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색> 초대 편집장 권경우 선생님을 만나다

특집ㅣ'대학원생'의 이름으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갈등했다는 것

  2001년 중앙대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창간된 <모색>은 이후 타 대학원생들도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일종의 대학원생 네트워크를 형성했던 무크지이다. 현재 중앙대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비치된 1, 2호 합본을 살펴보면 학문후속세대의 일상과 정체성, 서울대 및 BK중심 학문체계에 대한 비판, 유학이 생존을 위한 것인가 도피인가라는 물음, 대학원을 떠나는 원생의 고백 등 여전히 뜨거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함께 공부하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질문했던 <모색>의 초대 편집장 권경우 선생님을 만났다.

 

 
 

술자리에서 욕하고 말 것이냐 글을 쓸 것이냐
: 방법론상의 문제

  어떻게 <모색>을 기획했냐는 질문을 받고, 권경우는 ‘막차 탄’ 당시 운동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학부 89학번이에요. 386세대라고 하면 흔히 88학번까지 해당이 돼요. 이 세대의 끝자락에 있던 89-91학번들은 선배들한테 운동권 세례를 받았는데, 군대를 다녀오자 완전히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게 됐어요. 92년도에 서태지가 등장했고, 93년에 김영삼 정권이 시작하면서 ‘세계화’를 내세워요. 그러면서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같은 게 베스트셀러가 되고. 96년도 한총련 사태 이후 운동권들은 진압당하고 소멸하는 시기였고, 이미 89년에서 92년 사이에 소련이나 동구권은 붕괴되고 있었어요. 세계사적으로도, 국내사적으로도 모든 것이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 80년대 말 90년대 초 학번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던 때였죠. 내가 운동했던 건 뭐지? 그걸 다 포기하기엔 자기 청춘이 너무 아깝고. 후배들은 전혀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거 같고. 그때 저를 비롯한 제 주변의 판단은 대학원이었어요. 이들은 취직하기에는 준비도 안 되어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부 때 공부를 많이 안 했다는 아쉬움도 있었어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 속에서 대학원을 선택한 거예요.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강좌기획이나 여러 가지 학술활동을 많이 했는데, 자꾸 대학원생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들었어요. 우리는 뭐지? 왜 공부를 하는 거지? 또, 대학원 사회의 문제점도 많이 듣게 되었고요. 그럼 이걸 개별적으로 술자리에서 풀 게 아니라 이왕이면 공식적으로 해보자, 어차피 할 거면 아예 잡지를 기획해보자, 해서 책을 만들게 됐어요. 제가 보기에 이건 방법론상의 문제 같아요. 뭔가를 할 때, 우리 다 문제의식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 같아요. 술자리에서 육두문자 쓰면서, 또는 페이스북에서 글로 한 시간 뚝딱 써서 표현하는 것과, <모색>같은 책의 형태로 하는 건 다르겠죠. 저희는 저희 안의 문제의식을 공적인 텍스트나 매체로, 외부에 내보낸 거예요. 중앙대 안에서만 유통시키는 게 아니라 대학원 사회, 한국 지식사회, 또는 언론계에 내놓은 거죠. 근데 사실 출발은 다르지 않아요. 단지 ‘효과’의 측면에서 다른 거죠.

두려움이 약간 없어졌어요
: 모색의 의미

  <모색>은 2004년 제5호까지 나오고 발간이 중단된다. 권경우는 종간의 이유를 예산문제와 더불어 이 학술운동의 의의이자 태생적 한계인 ‘당사자성’으로 설명했다. 나이를 먹고, 졸업을 하는 등 사람들의 신분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간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 권경우에게 <모색>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제 삶에 있어서 <모색>은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이자 계기였어요.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그 이후에 ‘어떻게’까지 나아가게 하는, 실제로 뭔가를 해본 그 경험이 되게 큰 거 같아요. 그래서 그 이후에는 무언갈 시도하는 게 편해진 거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다른 말로 하면, 두려움이 약간 없어졌어요. 어떻게 보면 정말 당돌한 거죠. 일개 대학원생이, 나름대로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구체적인 결과물의 형태로서 보여준 거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를 찾자면, 이게 사실은 더 중요한 건데, ‘연대’예요. 동시대, 한 시대 속에서 함께 했다는 거예요. 10년이나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보면, 그게 하나의 세대를 형성한다는 걸 느끼게 돼요. 이 세대가 보통 91년 세대라고 불려요. 91년 강경대 열사가 시위하다 돌아가셨던 그때가 89, 90, 91학번들이 핵심적으로 결합되었던 시기인데, 이 시기의 사람들이 지금 학계에 굉장히 많고 특히 글 쓰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흐름은 그냥 나타나는 게 아니고, 자기가 처해 있던 상황들과 치열하게 부딪혔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거기에 가 있는 거예요. 고민 속에서 하나의 돌파구로서 글들이 나오는 거죠.

