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취재: 세월호 1주기 추모 사진 포럼

재난시대의 사진: 기록에 대한 강박과 애도의 갈림길에서

 

광화문에 설치된 <아이들의 방> 전시
광화문에 설치된 <아이들의 방> 전시

  화가는 구성하지만 사진작가는 드러낸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피사체를 지각한다는 뜻이다. 눈앞의 사진 한 장, 이것은 피사체가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긴급한 전보처럼 알린다. 사진을 통해 우리는 약탈하면서 보존하고 고발하면서 신성시하는 방식으로, 본다. 범람하는 사진들과 마주하는 것은 일상이고, 휴대폰 카메라 버튼은 눌리는 느낌도 없이 손끝의 스침만으로 순간을 박제한다. 사진은 당연하고도 쉬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피사체가 재난이 되었을 때, 고통이 되었을 때, 타인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 되었을 때,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피사체를 응시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반문이 일게 된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작가는 이것이 어떤 종류의 약탈이며 고발인지 질문하기 시작한다. 예술은 작가 의지의 산물이라기보다 세계의 의미망 속에서 최종적으로 구성되며, 의도를 넘어서는 효과의 차원에 거주한다. 개인적 선의와 윤리만으로는 폭력의 재생산으로부터 무고해질 수 없는 것이다.

  4‧16 이후 현장 사진가들은, 우리가 찍고는 있지만 무엇을 찍고 있는지, 그 사진으로 뭘 할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1주기를 앞둔 2015년 4월 11일, 세월호 문화예술 ‘연장전’이 주최하고 ‘세월호를 생각하는 사진가들’이 주관한 세월호 추모 사진 포럼이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렸다. 1부는 양효실(미학자)과 김현호(사진평론가) 등 이론가들의 발제, 2부는 이희훈(오마이뉴스 사진기자)과 노순택(사진가)의 사례발표로 진행되었다. 이 기사에서는 양효실의 발제를 중심으로 다룬다.

이론가의 언어
: 은유로서의 난민, 난민으로서의 예술

  미학자 양효실의 발제는 스스로도 우려했듯 “이물감”이 있었다. 대부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었던 청중들은 양효실의 발제가 끝난 후 거의 질문이 없었다. 그 침묵은 전달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성공이 아니라 실패, 가능성이 아니라 불가능성, 능동성이 아니라 수동성을 새로운 윤리의 은유로 제시”하는 버틀러를 내용으로 가져오는 양효실의 글은, 그 역시 말끔한 모던의 서사와 은유에 저항하고 있었다. 전달의 실패는 예견된 것으로서 성공이었다. 이 성공적 실패를 해부하여 재조립하는 일은 어쩌면 발제자의 의도를 배신하는 행위이며, ‘이해했다’라는 동일시의 가상을 만들어내는 타협이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버틀러는 9‧11 이후 미국인을 결집시킨 국가주의라는 폭력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글쓰기를 했다. 9‧11은 자본주의의 대타자로서 미국의 무능을 현시한 사건이면서 더 강하고 정당한 전쟁을 촉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폭력의 악순환은 휴머니즘의 서사와 연동했고 참사의 현장은 상투적 스토리텔링에 뒤덮이면서 ‘우리-미국’으로 봉합되었다. 이런 국가주의에 맞서 버틀러는 언론에 재현된 이슬람에서의 전쟁의 전리품들―미국의 대테러전을 이슬람 여성의 해방으로 간주하게 만든 부르카를 벗은 이슬람 여성 사진 등―에 도사린 폭력, 신문 부고란에 사망자의 이름을 싣지 못했던 팔레스타인계 미국인들, 9‧11 현장에서 죽었지만 공적으로 애도되지 못한 동성애자들의 문제를 가시화하면서, 죽음을 서열화하고 글쓰기와 이미지 등의 재현을 규제하는 검열과 언론 통제를 문제 삼았다. 버틀러는 근대적 서사나 은유가 어떻게 전쟁과 공모하는지, 그로 인해 어떻게 변방, 소수자, 약자들에 대한 배제와 상징적 살해가 정당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꼬집는다. 국가주의, 이성애주의, 제국주의, 백인 여성주의가 대테러전에 동원되고 휴머니즘이 폭력의 악순환에 공모하는 시대, 포스트모던은 모던에 기생하고 모던을 의심하면서 모던의 병리적 증상으로 수면에 떠오른다.

  반면 4‧16 이후 한국의 대중 매체는 참사의 현장에서 꽃 핀 휴머니즘을 전달하지 않았다. 사건을 봉합할 공적인 애도도 없었다. 다수의 국민이 동일시할 희생자에 대한 국가적 서사는 빈약했고, 반-휴머니즘적이었다. 4‧16 이후의 상황은 모두 중심 없는, 아버지 없는, 대타자 없는, 국가 없는, 오직 고통 받는 이들의 절규, 눈물, 비참이 전시되는 외상적 장면이었다. 유족, 희생자가족 등등으로 불리는 집단에게는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이름, 은유가 필요하다. 많은 예민한 이들이 4‧16 이후 행동, 말, 실천을 유보하거나 끊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양효실은 이를 역사, 주체, 지식인, 실천과 같은 모던한 이념들의 실패로 읽는다. 어쩔 수 없이 떠돌게 되는 집단과 실패한 실천가들을 양효실은 포스트모던 주체로서의 ‘난민’, ‘난민-되기’라 이름 붙인다.

카프카가 예리하게 현시한 모던의 악몽, 예민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야 할 삶의 진짜 모습이 평범한 사람들의 감각이 견뎌야 하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포스트모던은 상징적 언어/무기를 보유한 남성적 주체에 의해서는 읽히지 않는 풍경이고 참극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글쓰기/예술은 기존의 상징 언어들이 없을 때, 말하자면 모던의 프레임을 잃을 때 가능한 실천이다. 불가능할지 모르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움직임처럼 보이는, 자신이 갖고 있던 무기, 도구, 자리를 잃는 기이한 실천으로서의 난민-되기. 양효실은 난민의 은유를 통해 그 현장 안의 한 사람, 어떤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향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이들의 방>
: 304명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기

  현장 안의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대면이라는 수행은 사실상 매개 없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사진이 유능하고도 위험한 매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작가들은 ‘희생자’, ‘아이들’을 말하는 대신 한 아이, 한 아이의 방을 찍었다. 유가족들과의 많은 논의 끝에, 작가 이름을 탈각시키고 단지 기록하는 이로서 희생자 304명의 이름 하나하나를 호명하기로 했다. 현장사진가들이 모인 포럼 자리에서 양효실의 발제는 서걱거렸다. 그러나 국가주의 담론으로 상황이 봉합될 때 나타날 수 있는 폭력들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소수자들의 문제, 모던적 가치들이 지배적 폭력을 행사하면서 포스트모던이 반작용으로 떠올랐던 미국과 달리 한국은 모던적 가치의 기이한 부재가 남은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난민이라는 포스트모던 주체의 형상으로 내밀리게 하고 있다는 지적, 이러한 난민-되기는 단순한 비극일 뿐만 아니라 모던의 폭력을 읽어낼 수 있는 실천이기도 하다는 점을 양효실은 짚었다. 양효실의 문제의식은 얼핏 보면 가족주의 담론으로 봉합되는 듯 보이는 세월호 전시들과 시위의 양태들을 경계하도록, 또는 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작품의 주인으로 드러내는 것을 지양하면서 ‘어떤 한 사람’이 거주했던 공간을 촬영하는지 이해하도록 만들어준다.


홍보람 편집위원 | silbaram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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