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기계와 인간의 차이

-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

 

 
 

  생명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일 만큼, 핵전쟁 이후 황폐해진 이곳은 지구이다. 많은 사람은 다른 행성으로 이민을 떠났고, 지구를 떠나지 않은(못한) 인간들 틈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기계 인간)들이 몰래 살아가고 있다. 방사능 오염으로 이미 많은 동물이 멸종되었고, 살아있는 동물을 키우는 것은 권력과 신분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주인공 릭이 안드로이드 사냥꾼 일을 하면서 겪는 인간에 대한 고뇌를 그리고 있다.

  튜링이 증명한 불완전성 정리는 어떤 기계로도 진리를 끌어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기계가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수많은 알고리즘을 입력하여도 얻을 수 없는 수학적 진리처럼, 인간이 튜링기계였다면 자신의 한계인 멈춤문제를 넘어서고,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테니까. 오히려 튜링기계의 한계를 보여주는 정리를 증명한 그 자체가, 인간이 튜링기계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기계가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 이는 무한한 사고를 통해 인간성(소통, 정서, 기분 등)을 가질 수 있는 건 오직 인간뿐이라는, ‘진짜 인간’의 정의처럼 보인다. 이 기준에서 안드로이드는 아무리 인간의 모습과 가깝다 할지라도 ‘가짜 인간’이다.

  주인공 릭은 가짜 양을 키우면서도 항상 진짜 양을 갈망한다. 진짜 양의 가치는 오로지 살아있다는 것뿐이다. 이는 살아있는 자(인간)만이 사고체계와 그에 기반을 둔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우월성이며, 안드로이드를 죽여도 되는 정당성이다. 안드로이드를 죽이며 혼란을 느끼는 릭의 모습에서, 소설은 ‘과연 무엇이 진짜 인간인가’라는 의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그래서 공감하고 소통하며 마음이 있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결여된 21세기 인간들을 보면서.

황나리 편집위원|hikali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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