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 유럽문화학부 독일어문학 교수

 
위기의 한국대학, 파국의 중앙대학

 

김누리 / 유럽문화학부 독일어문학 교수

  한국대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 대학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재 한국대학이 처한 위기는 예전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대학의 정체성과 본질을 부정하는 위기이기 때문이다.

  대학이란, 근대대학의 창시자인 훔볼트에 따르면, “교수와 학생으로 이루어진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공동체”이며, 대학의 본질은 “진리 탐구”에 있다. 현재 한국대학은 ‘타자가 지배하는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취업준비기관’으로 변질되고 있으며, ‘기업이 선호하는 기능인’을 양산하는 기구로 전락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의 정체성과 본질을 부정하는 위기는 크게 두 가지 원인에서 유래한다. 첫째는 대학을 ‘취업학원’으로 만들려는 국가권력의 의지이다. 이 점에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발군이다. 황 장관은 “취업이 학문보다 우선하며, 취업을 중심으로 대학을 바꿔야 한다”는 기발한 신념을 피력하고 다니는 ‘취업대학론’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고 있다. 그는 최근 ‘산업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을 지정하여 3년간 750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여, 재정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사실상 기업의 이해에 종속시키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둘째는 대학의 기업화이다. 대학이 점점 더 기업의 인력생산기지로 전락하고, 기업논리와 취업담론이 대학사회를 지배함에 따라 한국대학은 급격하게 기업과 자본권력에 장악되는 형국에 몰려 있다.

  최근의 중앙대 사태는 오늘날 한국대학이 처해 있는 위기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중앙대 사태의 본질은 대학을 기업의 하부기관으로 만들려는 국가권력이 한국에서 가장 기업화된 대학을 앞세워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보수적인 국가권력이 대학정책에서 취업률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대학을 황폐화시키는 데에는 고도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 첫째는 정부의 정책 실패와 기업의 탐욕으로 야기된 청년실업 문제를 대학에 전가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이참에 사회적 불의와 불평등에 비판적인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고사시키려는 것이다. 청년실업은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그걸 빌미로 학문, 특히 비판학문을 죽이는 현대판 반달리즘이 자행되는 곳은 한국뿐이다.

  중앙대는 지금 한국판 반달리즘의 최전선에 서 있다. 중앙대를 장악한 자본권력은 국가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거침없이 학문공동체를 유린하고 있다. 인류가 장구한 세월 동안 쌓아온 정신적 유산인 학문이 자본의 칼날에 베어나가고, 학문의 기본단위인 학과가 얄팍한 취업논리의 해머에 박살나고 있다. 학문과 학과의 기반을 상실한 교수는 지식 행상으로 전전하고, 취업강박에 시달리는 학생은 실용지식을 골라 구매하는 지식 소비자로 떨어질 것이다. 지성의 전당이 무너진 자리에 기만적인 취업담론과 알량한 기업논리가 창궐할 것이다.

  100년 전통의 명문사학 중앙대는 지금 향후 100년의 발전을 앞두고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높은 학문적 역량을 지닌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도약할 것인지, 취업에 올인하는 실무중심대학으로 전락할 것인지, 선택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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