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영 / 영화학 박사,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본 기획에서는 중앙대 원우들의 학위논문을 통해 다양한 학문분과 원우들의 연구내용을 소개함으로써 해당 학문분과의 연구 동향을 알리고 그 분야의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한다. 이번 호에서는 영화학과 조혜영의 박사논문 <영화의 죽음: 포스트필름 영화의 존재양식에 대한 연구>를 살펴본다. 더 보기에서는 영화 <두 개의 문>에 대한 분석도 만나볼 수 있다. <편집자주>

영화의 죽음

조혜영 / 영화학 박사,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셀룰로이드 필름은 영화를 존재론적 그리고 기호학적으로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빛과 필름의 화학적인 작용을 통해 세계가 직접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카메라의 자동화된 기록방식 덕택에 영화는 100년 이상 세계를 증거하는 지표 기호로 기능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영화와 현실 간의 직접적이고 인과적인 관계를 보증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촬영부터 편집과 시각효과 그리고 배급까지 매 단계에서 셀룰로이드 필름의 사용이 극적으로 줄어들면서 영화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긴급하게 요청되었다.

  이 논문은 바로 그 질문, 즉 ‘디지털 시대에 영화는 무엇이 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탐색하고자 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본 논문은 오늘날의 영화를 지칭하기 위해 디지털 영화 혹은 뉴 미디어라는 보다 널리 알려진 명명보다는 ‘포스트필름 영화(postfilmic cinema)’라는 조금은 낯선 개념을 도입하였다. 포스트필름 영화는 디지털 시대의 필름 영화와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수용되는 영화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필름/아날로그 영화와 연속적(필름 ‘이후’)인 동시에 단절적(‘탈’필름)인 관계를 갖는다. 예를 들면 디지털 시대에도 필름 영화는 예외적 소수이긴 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필름 영화는 아날로그 시대와는 전혀 다른 가치와 미학적 수용을 가진다. 심지어 과거에 제작된 필름 영화도 현재적 관점에서는 다른 수용과 해석을 낳을 수 있다.

포스트필름 영화의 존재양식

  본 논문은 이 같은 포스트필름 영화라는 포괄적 개념 하에 2000년대 이후 영화가, 예술영화에서 상업영화, 제3 세계 영화와 유럽 영화에서 할리우드 영화, 극영화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필름 영화에서 디지털 영화까지, 장르, 매체, 지역, 길이에 상관없이 주제와 형식적 측면 모두에서 죽음, 특히 영화 스스로의 죽음에 사로잡혀 있으며, 심지어 죽음을 자신의 존재양식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을 고찰한다. 여기서 영화의 죽음은 매체의 죽음(셀룰로이드 필름의 소멸과 디지털의 무한한 매체 시뮬레이션), 서사의 죽음(역사의 종언 그리고 디지털 비선형 편집으로 인해 방향을 상실한 서사 및 반복되는 유령과 죽음의 모티브), 사회적 죽음(후기 자본주의 체제하의 비물질 생산, 통제 사회의 안전 강조, 신자유주의의 생존 게임)을 가로지른다. 따라서 ‘영화의 죽음’은 또한 ‘영화와 죽음’으로 바꿔 쓸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필름 영화가 기입하는 죽음은 모든 것이 종결되는 끝이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가 세계와 인터페이스 할 기회를 제공하는 사이의 시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죽음’은 삶과 죽음 혹은 죽음과 (또 다른) 죽음 사이의 시간에서 스스로를 변형시키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가상성을 포함한다. 이때 죽음은 기존의 존재 근거를 와해해서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사이의 시간성을 갖는다. 2000년대 이후의 동시대 영화는 존재론적으로 바로 이러한 죽음의 영역에 있다. 작금의 영화는 셀룰로이드 필름의 소멸로 자기의 존재조건 및 세계와의 지표적 관계를 상실했기 때문에 자기 존재의 조건을 다시 세워야 한다. 하지만 고유의 매체특정성을 갖기보다는 기존의 매체를 시뮬레이션하는 디지털의 특성은 디지털을 정의하기 어렵게 만든다. 때문에 포스트필름의 특징을 전면에 드러내는 영화들은 죽음을 회피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죽음을 기입하거나 죽음을 통과하고 있는 중임을 보여줌으로써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역량을 키우고자 한다.

  더 나아가 포스트필름 영화에서 이러한 죽음의 존재양식을 밝히기 위해서는 내부와 외부가 식별불가능한 위상학적 관점이 필요하다. 점점 더 파편화되고, 복잡해지고, 끊임없이 변조되는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총체성을 명징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주위상학자 앙리 푸앵카레가 우주의 형태를 추측하기 위해 우주 내부로부터 외부의 시점을 취했던 것처럼 오늘날 영화와 세계의 형태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내부로부터 외부를 상상하는 위상학적 사유 실험이 필요하다.

