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샤를리인가?

 

 
 

샤를리 에브도 사건 개요


  지난 1월 7일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총격 테러가 발생해 12명이 사망했다. 테러는 총 3명의 범행으로 프랑스 파리 11구 샤를리 에브도 본사에 남성 2명이 무장한 상태로 침입하며 일어났다. 편집회의가 열리고 있는 사무실에서 1명씩 이름을 불러 여자를 제외한 10명을 사살했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에 관리직원 1명과 도주 중 경찰 1명을 마저 사살해 총 12명의 피해자를 낳았다. 테러범 3명 중 1명은 사건 당일 자수하였고 이틀 동안 도주하던 테러범 쿠아치 형제는 진압대에 의해 사살당했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1월 9일에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또 다른 테러가 발생했다. 테러범 2명이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인질을 붙잡고 다른 곳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던 쿠아치 형제를 풀어주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경찰과 대치하던 중 테러범 1명은 진압대에 의해 사살되었고 함께 있었던 테러범은 도주했다. 이번 테러로 인질 4명은 숨지게 됐다. 이 일로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샤를리 에브도는 어떤 잡지인가?


  샤를리 에브도는 평소 6만 부 정도 발행하는 68세대의 가치에 기반을 둔 그리 크지 않은 좌파 주간지였다. 프랑스 전직 대통령 샤를르 드골의 죽음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폐간되었다가 복간되기도 했다. 다시 발간되며 ‘하라키리’라는 명칭이 샤를리 에브도로 바뀌었는데, ‘샤를리’는 ‘샤를르’를 살짝 비튼 의미로 해석된다. 주간지를 뜻하는 에브도가 더해져 샤를리 에브도라 불렸던 이 잡지는 매호 풍자만화를 그렸다. 이번 테러 사건의 원인이 됐던 무함마드뿐 아니라 기독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 정치, 사회 방면에서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을 풍자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사회적 약자에 위치한 이슬람은 유독 이에 민감했다. 이슬람의 신과 예언자 등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우상화로 여기며 죄악시했던 이들에게 무함마드의 나체나 조롱하는 듯한 표현은 금기였던 것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이번 테러 이전에도 2011년 11월의 만평으로 폭탄 공격을 받은 적이 있는 등 계속해서 테러에 대한 위협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풍자만화를 실어왔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 프랑스에서는 대규모 규탄시위가 일어났다.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 전역에서 370만여 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1월 11일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는 세계 정상과 지도자 50여 명의 뒤를 150만여 명이 따르는 반테러 집회가 있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나는 샤를리다”라는 팻말이나 샤를리 에브도를 상징하는 펜을 들고 희생자를 애도했다. 샤를리 에브도를 지지하지 않는 국가에서도 집회가 있었다. 이슬람교를 믿는 여러 국가에서는 오히려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구호로 집회가 잇따랐다. 이슬람권 국가에서부터 이슬람 인구가 적은 호주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서 수백만 명이 샤를리 에브도 반대 시위에 나섰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심화되었고,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곳곳에서 ‘이슬람포비아’가 번지고 있다. 이번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는 일반적인 이슬람교와 다른 극단적 수니파 무장테러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알카에다, IS 등 무장테러단체의 연이은 테러로 이슬람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이슬람 내부에서는 이슬람과 무장테러단체를 혼동하지 말아 달라며 테러행위 반대를 촉구했다.
  지난달 14일에는 제2의 샤를리라고 불리는 사건이 덴마크에서 일어났다. 첫 번째 총격은 덴마크 코펜하겐 시내의 한 카페에서 발생했다. 예술과 신성 모독,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되었는데 그곳엔 2007년 무함마드를 개로 묘사했던 풍자화가 라르스 빌크스도 참여하고 있었다. 이번 테러도 샤를리 에브도 사건과 같이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40차례 총탄이 날아들었다. 이 사건으로 40세 남성 한 명이 숨졌으나, 표적이 된 빌크스는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총격은 이날 자정 이후 코펜하겐 시내 유대교 회당 근처에서 발생했다. 이 총격으로 1명이 사망하였고 경찰 2명이 총상을 입었다.


한국에서의 보도 방향


  언론사 테러라는 특성 때문인지 샤를리 에브도 사건 직후에는 매일 수십 건의 기사가 실시간으로 나왔다. 주로 단신 기사가 많았고, 표현의 자유 대 테러라는 관점의 글이 많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칼럼형식으로 연이어 깊게 다루기도 했다. 언론보다는 SNS에서 논의가 뜨거웠는데 표현의 자유, 신성 모독, 세속주의 등이 논의되었고 히잡, 할례 등도 함께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들은 단편적으로만 다뤄지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본지는 도출된 주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거나 심화시키면서, ‘표현의 자유 VS 테러’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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