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18.6.4 월 12:21
기획사회
[사회]노동권의 공백 위에 복지라는 모래성을 세우다김건우 / 사회학과 석사수료
전영은 편집위원  |  na67301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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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호]
승인 2014.12.12  20: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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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의 가면: ⑤ 복지의 발전과 정치의 쇠퇴]

지금 한국의 정치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아마도 ‘복지’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복지국가가 될 것인가에 앞서 복지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본 기획에서는 주요 복지정책들이 지닌 문제점을 중심으로 복지국가에 비판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노동권의 공백 위에 복지라는 모래성을 세우다

김건우 / 사회학과 석사수료

  프랑스혁명의 산고 끝에, 공화국이 태어났다. 그러나 머지않아 공화국은 오히려 하나의 문제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의 중심에는 노동권과 소유권의 갈등이라는 권리의 분열이 놓여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발명은 상대적이고 균질적인 통계와, 그 통계에 근거한 보험이었으며 이로 인해 혁명계급의 봉기적 위험성은 예방되었다. 계산과 예측이 가능한 위험으로 명명됨으로써 화해불가능한 적대적인 권리들은 조절되고 타협되었다. 이것은 연대성의 원리에 근거한 사회의 발명이고 그 사회에 근거한 국가의 통치였다. 도덕적이고 법적인 책임 개념이 과학적 개념으로 전환되었고, 이를 통해 개인의 책임 영역이 사회적 관리의 영역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사회국가는 노동하는 자들을 자신의 권리를 가진, 즉 노동권을 지닌 시민으로 조직함으로써 등장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자신에 내재한 적대의 세계를 사회로 조직된 공간 속 개인들끼리 맺은 연대의 세계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자본주의는 자신에 내재하던 적대를 연대의 공학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장하는 권리는 근본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기대를 낳고, 사회보장의 원리는 이 문제들을 극복할 장치로 구실하며, 다양한 안전장치와 테크놀로지의 구성을 통해 작동한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보증하던 안전을 국가가 보장해주도록 암묵적으로 요구한다. 주지하다시피 억압적 구조들은 항상 보호를 통해 가능하고, 마찬가지로 보호적인 구조들은 또한 항상 억압을 통해 작동한다. 요컨대 안전과 억압은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억압에 저항하는 것은 안전이라는 구조(통제 내부에서 작동하는 국가적 안전장치-복지)에 저항하는 것과 같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완전고용의 폐기, 위험을 내부화하다

  국가에 의해 보장되는 안전의 교리가 지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치 복지국가라는 말의 기원이 ‘섭리국가’인 것처럼 복지는 일국 내에서 그물망처럼 연결돼 신앙처럼 작동한다. 그것이 계급타협의 산물이든, 계급투쟁으로 쟁취해낸 전리품이든, 복지국가는 노동자를 관리품목에 기입할 수 있게끔 포섭한다. 노동자는 체제 내부에서 복지를 응시함으로써 그 정치성 계급성이 상실된다.

  근래에 남한에서 복지담론은 정치의 주 무대로 부상했다. 거듭되는 경제위기로 안정적인 성장이 불가능한 조건들 속에서 일련의 안전장치들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특히 복지국가소사이어티나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들이 이를 주도하는데, 신자유주의와 경제성장중심의 담론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동시에 노동운동이 무능력에 빠져있는 곤란함을 우회적으로 타계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소위 ‘역동적 복지국가’, ‘보편적 복지국가’로 호명될 수 있는 것인데, 복지국가론자들의 다양한 입장 속에서도 일정 정도의 컨센서스가 존재한다. ▲노동과 기업 간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심화를 극복하기 위한 공정한 경제의 실현 ▲노동유연화의 안정과 고용안정, 임금격차의 축소 도모 ▲교육비, 의료비, 주택마련과 관련한 국민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는 보편적 복지의 실현이 그것이다. 단지 이를 실행하기 위한 재정 마련 방안에 대한 관점과 방법이 다를 뿐이다.

