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학과 우리소리 바라지


[공동연구, 너와 나의 연결고리]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대의 인고를 요구하지만, 그래도 즐거울 때가 있다. 함께 공부할 때, 공부에 대한 고민을 나눌 때, 우리는 즐겁다. 함께 해결되지 않는 문제와 씨름한다는 의미에서, 그 결과물을 다른 분야의 원우들과 나눈다는 의미에서, 이 지면에 소개되는 글은 ‘공동연구’다. <편집자 주>


바라지, 전통음악에 제시한 새로운 가능성


최근 전통음악계에 ‘바라지’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바라지는 전통음악을 소재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실내악 규모의 연주 단체다. 작품 ‘비손’, ‘무취타’, ‘씻김 시나위’, ‘바라지 축원’ 등을 내면서 올해 굵직한 국내외 문화 축제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월드뮤직마켓 <워멕스(WOMEX)> 공식 쇼케이스 33팀 중에도 선정돼 헝가리에서 주목을 받았다. 전통과 현대를 적절하게 조합해내면서 음악으로 공간을 쟁취하고 대중을 음악 속으로 몰아넣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 8명 음악가 중 7명이 본교 한국음악과 출신 혹은 과정 중에 있다.

 
 

음악을 만드는 것

한국음악의 창작 방식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연주자를 중심으로 한 창작 방식, 두 번째는 작곡가를 중심으로 한 창작 방식이다. ‘작곡가’라는 특정한 주체가 생겨나기 전에는 소리를 다룰 줄 아는, 즉 악기를 연주할 줄 알거나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19세기 말 작곡가라는 개념이 서양으로부터 이식되면서 곡을 만드는 것을 하나의 기능으로, 즉 작곡을 독립적인 장르로 발전시켜 온 것이다.

바라지는 연주자가 창작의 주체가 된 음악하기를 다시금 구현하는 형식을 보여준다. 지난한 시간 동안 지역에 혼재해 온 음악 어법을 찾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 내는 방식인데, 이는 오래전부터 민중들 사이에 체득된 언어를 다시 소환해 현대에 풀어냄으로써 다시금 대중이 음악을 누리는 원초적인 힘을 키우는 데로 돌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 사실 연주자가 창작자가 되어 연주하는 음악하기는 근대 이후에도 자주 구현돼 왔다. 그러나 다소 정형화되고 형식적이었던 기존의 연주자 중심 창작 방식과 비교하면, 바라지가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형식은 ‘체화된 연주’로서, 연주자가 직접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어법으로, 곧 자신의 의식으로 연주(곧 말을 건다)하는 것을 보여준다.

바라지가 구현하고자 한 체화된 연주는 그들의 첫 번째 공식 무대였던 2011년 페스티벌 <오! 광주-브랜드 공연축제> 개막작 ‘자스민 광주’에서 시작됐다. 이 축제는 ‘광주국제공연예술제’와 ‘정율성 국제음악제’, ‘전국여성합창경연대회’가 통합돼 광주문화재단이 출범하면서 광주의 대표 브랜드 공연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당시 공연 제의를 받은 본교 전통예술학부 한승석 교수는 교내외 실력 있는 젊은 연주자들로 연주단체를 꾸렸는데, 이가 바로 바라지의 모체다. 한승석 교수는 “소극적 음악의 형태가 아닌, 적극적 음악하기”, 지난 민속악 명인들이 그려내던 “소리와 악기가 하나가 되는 형식”으로 민중을 위로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때, 음악과 의식이 하나가 될 수 없으면, 표현은 의미 없는 메아리가 될 뿐, 결코 체화된 연주나 나아가 주체적인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 더욱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한 이 개막작(바라지 뿐만 아니라, 여러 음악가가 공동으로 참여한 형식의 음악이었다)은 민중 삶의 근간을 이루는 개인주체를 끊임없이 지키고자하는 태도가 아니면, 연주자의 발화가 어렵다는 데서 기인하고 있는 한 교수의 기존 창작 구상과 맥을 함께하고 있다.