우린 더 후벼 파야 돼요
: 곪아있는 걸 끄집어내는 글쓰기

  비록 십여 년이 흘렀지만 <모색>은 여전히 유의미할 기획으로 꽉 차 있다. 오늘날에도 이런 시도가 가능할까?

이런 시도가 가능할지 생각하기에 앞서 더 근원적으로, 왜 공부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좀 던질 필요가 있다고 봐요. 대학원이라는 공간은 뭔가? 지금 대학원생을 과연 공부하는 집단으로 규정할 수 있나? 공부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대학원을 오는 사람들은 극소수인 거 같아요. 그럼 어떤 면에서 공부에 의미를 두고 온 사람들이 소수자로서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게 맞는 건데, 오히려 줄서는 전략으로 가기가 쉬워요. 지도교수와 나와의 관계 속에서 내 공부 열심히 하는 거죠. 자기 공부 열심히 해서 빨리 논문 쓰고, 강사든 유학이든 자기만의 길을 찾는 게 제일 안전하니까요. 주변을 보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빨리 잡고, 연구도 되는 거 같고. 하지만 그게 진짜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봐요. 본인이 솔직하게 질문을 던져봐야 하는 거죠. 종교에서 왜 나는 신을 믿는지 질문하듯이, 왜 나는 공부하는가라는 물음으로 계속 돌아가야 돼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계속 뭔가가 나와요. 좋은 글은 질문이 없으면 나올 수가 없어요. 이런 걸 위해 공동의 뭔가를 해야 돼요. 저희가 과거에 경험했던 방식 말고, 문제의식을 새롭게 꺼내는 게 충분히 저는 가능하다고 봐요. 선배들로부터 배울 건 배워야겠지만, 지금 대학원생들의 조건에서 무엇을 질문하고,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미래나 출구를 찾을 것인가, 전략을 어떻게 짤 것인가는 다른 문제겠죠. 만약 학술운동이라는 걸 지금 상상하기 어렵다면, 그게 지금 시대에 맞는 걸까 한 번씩 질문 던져볼 수도 있을 거예요. 저라면 그냥 온라인상의 웹진 형태나 페이스북을 활용할 거 같아요. 뜻 맞는 사람들끼리.

  그런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논쟁이 될 수 있는 글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치유하고 위로하는 사람은 되게 많지만, 지식인은 상처와 흠집을 내야 돼요. 후벼 파 가지고 속이 어떻게 곪아있는지를 다 끄집어내는 게 소위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해야 될, 글쓰기의 역할인 거죠. 그래서 몇 센티 들어갔을 때 그 안 어디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그걸 사람들이 보게 만들어 줘야 해요. 브레히트 식으로 말하면 불편하게 해야 하는 거예요, 독자들을. 공부한다는 게 그런 거잖아요. 왜 비싼 돈 들여서 이해도 되지 않는 책을 붙잡고 씨름하는 거예요? 그 공부를 하고 나서 남들하고는 좀 다른 걸 봐야 될 거 아니에요? 학자들 이름만 기억하는 게 아니고, 내가 글을 쓰거나 볼 때 좀 달라야 되잖아요. 그런데 삶과 공부가 분리되어 있는 지금은 계속 정신분열만 생기는 것 같아요. 알튀세르를 읽었지만, 들뢰즈를 읽었지만, 자기 삶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건 기부하면서 눈물 뚝뚝 흘리다가 한편에서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과 똑같아요.

홍보람 편집위원 | silbaram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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