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준 / 동의대 철학상담심리학과 교수

[영혼을 위한 과학스프: 사회생물학]

본 기획은 세계를 인식하는 패러다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핵심이론들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각 이론에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인 과학소설을 함께 추천한다. 일반대중의 접근이 지나치게 어렵다고 여겨지는 과학의 전문화/분과학문화에 문제제기하되, 과학이라는 진리를 인스턴트화하는 작업에도 반대한다. 이번에는 사회생물학의 가정과 그에 대한 도전들을 통해, 진화와 생물 다양성을 이해해본다. <편집자 주>

 

인간이란 무엇인가

 

박만준 / 동의대 철학상담심리학과 교수

  수천 년 동안 수없이 묻고 답해 왔지만 아직도 이 물음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물음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삶의 태도, 즉 우리가 타인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타인에게 무엇을 소망하고 기대할 수 있는지, 타인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물학의 영역에서, 특히 사회생물학을 중심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생산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요아힘 바우어의 말대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 현재 서구의 자연과학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것이 곧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이며, 이들을 통해 새로운 인류학적 모델이 탄생했다.

윌슨과 도킨스의 인간사회생물학

  생태학적 압력, 개체군 변수, 개체군의 밀도, 유전자 변위, 출생률, 사망률, 계통 발생 관성 등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모든 종의 사회 조직의 특성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공통 변수와 계량적 이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 ‘윌슨의 꿈’이었으며, 그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 곧 그의 기념비적인 저작 <사회생물학>이다. 그는 생물학의 보편적 원리를 인문과학으로 확장시키고 인간 탐구의 생물학적 토대로 삼는다. 인간을 탐구하는 유일한 길은 자연과학을 사회과학 및 인문학과 통합함과 동시에 인간의 본성을 자연과학의 한 부분으로서 연구하는 길뿐이다.

  인간사회생물학에서 윌슨 못지않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도킨스이며, 사회생물학 논쟁에서 언제나 중심적인 위치에서 선도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그의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사회생물학의 대표적 저작들 중 하나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특이하다. 이 책은 ‘인간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고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후자가 전자를 함축한다는 것이다. 두 물음을 연결시켜주는 핵심 개념이 바로 ‘유전자’이다. 모든 동물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되어 왔으며,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는 유전자이다. 그러므로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해 온 것은 무엇이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 유전자가 창조한 생존 기계이며, 우리의 모든 행동은 유전자에 구속되어 있다.

  과연 사회생물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쟁과 투쟁이 생명체에게 최우선의 원동력일까? 우리는 이 새로운 모델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회생물학의 가정들은 옳은 것일까

  사회생물학적 가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바우어는 이렇게 묻는다. 생명체의 탄생과정에서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유전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되었을까? 그가 주목한 것은 생명의 두 가지 원리, 즉 ‘협력’과 ‘소통’이다.

  RNA와 DNA의 세계뿐만 아니라 유전자와 세포와 유기체 사이에도 지속적으로 소통과 협력이 이루어진다. 협력하지 않으면 진화 과정에서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었다. 유전자는 이기적이지 않다. 유전자의 본성은 소통과 협력이다. 바우어는 유전자가 어떻게 협력하고 소통하며, 이를 통해 유전자가 어떻게 진화에 가담하는지를 이론적으로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진핵생물의 세포가 탄생하게 되는 ‘세포 내 공생’도 마찬가지이다. 세포 내 공생은 ‘협력’이라는 기본 원리를 따르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진핵생물의 세포들은 진화가 이루어지는 또 다른 출발점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산소를 소비하는 박테리아와 일체가 되어 훗날 동물세계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 산소를 생산하는 광합성 박테리아와 세포 내 공생을 허용함으로써 훗날 식물세계가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두 가지 진핵생물 기본형을 탄생시킴으로써 진핵생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소를 생산하는 식물세계와 산소를 소비하는 동물세계가 서로 협력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러므로 마굴리스가 강조하듯이 공생은 진화의 핵심이다. 공생은 서로 다른 생명체들을 하나로 묶는다. 단순히 묶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다.

공생 진화론을 주장한 린 마굴리스의 저서, . "공생은 서로 다른 생명체들을 하나로 묶는다. 단순히 묶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다."(기사 본문 중)
공생 진화론을 주장한 린 마굴리스의 저서, . "공생은 서로 다른 생명체들을 하나로 묶는다. 단순히 묶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어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다."(기사 본문 중)

  바우어의 <협력하는 유전자>와 마굴리스의 공생 진화론에서 볼 때 사회생물학의 사유 체계는 수정이 불가피하다. 분류학은 생물을 찾고 이름 붙이고 분류하는 학문이며, 대량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방법이다. 미생물들의 경이로운 생존 능력과 공생 진화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는 이와 같은 분류 체계 변화의 기초가 되고 있다. 현재까지 수정된 형태는 ‘2단으로 된 5계 분류 체계’이다. 생물의 가장 큰 범주인 원핵생물과 진핵생물을 첫 번째와 두 번째 단에 놓고, 그 아래에 세균들, 원생생물, 식물, 동물, 곰팡이 등을 다섯 영역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세균 외의 생물들은 모두 공생을 시작한 미생물 조상에서 나왔다. 모든 생물을 동물 아니면 식물로 분류하거나 분류 체계가 너무 경직되어 있으면 생명체와 그 진화의 역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진정한 생물 다양성은 식물과 동물 이외의 생물들에서 나타난다.

  생물의 분류 체계는 생물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잘못된 분류 체계는 잘못된 가정이나 신념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학문적으로 잘못 인도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아래에서 위로 자라나는 나무 모양의 계통수가 그런 경우이다. 줄기 하나에서 계통들이 가지처럼 갈라지고 각 가지가 갈라지는 지점에는 공통 조상이 있다. 하지만 공생은 그런 계통들이 ‘과거’를 이상화한 것이라고 폭로한다. 종들이 합쳐지고 융합하여 새 생명체를 만들 때 그렇다. 그 생명체는 새롭게 출발한다. 그러므로 사회생물학의 분류학적 사유 체계의 수정은 단순히 분류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생물에 대한 이해 및 그 진화사와 직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유전자결정론과도 연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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