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 문예창작학과 박사, 소설가

 지나고 보니 논문은 일종의 일기였다

- 왜 디아스포라 문학-이주노동자 문제였는지, 김민정 선생님이 이 논문과 작품들을 쓰시게 된 최초의 발단, 삶의 한 장면이 궁금합니다.

디아스포라나 이주노동자와 같은 단어에서는 뭔가 대단히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나는데요. 이 소재로 제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너무나도 사소하고 일상적인 장면 때문이었어요. 어느 날 동네를 걷고 있는데, 제 앞으로 휠체어를 탄 노인과 그걸 밀고 있는 한 여자가 지나갔어요. 그 여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면서 함께 사는 재중동포 도우미였어요. 이런저런 그녀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순간 그녀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어요. 큐빅이 박힌 세련된 샌들이었어요. 3cm정도 굽도 있고요. 그녀가 걸을 때마다 굽이 바닥에 부딪히면서 딱딱 소리가 나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저는 굽 없는 단화를 신고 있었거든요. 엄마가 여자이길 포기했냐고 잔소리하시던.

-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논문집필을 하시는 데 가장 영감을 준 작품, 작가, 또는 학자가 있다면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소설가라는 직업 때문인지 저는 철학 서적을 읽더라도 이론보다는 이론의 탄생 배경에 더 관심이 가요. 타자 철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레비나스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조금은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타자에 대한 주체의 희생과 사랑을 강조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가 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계 프랑스 철학자라는 걸 알고서는 이해가 갔습니다. 레비나스의 책을 읽으며 한국과 한국인에게 맞는 타자 철학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디아스포라 문학에서는 ‘타자’에 대한 문제를 중요시하는데, 타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들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타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문제보다 자신이 진짜 주체인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한국은 진정한 주체라기보다는 주체의 가면을 쓴 타자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결국 레비나스는 논문에 한 줄도 안 들어가지만 논문의 이론적 배경을 만들어준 셈이죠.

- ‘관습적 이분법의 폭력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 논문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우리-근대적 타자이자 피해자들’의 동등한 형상으로 인물들을 재현하기까지, 선생님의 내적 갈등이나 고민, 어려우셨던 점이 있나요?

이항대립적 구도를 벗어난 양자 사이의 미세한 힘의 불균형 상태, 그러니까 주체의 동일성과 타자성의 창조적 갈등이 결국엔 자신에게 함몰되지 않고 열린 ‘진행형의 존재’를 탄생시킨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현실에선 대부분 이주노동자가 약자의 입장에서 고통받잖아요. 그런 그들을 외면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어요.

- 현재 집필하고 계신 작품에 관해 대략적인 소개를 해주세요.

평균 수명을 넘긴 나이가 되면, 그러니까 제게 여분의 삶이 허락된다면, 절대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평소에 생각했는데요. 아직 그 나이에 도달하지 않아서 사랑까진 아니고 그 전 단계의 소설을 쓰고 있어요. 이해하고 싶으나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구성을 짜지 않고 쓰는 첫 소설이에요. 결말이 어떻게 될지 저도 궁금해요.

- 논문 작성 후기, 또는 하고 싶은 말씀을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논문을 쓸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보니까 이것도 일종의 일기더라고요. 그때 당시의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세세하게 적혀 있는. 학위과정을 무사히 마쳤다거나 논문을 완성했다는 성취감보다는 지난날의 제 자신에 대한 아련함과 그리움 같은 것들이 남는 것 같아요.

 

홍보람 편집위원 | silbaram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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