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숙 / 중앙대 강사·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바람개비를 들고 앞으로 달리려는 당신에게

 

허민숙 / 중앙대 강사‧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그야말로 ‘불안의 시대’다. 온통 불안하다고 하니 덩달아 불행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둘은 얼마나 같고 또 다를까? 불안한 마음이 한도 끝도 없이 밀려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대로 불행해 하고 말아야 하는 걸까?

  불안과 불행은 비슷해 보이지만, 이것은 의외로 매우 다른 속성을 가진다. 그중에 하나는 시차와 관련되는데, 우리는 앞날에 대해 불안해할 수는 있지만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로 인해 미리미리 불행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 그리고 현재의 경험에 근거해 불안과 불행이 공존하거나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초래되기도 하지만, 미래의 불행을 앞서 염려할 필요는 없다. 때문에 지금의 불안한 느낌을 미래의 불행과 연결하지 않는 것, 지금의 불행을 미래의 불안과 연결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중단하는 일만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단단한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은 불안과 불행한 감정에 매우 취약하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한 너무나 확고한 기준이 있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행복해하고, 작은 일에 감사해야 한다는 수많은 격언을 듣고 있지만, 남모르는 나만의 행복에 대해 마냥 기쁘지 않은 지 오래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그 어떤 것이 과연 행복인 건지에 대한 의문 때문일 수도 있고, 남이 정해주지 않고 나 스스로 결정하는 행복이 진짜 행복인 건지에 대한 못 미더움 때문일 수도 있다.

  서 있으면,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뒤처지는 거라는 격려와 유사한 비난, 현실에 만족하는 삶은 발전과 성장이 없는 포기와 다를 바 없다는 충고를 가장한 비웃음이 난무한 곳에서, 이제 발을 내딛는 젊음은 쉽게 불안해지고 불행해진다. 세상의 기준은 더디게 변할지도 모르고, 남의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거둬낼 힘을 미처 키우기도 전에 너무 많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이다”라는 조언을 듣고 모두가 달려나가는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더 많은 거리를, 더 빠른 속도로, 바람개비가 멈출 틈도 없이 달려나갈 것인가? 아니면 바람이 불지 않음에 크게 상심하거나 불행해 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돌 수도, 빠르게 돌 수도, 또 멈추어 있을 때도 있는 것이 바람개비 본연의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볼 것인가? 멈춘 바람에 성급히 달려나가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또 다시 바람이 불어오거나 또 어느 순간 멈추어 버릴 수도 있음을, 그때마다 달라지는 바람개비의 모양과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사람들 틈에 서 있기를 주저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일상을 엄습하는 불안과 불행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달려야 할 수도, 또 누군가는 기다리고 서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크게 주시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는 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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