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대학행정과 민주주의

무뎌지는 민주주의, 무너지는 상식 

 
 

  행정은 역설적이다. 행정은 기술과 절차들의 합인 장치의 일종으로, 단순하다. 그러나 이 장치는 어떤 제 집단들의 배열 속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낯선 것이 된다. 행정의 역설은 투명함과 불투명함의 공존에 있다기보다, 불투명함이 언제나 투명함을 기반으로 구현된다는 데 있다. 투명함, 객관성, 단순한 절차로서의 행정을 의심하거나 그것과 싸우기는 매우 어렵다. 총장직선제 유지를 요구하며 지난달 투신한 故 고현철 부산대 교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너무 무뎌있는 작금에 필요한 충격요법으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지난 날 민주화 투쟁의 방식”을 선택했다. 故 고 교수의 희생 후, 그간 차기총장 간선제 선출을 주장해온 김기섭 총장이 사퇴했으며, 부산대는 오는 8일(목) 교무회의에서 총장직선제 유지와 관련된 학칙을 발표할 예정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로 등장한 총장직선제라는 장치는 대학 내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안착되었지만, 그것이 반드시 학내민주주의를 담지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들만의 제한적인 선거 속에서 파벌이 형성되거나, 부정선거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는 등의 폐해도 있었다. 따라서 특정 제도를 가치판단하기에 앞서, 오늘날 직선제가 교육부와 대학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데칼코마니들

  직선제 폐지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2010년 이명박 정권부터이다. MB정권은 재정지원사업인 교육역량강화사업에 총장직선제 개선 여부를 지표로 포함해 직선제 폐지를 압박했고, 재정을 매개로 한 직선제 폐지 압력은 박근혜 정부로 이어졌다. 주목할 것은 박근혜 정부가 직선제를 폐지하고 간선제로 선출된 대학총장 후보마저도 별다른 이유 없이 임명제청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임명제청을 거부당한 대학총장 후보들은 이명박 정부 규탄 시국선언을 발표하거나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활동경력이 있는 등, 소위 정권의 ‘코드’에 빗겨나 있는 인사들로 통한다. 교육부 주도 대학구조개혁에 대한 반발들이 속출하는 작금, 박근혜 정부의 이유 없는 임명제청 거부는 총장간선제가 결국 상명하복이 가능한 총장을 앉히기 위한 첫 단추임을 방증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총장직선제는 故 고 교수의 유서대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라는 의미로 형성된다.

  중앙대는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후 교수투표제(직선제)를 폐지하고 이사장 주도형 거버넌스를 수립했다. 대학 거버넌스는 이사장 주도형과 총장 독립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사장이 총장을 임명하더라도 총장 주도형 거버넌스는 가능한데, 총장선출 과정에서 총장추천위원회의 추천 또는 교수평의회의 인준 절차를 거치면서 총장이 독립성을 확보하게 되는 식이다. 그러나 현재 중앙대학교 법인 정관에 따르면 총장임명은 다음 두 줄로 정리되어 있다. “제42조(임면 및 임기) 이 법인이 설치‧경영하는 학교의 장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면하며, 그 임기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대학교의 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하고, 중임할 수 있다.” 현 사립대학 중 한국외대, 조선대, 대구대 등은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간선제를 시행하는 대학들도 ‘총장후보추천위’를 구성하고 여기에 학교 구성원들을 다수 포함한다. 총장을 간선제로 뽑는 대학 중 총장후보추천위의 재단 측과 구성원 측 위원 비율은 고려대 4대26, 동국대 3대20(조계종 4인 별도 포함), 서강대 0대25(예수회 4인 별도 포함), 광운대 4대14 등이다. 마찬가지의 간선제라도 총장임명 관련 규정이 두 줄로 정리되어 있는 중앙대와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중앙대 특유의 이사장 주도형 행정체제는 대학을 운영하는 하나의 기술이지만, 이 기술은 아래로부터의 의견수렴창구를 막고 재단의 입장대로 학교를 운용하는 원리에 복무한다. 올해 3월에는 연구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모 교수에 대해 ‘직위 해제’ 처분이 내려졌는데, 해당 교수는 전직 교수협의회장을 지내며 학교나 재단 정책에 꾸준히 반발해 온 인물이어서 ‘보복성 징계’ 의혹이 일어난 바 있다. “그동안 학교의 부당한 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모아가는 일을 주도했거나 학교의 합리적 태도를 촉구하는 데 목소리를 냈던 모든 교수가 2016년 연구년 선정에서 탈락”하였다는 교수협의회의 문제제기도 현재진행형이다.

남겨진 사람들의 몫

  이번에 사퇴한 김기섭 부산대 전 총장은 임명 당시 직선제 수호를 기치로 했지만, 재정지원이 걸려있는 간선제 전환 압박을 받자 입장을 바꿨다. 대학이 운영되고 사회가 유지되는 메커니즘의 자명해 보이는 효율성 속에서, 개인의 결단과 선택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타 대학들의 동향은 고무적이다. 지난달 17일(목) 동국대에서는 대학 측의 일방적인 학사 운영과 구조조정, 총장‧이사장 선출 강행에 분노한 학생들이 11년 만에 학생총회를 성사시켰고, 1,799명의 학생의 찬성으로 “종단 개입 반대와 총장‧이사장 퇴진” 내용을 담은 안건이 가결되었다. 故 고 교수의 뜻을 이어, 경상대 교수회는 10월 5일(월)부터 8일(목)까지 전체교수를 대상으로 총장직선제 회복을 위한 서면표결을 시행한다. 또한, 부산대는 직선제가 지속되더라도 ‘교수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대학 최초로 학생들도 총장직선제에 참여하는 ‘차등비례제(학생 참여비율 최소 10%)’ 도입을 총학생회 주도하에 논의하고 있다. 故 고 교수는 “그 희생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몫을 담당하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우리들의 몫은 무엇인지, 이제 생각할 때가 되었다.


홍보람 편집위원 | silbaram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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