  이 사유 실험은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이뤄진다. 첫째, 영화는 소위 역사의 종언 시대에 어떻게 역사를 쓸 수 있을까? 둘째, 디지털 시대에 영화 이미지는 어떻게 세계를 기호화하고 의미화하는가? 셋째, 후기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상하고 있는 정보화와 비물질 노동은 영화 이미지의 생산 및 관객의 지각 양식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리고 현실과의 지표적 고리가 약화된 디지털 시대에 관객을 현실에 연루시키는 정치적 영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아카이브, 인터페이스, 정보미학의 디지털 이미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 본 논문은 디지털 시대의 필름 영화 <엉클 분미>(아핏차퐁 위라세타쿤, 2010)를 주요 텍스트로 삼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 분미는 자신의 전생을 기억한다. 경찰이었던 그는 또한 자신의 병이 1960년대 태국 근대사의 한복판에서 공산주의 게릴라로 추정되는 마을 청년들을 살해한 업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준비하던 분미는 과거 죽거나 실종됐던 이들이 유령과 원숭이 형상으로 돌아오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기억의 멸종에 저항하고 죽음을 통과하는 환생을 통해 해체적인 역사쓰기를 제시하는 이 영화는 흥미롭게도 태국 근대사뿐만 아니라 과거에 사용되었던 상이한 영화 장르와 매체로 각 에피소드를 표현하여 영화사를 써내려간다. 그래서 매체가 표현하는 이미지와 기억이 구분되지 않는 역사쓰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 역사쓰기는 연대기적이고 인과적이기보다는 파편적이고, 반복되며, 자기파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역사와 기억을 환기하는 갖가지 매체와 장르의 표현 이미지는 흡사 명확한 설명과 인과관계 없이 마구잡이로 수집해놓은 아카이브와 같다. 아카이브는 자크 데리다가 잘 설명했듯이 기원의 보존을 갈망하지만, 기원이 상실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의 보충을 통해 오직 부재의 흔적만을 물신적으로 보관할 뿐이다. 아카이브의 보존욕망과 자기파괴적 충동은 한편으로는 그 역사를 매개하는 테크놀로지의 흔적을 통해 기억의 멸종을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연대기적 무정부성을 통해 창조적으로 미래를 쓸 수 있도록 해준다. 영화 내내 전생을 기억하고 환생을 반복해온 분미는 그 자체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거치면서 역사를 기록해온 영화(cinema)로 알레고리화 된다. ‘분미=영화’는 자신의 죽음을 스펙터클로 제시하고 ‘유령=관객’들에게 그것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역사적 책임을 묻고 죽음과 환생을 통한 미래의 역사쓰기를 제시한다.

 
 

  두 번째 질문과 관련해서는 사진과 죽음을 매체적 표현이자 서사적 모티브로 사용하고 있는 세 영화 <환송대>(크리스 마커, 1962), <확대>(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1966), <할로우 씨 사건의 사실들>(로드리고 구디뇨, 2009)을 비교분석했다. 앞의 두 영화가 필름 영화로서 각각 기억(혹은 늦게 도착한 과거)으로서의 영화 이미지, 영화 이미지에 대한 믿음(혹은 불신)을 통해 쇼트와 뒤이어 나오는 역쇼트를 연결하고 의미를 발생시킨다면, 앞의 두 영화를 오마주하면서도 철저하게 디지털 방식으로 만든 마지막 영화는 정보 탐색과 추론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낸다. <할로우 씨 사건의 사실들>에서 던져진 정보들을 탐색·축적·비교하는 카메라의 시선과 동일시된 관객은 그저 보기의 행동을 통해 가능한 이야기를 추론하고 무궁무진한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영화 이미지는 세계의 증거가 아닌 데이터베이스, 즉 추론-이미지가 된다. 더 나아가 기존 상업 영화에서 선명한 의미작용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이음새가 보이지 않는 쇼트와 역쇼트의 매끈한 봉합효과는 쇼트 내에 이미 다음에 나올 역쇼트가 포함된, 사실상 의미작용의 실패를 각인하는 인터페이스 효과로 대체된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용산참사를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김일란, 홍지유, 2011)의 독특한 제작방식과 수용에 대한 관찰을 통해 그 실마리를 발견하고자 했다. 사건 당시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촬영된 다양한 영상과 법정에 제출된 증거물을 사용해 구성된 <두 개의 문>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흐르는 정보와 통제의 이미지를 이용해 사회적 죽음의 실시간적 체험을 재구성하고, 포렌직 느와르(forensic noir)와 법정 드라마의 장르적 약호를 차용해 오늘날 영화 이미지의 생산양식을 노출한다. 이러한 과정의 노출은 한편으로는 관객들에게 마치 사건 현장의 수사관이 된 것과 같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한편, 자본이 전유해 갔던 인지적 노동과 일반지성을 정치적 잠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통성에 되돌려 준다. <두 개의 문>의 관람 행위는 그래서 그 자체로 가상적 공론장을 형성한다.

 

 

 

결론적으로 포스트필름 영화에서 역사쓰기는 아카이브로, 봉합 효과는 인터페이스 효과로, 시간-이미지는 추론-이미지로, 세계의 증거로서의 지표 이미지는 통계와 알고리듬을 위한 데이터베이스의 정보 이미지로, 보이는 세계는 프로그램된 세계로, 민중의 정치적 공간은 다중의 가상적 공론장으로 이동 중이다. 포스트필름 영화는 죽음을 경유해 자명하고 재귀적인 운동을 반복하는 디지털의 경향 ‘속’에서 그리고 그에 ‘저항’하며 존재 조건을 새로이 하고 창조성을 복원하면서 ‘이후’와 ‘외부’를 사유한다. 포스트필름 영화가 세계의 리얼리티를 다시 포착하기 위해서는 변화된 세계의 존재조건에 맞는 표현 방식을 창조해야 한다. 본 논문에서 조명한 포스트필름 영화들은 스스로 자기 존재 조건인 죽음을 각인하고 자신의 한계를 밀어붙여 사유하는 위상학적 방법론을 취함으로써 영화의 미래를 지도 그린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