■ ‘바라지’는 무가에서 부르는 즉흥 소리를 뜻한다. 뒷바라지, 옥바라지 등 무언가를 알뜰히 보살펴 준다는 의미.
■ ‘바라지’는 무가에서 부르는 즉흥 소리를 뜻한다. 뒷바라지, 옥바라지 등 무언가를 알뜰히 보살펴 준다는 의미.


체화된 음악의 방식, 개비와 비개비

바라지는 예술감독 한승석 교수 외 8명의 연주자로 구성돼 있다. 소리 김율희, 소리 및 타악 강민수, 김태영, 가야금 김민영, 대금 정광윤, 아쟁 조성재, 피리 이재혁, 해금 원나경이 그 구성원이다. 한승석 교수는 이들을 “개비”라고 표현한다. 전통음악에서 개비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광대나 무당집안 출신으로 그 핏줄부터 예술가라는 뜻이다. 바라지는 주로 진도나 경기 지역의 음악가들의 자녀 혹은 제자로 구성돼 있다. 이렇게 보면 마치 ‘경영권 계승’과 같은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통음악 영역이란, (민속악은 예부터도 그랬지만) 특히 일제강점기 이후 그 ‘경영’이랄게 천대받아오기를 두 번 말할 필요는 없다. 1960년대 이후, 전통에 대한 국가 정책에 따라 상황은 조금 나아졌지만, 이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음악하기는 계승과는 거리가 있으며, 오히려 그 계승에서 거리를 두고 따로 음악하기, 스스로 음악하기, 자신들만의 음악하기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생겨난다. 따라서 이들 개비의 역할은 더욱 상징적이며,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의존적이고, 동일시를 강조하던 전통음악 형태는 이제 몇몇 젊은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표현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4월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이틀간 열렸던 그들의 공식 데뷔 공연 ‘비손(옛 제 의식에서 신을 향해 두 손을 비비며 바란다는 뜻)’의 호황이 이 형태의 가능성을 증명해줬다. 바라지는 지난 4년(기실 그들이 학부시절부터 학내 동아리 형태로 진도 음악을 연구해오던 시간까지 모두 더하면 10여 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자신들의 정체성을 축약할 음악을 구상해 왔다. 바라지는 ‘비손’, ‘씻김 시나위’, ‘무취타’, ‘바라지 축원’, ‘만선’ 등 첫 음반을 준비하고 출반하면서 한 해를 시작했다. 이 밖에도 여러 공연에 의해 작곡된 ‘휘산조’, ‘정든 아리’, ‘생!사고락(生!四鼓樂)’ 등이 있지만, 이들이 주축으로 하는 곡을 보면, 중복되는 어법이 많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음악 어법은 규칙과 동시에 비규칙 현상을 동반한 것으로, 무한한 차이를 지속해서 끌어내는 음악을 통해 자신들만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몰아의 상황을 본인이 체화한 음악에서, 그 어법으로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방식. 이를 통해 관객은 한 시·공간에서 음악과 하나가 된다. 하지만 ‘비개비’ 역시 이러한 방식은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음을 ‘개비’ 외 본 팀에 소속된 연주자들이 보여주고 있다.

 

음악 권력에의 의지

음악도 의사소통의 하나로, ‘발화’를 목적한 수단으로 규정했을 때, 바라지의 음악하기는 또 하나의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는 근현대 한국 음악이 만들어온 또 하나의 축인 작곡가 중심의 곡에서 다시금 연주자 중심의 작품을 재개발해내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같은 주장이 작곡가, 즉 작가 중심의 음악을 지양해야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 전통음악의 방향성에서 또 하나의 가능성이 좀 더 젊은 세대에서 단단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음악의 장에 더 큰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 점이 반가운 일이다. 이는 어떤 권력이나 통제에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이야기가 가능해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요즘 팀 이름에서 유행하는 수식어인 ‘뮤직 그룹’, ‘창작 그룹’, ‘컨템포러리’ 등을 거부한다. 오직 ‘바라지’라는 자신들의 고유용어를 지향하거나, ‘우리소리 바라지’라고 수식할 뿐이다. 어쩌면 이 의식부터가 음악사회 권력에 저항하는 하나의 작지만 큰 움직임이 아닐까.

정우정 편집위원 | jeongwj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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