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대학원생 연구공간 점검

 
 

보부상 대학원생

  3대 1의 경쟁률을 뚫지 못하고 이번 학기에도 열람실 지정좌석 추첨에서 떨어진 A씨(인문사회계열, 석사2차)는 최근 학교 열람실에 아예 발길을 끊었다. 전공서적 일고여덟 권과 논문 십여 편을 짊어진 채 대학원건물과 도서관을 전전하던 A씨는 “책을 놔 둘 연구실이나 지정좌석이 없어서 매번 혼자 무겁게 다니는 데 지쳤다”며 집근처 대학도서관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는 중앙대에서 연구를 하지 못하는 현 사태는 학생 대비 비좁은 공간이라는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조건’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공간은 물을 담는 비커처럼 텅 빈 용기의 일종이 아니라, ‘적절한’ 주체들의 ‘적절한’ 실천을 요구하면서 지탱되는 정치의 장이다. 공간점유의 문제가 언제나 이미 정치이기에, ‘객관적 조건’은 늘 의심과 개입의 대상이다.

타 대학, 학과연구실은 기본옵션

  13년 9월,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학내인권센터와 대학원총학생회(이하 원총)가 함께 실시한 <인권침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습권 침해와 관련된 항목 중 “연구공간이 없거나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었다”는 항목에 61.2%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특히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75.8%가 “그렇다”고 답해, 예체능계열(63.6%)을 제치고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올 하반기 본지를 통해서도 대학원생 연구공간 문제가 원우들로부터 직접 제기되었다(321, 322호). 대학원생들을 위한 학내 연구공간은 공동열람실 형태로 대학원 및 도서관에 총 300석이 마련되어 있다. 이 중 고정적인 연구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은 합쳐서 100여석이 채 되지 않는다. 현재 재적중인 대학원생의 수가 3천여 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다. 특히 인문사회계열은 학과 차원에서 별도의 학내연구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렇다면 타 대학 상황은 어떨까.

  한양대, 경희대, 서울대, 이화여대, 연세대 등 많은 대학원의 인문사회계열이 ‘학과별’로 열람실 및 연구실을 갖추고 있다. 한양대 인문대는 학과에 필요한 자료나 도서, 컴퓨터가 비치된 학과연구실과 10명가량 수용 가능한 열람실을 동시운용 중이다. 경희대 인문대는 10-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미나실이 학과별로 배당되어, 학부와 대학원이 함께 사용한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은 석사/박사연구실 각각 15석 내외의 지정좌석이 갖춰져 있으며, 이화여대 인문대도 지정/자유좌석 각 10석 정도를 수용하는 연구실을 모든 학과가 인문대 건물에 갖고 있다. 연세대 인문대는 학과 크기에 따라 최소 7석에서 최대 30석, 사회대는 최소 40석에서 최대 55석 규모의 연구실이 있는 상태다. 본교 대학원과는 매우 상이한 풍경이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상준 대학원장(물리학과)은 “인문사회와 예술계열 공간이 열악하다는 현실인식을 하고 있으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개탄했다. 또한 “인문사회계열이 학과별로 연구실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원총도 대학원생 연구공간 확충을 꾸준히 이야기해왔다. 이번 36대 원총은 선거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경영경제관(310관)에 대학원생을 위한 연구공간 확대 추진”을 내걸었으며, 올해 초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310관이 완공되면 교수연구실, 실험실습실, 강의실 등 각종 교육/연구시설 입주에 따라 대학원생을 위한 교육/연구공간이 대폭 증가될 것”이라는 구두확약을 받은 바 있다. 13년부터 본부는 310관 신축을 대학원등록금 인상의 직‧간접적 이유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년 7월 완공을 앞둔 310관의 공간조정 논의는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대학원의 구체적 요구가 필요해

  김박년 시설관리처장은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단위별 요구안을 수합했으며, 조정단계인 지금은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다만 “12월 말에 공간배정 심의위원회에서 결정이 날 것이며 현재 회의는 총장님의 결재를 맡은 TF팀이 꾸려가고 있다. 12월까지 정리를 해서 겨울방학 때 관련부서와 해결을 볼 것이니 그때까지는 기다려 달라”고 전했다. 이 같은 시설팀의 답변에 강나래 원총회장(회계학과, 석사4차)은 “1학기 때 기획처장님을 만나 열람실을 요구한 뒤 이후 전해들은 말은 없으며, TF팀이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또한, “논의되는 사안이 있으면 거기에 학생대표가 참여해서 이야기를 듣고, 발언할 기회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행정부처를 통해 한 다리 건너 전달받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좀 더 직접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연구공간에 대한 추가 생각을 묻자, 이구 정책교류국장(동북아학과, 박사1차)은 실험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이공계 여건이 좋다고 하기 어려우며, “카이스트나 포스텍은 연구기기를 두는 공간뿐 아니라 휴게실 및 1인 1좌석이 별도로 확보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앙대와 다르다”고 전했다. 또한 “중앙대 정도면 박사생 전원 지정좌석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나래 원총회장은 열람실 숫자만이 아니라 “쾌적한 환경도 중요하다. 고려대는 박사지정석이 도서관에 있는데 1인 1실 개념이다. 물론 추첨을 통해 선발되어야 하지만, 문을 열고 나 혼자 들어가서 안정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다. 중앙대는 PC, 의자의 노후화는 물론이고 열람실이 지하에 있어서 환경이 좋지 않다. 적어도 열람실은 지상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원총은 공간재배치 이후 대학원 앞 교수연구동(305관) 연구실에 여유분이 생기면 그곳에 대학원생 공용열람실이 마련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상준 대학원장은 교수연구동을 원하는 교수들이 많아 어려울 것이라 예측했다. “대학원생 연구공간은 동선을 고려해 대학원 건물과 가까운 곳이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법학관이나 서라벌에서 빠져나가는 공간”을 차선책으로 언급했다. 또한 그는 “대학원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다. 원총에서 학과별 상황을 수합해서 인문대는 6평짜리 공간 10개가 필요하다는 식의 구체적인 정보를 주면, 대학원위원회의 이름으로 본부에 요청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함께 움직이는 것이 대학원생 공간문제 해결의 시작점일 수 있다”고 의지를 밝혔다. 심의위원회에서 공간배정을 검토하는 12월 말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열악함을 개탄하며 기다리기만 할 때, 공간은 영원히 ‘객관적으로’ 비좁을 뿐이다.


홍보람 편집위원 | silbaram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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