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정 / SOGI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퀴어의 현재]

이 기획은 현재 한국에서 성소수자 내지 동성애자의 느슨한 대체어로 사용되는 퀴어가 어떻게 인식론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마련되었다. 또한 퀴어가 난해한 학계의 용어일 뿐만 아니라 언제나 현실개입적 운동과 관계 맺는 정치학임을 주장한다. 특히 ‘앞서가는’ 미국의 연구들을 소개하고 친절하게 주석을 다는 글이 아닌, 현장에서 돌출되는 문제의식들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 중인 석박사, 활동가들의 질문‧주장하는 글을 싣는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바이섹슈얼 인식론과 동성결혼 ②인권거버넌스와 퀴어정치 ③퀴어-페미니즘 ④겁먹은 자들의 커밍아웃

* 원래 기획되었던 "혐오발화세력 정동읽기"가 필자와의 논의 끝에 "퀴어-페미니즘"으로 대체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편집자 드림. 

 

 
 

퀴어와 페미니즘, 서로를 향한 절박한 응답

나영정 / SOGI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의 상당수 주체들은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치적 입장과 비전을 가지고 있고, 여성운동을 하는 다수의 활동가도 성소수자로서, 퀴어정치학과 여성운동의 비전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퀴어[덧1]와 페미니즘의 연합, 교차, 서로에게 유의미한 응답을 했던 역사는 한동안, 이상하리만큼 부재했다.

  90년대 후반 대학 운동사회를 중심으로 성정치가 제기되고 영페미니스트 운동이 부상할 때, 레즈비언 페미니즘에 입각해서 발언하고 사람들을 조직하고 담론을 생산했던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레즈비언 운동 내부에서 발생한 ‘아웃팅은 범죄다’라는 슬로건의 캠페인과 페미니즘 내부의 호모포비아/트랜스포비아가 드러나면서 그러한 움직임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아웃팅 방지 캠페인은 레즈비언 혹은 레즈비언 운동을 공개적으로 호명하는 것조차 꺼리게 만들었고, 연대가능한 조건을 함께 타진할 수 있는 ‘다른’ 운동과의 만남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동결되었다[덧2]. 당대 여성운동은 레즈비언 혹은 성소수자 운동의 주체나 이슈들을 페미니즘 시각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상호 침투하면서 개입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당사자가 아니라 잘 몰라서” 긴 침묵을 선택했다. 성소수자 운동의 경우 페미니즘‧성평등보다 인권이라는 프레임에 친화성을 갖고 성장하면서 인권운동과의 연대를 활발하게 해나갔다. 최근 본격화된 인권의 제도화 과정에서는 법제도를 마주하는 사건들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성적 지향’이라는 개념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기재됨으로써 정책적인 분류 또한 인권정책으로 자리 잡아가는 양상을 보인다.

  한편 섹슈얼리티의 사회구성론이 여성운동의 담론적 기반이 되면서 성(性)문화의 변화가능성을 제시하는 이론적 자원으로 기능하였고, 성적 지향의 유동성을 열어두고 학습하고 경험하는 것의 중요성이 공유되었다. 그럼에도 몇 편의 논문을 제외하면 지난 몇 년간 퀴어와 페미니즘 간의 공동의 개입이나 상호간의 논쟁 및 충돌은 사건화되지 못했다[덧3]. 그 사이에 연속적으로 보수정권이 들어서고 페미니즘에 대한 문화적인 백래쉬뿐만 아니라 정책적인 후퇴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성소수자의 인권은 더욱 첨예한 사회적 쟁점이자, 아직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인권의 문제’라는 형용모순을 체현하는 이슈가 되었다.

뜻밖의 존재 위치 확인

  대전광역시에서 성평등조례를 개정하여 2015년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조례에서 성평등정책 시행계획 수립에 성소수자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명시하였다. 성평등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된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 곳은 과천시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교회동성애반대대책위원회 등은 대전시를 향해 반대시위를 하며 여성가족부에 민원을 보내서 대전시가 제정한 성평등조례가 모법(母法)인 양성평등기본법에 부합하는지를 질의하였다. 놀라운 것은 여성가족부가 8월 4일, 민원을 받은 지 며칠 만에 한국교회동성애반대대책위원회와 대전광역시에 각각 답변과 공문을 보내서 “양성평등기본법은 성소수자 관련 정책을 포함하거나 이를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양성평등기본법에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규정하는 것은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 취지를 벗어난 것이라 하겠습니다”라고 적시한 점이다.

