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시리는 8살 때 뇌의 반쪽을 들어내고 기계 뇌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로 말하고 계산하는 논리적 기능은 극대화됐지만, 공감하고 분노하고 외로워하는 또 다른 기능은 잃게 되었다. 자라면서는 인간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관찰하고 기록하고 적절한 사건들을 뽑아낸 뒤 대응법을 흉내 냈다. 즉 그는 주변을 통계적으로 파악한 뒤, 통계적으로 반응했다. 그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인류의 미래를 건 우주 탐사대에 관찰자 역할을 맡게 되고, 우주 공간에서 결국 외계인을 만나는데…

  이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테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저자는 네 가지의 인격을 가진 인간, 감각만이 매우 발달한 인간, 감각은 없고 모든 지각 능력이 인간을 초월하는 흡혈귀 등을 우주선 탐사대원으로 선정한다. 이렇게 섬세하게 선택된 주변 인물들은 지능(지능, 인식, 의식 등이 이 책에서는 동의어로 쓰인다)만이 고도로 발달한 주인공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들은 끊임없이 시리에게 말한다. “많이 인식할수록 지각은 떨어지지. 로봇도 너보다는 낫다.” “시리, 너 인마.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아. 너도 그렇고. 우리는 생각하는 기계가 아니야. 우리는… 기본적으로 느끼는 기계야. 생각은 어쩌다가 하지.”

  내가 검지를 움직이겠다고 결심한 뒤에 검지를 움직인다고 생각해보자. 너무 늦지 않은가? 공연하는 도중에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의식한다면? 그 순간 모든 걸 망치게 될 것이다. 시리는 (애인이었던) 첼시가 죽어가는 순간에 건 마지막 전화에 아무 응답도 하지 못한다. 머릿속엔 수만 개의 부조문과 위로들이 떠오르지만, 그런 상황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고 따라서 “거기에 적합한 알고리즘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의 축적으로 합리성을 발휘하는 인간은, 이토록 무능하다.

전영은 편집위원|na67301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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