유세 과정에서 공약집이 따로 마련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후보자가 남학우라는 점에도 의문을 표했다. “일반대학원에 여학우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여학우들이 대표성을 갖지 못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물론 여학우들이 후보로 나가지 않는 상황이 맞물려 있겠지만, 제도적으로 어떻게 대표성을 확보할 것인가에 대해서 사실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에 더해, “대학원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학력수준이 높은 사람들인데, 제일 저급한 수준의 투표를 하는 것 같다”고 A씨는 생각을 밝혔다.

새로 당선될 후보자들에게 바라는 점을 묻자, “존재감 있는 학생회를 운영했으면 좋겠다. 학생회는 본인 경력에도 남는 활동이다.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 활동을 했으면 한다. 특히 대학원생 연구공간 문제를 의식하고 개선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선거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절차를 가동시킨다. 선본은 공약을 뽑아내면서 선본의 입장, 정체성, 방향성을 확립하고 선거유세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원우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자신의 비전을 알려나간다. 선거공약집은 고사하고 리플렛도 없이 간략한 포스터만 붙어있는 채로 진행된 이번 선거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당연한 풍경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지나친 냉소주의자들이다. 냉소주의자는 팔짱을 낀 채 상황을 방관하기 때문에 상황의 지속에 공모한다. 현 상황이 문제라고 느낀다면 냉소보다 순진한 의구심이 필요하며, 또한 그 의구심을 구체화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투표율과 관계없이 투표자 중 과반수 찬성이면 당선이 되는 현재 선거 회칙에 문제는 없을까? 선거공약집 혹은 리플렛을 제작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견들을 안건으로 올려서 회칙개정을 해보기 위해 전체대표자회의를 여는 것 아닌가?

대학원은 수많은 이해관계를 가진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드는 파편화된 공간이다. 정치가 불가능해 보이고 학생 자치란 지나간 이상이 되어버린 것 같은 현 대학원 사회. 여기서 대표자가 해야 할 역할이란 학생들의 무관심에 지침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발품을 팔아 의견을 수합하고, 학교 및 사회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사안을 알려내고, 요구안을 만들어 대학원 학생들의 입장을 대신 발언하는 일이다. 그것이 선거를 통해 작동하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정의이다. 원우들이 무관심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기 위해서, 대학원 자치기구들이 있다. 원우들도, 대학원 총학생회도, 좀 더 서로 괴롭혀야 한다. 우리, 피곤하고 귀찮은 사이가 되자.

홍보람 편집위원 | silbaram9@naver.com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