  ‘모든’ 국민을 여성 혹은 남성으로 양분하는 법체계 하에서 성소수자가 양성평등기본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여성가족부의 이러한 답변은 성소수자를 비국민으로 밀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한국의 여성정책이 근간에 두고 있는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개념은 이미 성별과 함께 연령, 인종, 장애, 계급, 성적지향 등으로 인해서 교차적으로 발생하는 차별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해결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여성과 남성이 가진 어떤 특성만을 떼어내어 제도 밖으로 내던진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고 의도가 있는 행위이다[덧4]. 소위 민주정부 10년간 NGO와의 거버넌스를 가장 열심히 해왔다고 자부하는 여성가족부로부터 이러한 존재 위치 확인을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는 거버넌스에 (비판적으로) 참여해왔던 여성단체의 입장에서도 매우 당혹스러운 확인이다.

퀴어-페미니즘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여성정책에 관한 기본법이 여성발전기본법에서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되는 과정에서 명칭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성평등 대 양성평등의 구도로 벌어진 논쟁은 여성정책의 대상에 성소수자를 포함할 것인가의 문제로 수렴되었다. 이미 이 구도 자체에서 성소수자는 남성과 여성 밖의 ‘잉여’였고 포함과 배제의 대상으로 상정되었다. 그러나 여성운동이나 성소수자운동이 이러한 논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강력한 대항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다가 대전 성평등조례를 계기로 본격적인 대응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 활동을 통해서 ‘LBTI 여성’이라는 프레임이 한국 성소수자운동 안에 처음 생성되었는데, 이는 성별에 따른 차별을 성소수자 인권 프레임에 교차시켜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한편 여성운동은 이 과정에서 함께 연대체를 구성하고 활동해나가면서, 여성정책에서 근간으로 삼고 있는 성별의 개념을 다시 질문했다. 즉, 그것은 페미니즘과 여성운동 차원에서 근거로 삼고 사고해왔던 성별과, 법제도가 해석하고 있는 성별의 개념 사이에 어떠한 간극과 모순이 자라왔는지를 톺아보는 과정이었다[덧5]. 무엇보다 퀴어-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오랜 단절 끝에 새로운 경험과 지평을 열어가야 할 국면이 ‘여성 혐오’와 ‘성소수자 혐오’가 창궐하는 시대 앞에 함께 펼쳐졌다.

 

출처: NGA
출처: NGA


[덧.]

글쓴이 노트

1.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또한 그렇지만, 퀴어라는 단어를 둘러싼 이해와 입장 차이는 상당히 크다. 퀴어가 서구의 맥락에서는 ‘낙인의 언어를 저항의 언어로 바꾼 사례’인 반면, 한국에서는 성소수자의 하위문화를 가리키는 용어에서 출발하여 현재는 섹슈얼리티보다 젠더 차원의 비규범성을 가리키는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의미와 더불어 이미 정식화된 성소수자 인권담론을 넘어서는, 규범과 구획된 범주를 질문하며 성소수자들이 놓인 정치경제적 토대를 심문하는 태도와 입장을 퀴어(정치학으)로 정의한다.

2. 2000년대 초반 일군의 레즈비언 운동이 벌였던 아웃팅 방지 캠페인이 가진 의미와 한계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토리(2010), ‘한국사회 LGBT의 성적 시민권-비판과 전망’.

3. 페미니즘, 레즈비어니즘, 퀴어이론, 트랜스젠더리즘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다음을 참조. 김지혜(2011), ‘페미니즘, 레즈비언/퀴어 이론, 트랜스젠더리즘 사이의 긴장과 중첩. 루인(2010), ‘규범이라는 젠더, 젠더라는 불안: 트랜스/페미니즘을 모색하는 메모, 세 번째’.

4. 반성소수자 단체와 보수 개신교회의 대응 및 역할을 망각한 여성가족부의 성차별조장‧여성정책 왜곡 행태에 대한 자세한 비판은 ‘성평등 바로잡기 대응 회의’의 성명과 의견서를 참조. http://sogilaw.org/58

5. 여성주의 단체 언니네트워크의 경우 여성주의와 성소수자인권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교섭하는 활동을 해왔다. 다음의 글을 참조. 난새, ‘퀴어페미니즘의 서막’, 인권오름 제456호. http://hr-ore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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