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담당자입니다

 

  <무구유언> 코너는 본디 원우들의 거침없는 비판을 위해 익명 투고도 받는다. 본지의 편집방향과 조금 다르더라도 최대한 그대로 싣는다. 원고지 8매라는 적은 분량이지만, 이 코너는 원우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듣고 공유하는 창구의 역할로서 의의가 있다.

  이번 호에는 무구유언 원고가 아쉽게도 실리지 못했다. 투고된 원고는 있었다. 학교 고위 관계자를 재기발랄하게 풍자한 글이라고 우리는 보았다. 저열한 인격 모독적 글이 아니라 창의적인 패러디라고 편집부는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 신문에 끝내 이 글을 실을 수 없었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부(Reichtum)는 직접적인 불의와 거리를 두게 된다. 가난한 이들은 곤봉을 쥐고 시위대를 때려잡지만, 공장주의 아들은 진보적인 작가와 이따금 위스키를 기울여도 된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본관을 점거하는 일 자체나 연행되는 걸 두려워하기보다, 점거 이후 개인들에 떨어질 손해배상청구를 상상하며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제 기업은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사람들과 직접적 폭력의 형태로 대면하지 않고, 먼발치에서 우아하게 손해배상 청구서를 내민다. 우리는 투고자가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제 여기는(‘여기’의 범위가 좁길 바란다), 패러디가 불가능한 공간이 된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고를 새로 받아서 무구유언을 꾸린다면, 이 코너는 있을 이유가 없다. 지면 담당자로서, 소중한 글을 투고해 주신 원우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원우들의 목소리 대신 편집위원의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도 사과드린다. 자초지종이 궁금하신 분들은 학내 독립저널 잠망경 홈페이지(magazine.freecamp.kr)와 대학원신문 311호 기사 <치열한 자기고민이 필요할 때> 를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홍보람 편집위원 | silbaram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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