  남한의 진보주의, 인민주의의 복지국가론은 계급투쟁의 민주화를 통해 자유주의를 급진화함으로써 기존의 보수주의 국가를 해체하려는 시도로 독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문제해결책일 수 없는 이유가 그 내부의 논리에 존재한다. 가장 핵심적인 지점은 노동유연화(불안전노동이자 다양한 기형적 고용형태로 표출되는)에 대한 이들의 입장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의 대부격인 기든스의 출발지점은 자본주의가 역전불가능한 신기원적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고, 이 변화는 글로벌 경쟁 시대로의 진입으로 케인스주의적 완전고용, 남성생계부양자 가족모델의 파괴를 말한다. 영국에서는 대처시대 당시 이미 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의 인위적 완전고용정책은 임금상승을 유발하고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여 노동시장을 경직시키는 성장의 적으로 인식되어 폐기되었다. 기든스가 제시하는 제3의 길은 완전고용으로 회귀할 수도, 사회민주주의를 폐기할 수도 없다는 인식하에 마련된 사회민주주의의 현대화 방안이다. 전후 케인스주의 경제에서 고용을 통해 소득을 획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지출의 형태로 제공되는 간접임금은 완전고용에 비해 부차적인 위상을 가졌다. 현재 복지가 중요한 위상으로 제기되는 것은 케인스주의 이후 신자유주의로 재편되면서 완전고용이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요구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제기되는 것은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다. 유연안정성은 고용의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정성(security)을 결합한 용어로, 기업들에게는 해고와 채용을 보다 쉽게하여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에게는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유연화에 따른 근로자의 불안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말하는 복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적응하기 위한 복지다. 따라서 그것이 아무리 ‘보편적’ 복지라 일컬어지더라도 그것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의 위험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보완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시한 한국의 복지국가 건설은 항상 이미 체제 내부에서 헤엄칠 뿐이다.

제도화된 고용불안정의 다른 이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신자유주의는 배제된 실업자를 근로연계복지를 통해 포섭하는 전략을 택한다. 그럼으로써 실업자에게는 새로운 경쟁의 계기가 마련된다. 사회정책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실업자와 빈민이 자신의 노동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노동에 참여할 것을 자극한다는 더 적극적인 목표를 가진다. 역동적 복지국가가 견지하고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또한 신자유주의에 적합하게 일자리의 이동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변형된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을 도와주고 일자리와 노동자들의 연결(labor-matching)을 돕는다는 의미에서 투자의 성격을 띤다. 이러한 전략은 노동자들의 고용경쟁력을 키우는 것을 일관된 목표로 설정하는데, 이때 고용경쟁력이란 실업의 상태에서 훈련을 통해 기술을 연마하고 다음 일자리를 더 잘 찾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영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1997년 이후 영국 사회정책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추세는 일을 통한 복지의 추구, 즉 워크페어였다. 다양한 직업센터가 운영되었고 구직자와 구인자를 연결해주었다. 하지만 이는 임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었고, 노동자는 지속적으로 노동력의 질을 유지, 향상시켜야 한다는 압박과 함께 가급적 신속하게 저임금의 일자리를 수용했다. 그러나 노동유연화가 부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자리들은 그 자체로 불안정했기 때문에 이들은 노동과 복지수급 사이에 계속 머물게 된다. 즉,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노동유연안정화와 연계된 고용경쟁력 확보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일자리의 증가는 실업률과는 별개로 임금하향압박을 형성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잠재적인 산업예비군이면서 예비실업자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날수록 잠재적 산업예비군의 규모는 커지고 따라서 산업예비군의 범위도 넓어질 것이다. 실업률에 의존하지 않아도 비정규직이 많으면 임금의 하향압박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노동유연화를 목표로 삼지 않고, 그것의 정도와 범위를 안정시키려는 목적을 갖는 역동적 복지국가는 저임금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을 실제로 막지 못하고, 단지 실업률이라는 지표의 하락이 곧 복지의 증대로 연결된다는 것을 주장하는데 머무른다.

  복지는 없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복지가 신자유주의 개혁의 폐해를 완충하는 역할을 하면서 이에 대한 대중들의 묵종을 이끌어냈다면 그것은 하나의 문제가 된다. 복지를 주장하는 여러 슬로건들과 복지를 둘러싼 논쟁들은 미래를 향해있다. 아니 이미 미래에 도달해있다. 지금 여기의 노동권이라는 문제, 정리해고와 고용의 요구를 묵살한 채 목적론적인 섭리의 왕국을 건설할 궁리를 하는 것이다. 안전의 구조를 형성하려는 복지가 억압을 불러올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면 복지는 노동권 쟁취의 사후적 결과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노동권 없이 어떤 복지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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