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준 / 신문방송학 박사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 메우기

장성준 / 신문방송학 박사

기술변화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바꿔왔다. 좀 더 빠르고 효율적이며, 윤택하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했고 소비를 조장했다.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기술변화는 다른 기술들보다 급격하게 퍼져나갔다. 그 결과 기술변화 흐름에 휩쓸려 자신들의 기술이 가진 본연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기술 활용에 일관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 소개되는 빌렘 플루서의 현대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대한 분석은 이 현상에서 시작된다. 기술 본연 그 자체는 투명하지만 누군가(기구-작동자)가 이를 편향적으로만 사용하도록 조장한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편향적인 태도로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문제에 기인한다고 생각한 플루서는 ‘텔레마틱 사회’라는 개념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의 회복과 이를 통해 거짓들을 밝혀내는 ‘상상가’들의 역할과 요건들을 찾는다.
연구자는 논문을 통해서 텔레마틱 사회와 소셜미디어에서 이론상으로 가능한 담론과 대화의 공존이 현실에서 나타나는 양상과 전개과정에 미치는 요소들, 그리고 행위자들의 인식측면을 연구했다. 연구자의 작업은 단순히 ‘주어진 환경’에서 ‘즐기기’만 하는 제한적 행위자가 아닌, 그 속에 왜곡된 가치를 ‘찾아내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주체들을 발견하고 역할을 재조명하는 과정이기에 그 자체로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 필자 역시 연구자의 문제제기와 제언들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필자가 이 논문을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이에 한 명의 독자이자 플루서 연구자로서 이 의문들을 간략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토론자의 역할을 대신하고자 한다.
연구자는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을 다섯 가지(활동적/실용적/정보습득/회의적/보수적)로 분류한다. 플루서는 텔레마틱 사회의 성격이 이용방식에 따라 결정된다고 정의한바, 연구자가 제시한 다섯 가지 유형은 소셜미디어 현상에서 나타나는 특성들을 찾는 것에 유용해 보인다. 특히 해당 특성들을 분류하면서 국내의 특수한 상황들을 소개하고 있어 논의에 충분히 공감했다. 하지만 ‘맥락(context)’을 중심으로 현상을 해석하는바 ‘개인 내면(inter-personal)’에 대한 차원은 의문으로 남게 된다. 필자는 ‘사람들은 외로워서 커뮤니케이션을 행한다’라는 플루서의 전제 자체에 맥락과 개인 내면의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다섯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데 ‘맥락-개인 내면’의 경합이 있었고, 승리한 쪽이 태도를 정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을 것이라 본다. 이 경합은 텔레마틱 사회 또는 소셜미디어를 누리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텔레마틱 사회는 점점이 흩어진 사람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된 사회다. 이 그물망에 참여한 사람들은 기존의 정보를 수용하고, 변형과 새로운 정보를 생성하면서 활동영역을 넓혀나간다. 소셜미디어도 그물망을 형성했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성한 정보를 업로드하거나 타인의 정보들을 전달한다. 이는 맥락상에서 사회현상의 일부다. 반면 그물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과정은 맥락과 개인 내면에서 발생한 경합의 결과이다. 방관과 이탈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물망에서의 배제에 따른 심리작용일 수도 있다. 플루서의 이론은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장선에서 다른 물음도 생긴다. 소셜미디어는 이론적으론 정보공유와 생성의 구조이지만, 실제 현상에서는 일방향성 또는 (자신의 취향과 성향에만 맞는 정보를 찾고 접하는) 편향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또다시 폐쇄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아닐까?
해답들은 플루서의 이론을 활용하면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플루서는 ‘쿨투레메(Kultureme: 문화 분자)’와 ‘코무니케메(Kommunikeme: 커뮤니케이션 분자)’라는 개념을 만들면서 현상분석의 차이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그물망을 방관하거나 이탈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쿨투레메로는 사회·문화적 현상에 국한되지만, 코무니케메로는 개개인들이 습득하고, 해독한 것에 따른 태도나 경험, 인식의 결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술발전이라는 장황한 전제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생산물을 쿨투레메와 코무니케메 둘 중 하나만 선택할 땐 한정된 논의로 전개되는바, 코무니케메를 중심에 상정하고 쿨투레메가 작동하는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더욱 넓은 의의를 끌어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연구자는 이용자들의 행위 속에서 충분한 의미를 찾았고, 더 찾으려고 시도했다. 필자의 의견은 연구자가 추가로 코무니케메의 관점으로 개인들에게 작동한 흔적 또는 흔적의 저항들을 통해서 소셜미디어 이용자에게 나타나는 맥락과 개인 내면의 경합과정을 설명했으면 하는 제안이다.
한 사람의 동료로서 연구자의 건승과 건필을 기원하며, 더욱 많은 연구를 통해서 조우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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