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예슬 / 사회학과 석사과정

[복지의 가면: ② 국가의 인구관리: 가족정책]

가족복지정책에서 가족의 자리

홍예슬 / 사회학과 석사과정

 
 

 신자유주의는 위기와 불안전의 일상화로 특징지어진다. 즉 증가하는 사회적 리스크의 관리를 사적인 영역으로 이전시키고,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이다. 그 외에도 신자유주의는 계급이나 젠더에 따른 구조적 불평등 확대의 해결을 개인의 능력에 둠으로써 끊임없이 자기계발 또는 자기 혁신의 주체를 양산해낸다. 더불어 그동안 복지 제공을 담당하던 시장과 국가는 더 이상 급변하는 사회적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는 통념이 자리 잡았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시장은 빈곤과 사회적 배제를 양산하는 불안정한 장소로 인식되었다.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응해 집합적 보호를 제공하던 국가 역시 경제위기로 인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신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안전 메커니즘으로는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와 시장 사이의 공백을 메우고, 거시 경제적 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하리라는 기대를 받으며 복지 논의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 바로 가족이다. 가족은 국가처럼 강압적이지도, 시장처럼 방임적이지도 않은 적절한 통제가 가능한 장소이자 노동력의 재생산과 돌봄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정의된 가족을 바탕으로 수행되는 가족복지정책은 가족을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관리하는 도구로 전락시키며,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경제적 위험을 가족, 특히 여성에게 전가한다. 또한, 가족복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정책들 대부분은 인구의 규모를 관리하고 조절하는 장치로 자리매김했다. 국가는 위기관리의 전방에서 교묘하게 빠져나와 가족지원이라는 무대의 후면에서 사회를 관리하고 경제성장의 동력을 충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 가족정책의 급선회, 출산억제정책에서 출산장려정책으로

  한국의 가족복지정책은 권위주의의 역사와 더불어 이러한 문제가 한층 더 두드러진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가족은 국가발전을 위한 통제의 수단으로 기능하여 왔고, 복지책임이 가족들에게 전가되는 가족책임주의가 지배적인 경향으로 존속되어 왔다. 이렇게 가족이 국가의 통제 수단으로 기능한 것은 가족정책이 인구관리를 위한 목적으로 구성된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한국에서 가족정책이 중요한 정책 의제로 주목받은 배경은,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구조의 변화이다. 2000년을 기점으로 한국은 고령화 사회에 도달하게 되었고, 2018년에는 고령사회에,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인구 변화에 따라 노동력 규모의 축소로 인한 생산성 저하, 생산인구의 노인부양 부담 가중, 사회보장의 안정적인 재원조달 불가 등 저출산이 한국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위기 담론이 확산되었다. 1995년, 셋째 자녀를 의료보험의 혜택에서 제외하는 등 강력한 출산억제정책을 추진하던 정부는 2000년을 기점으로 출산장려정책으로 정책 방향을 급선회한다. 출산장려금과 육아휴직수당이 도입되고 가족법이 개정되며 건강가정기본법이 제정된 것도 이때이다. 모든 사회적 가치가 경제성장논리에 예속된 이 시기에 가족에 대한 권위주의적인 접근 방식이 자리 잡았는데, 과거의 틀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2월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불법 인공임신중절예방 종합계획>은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인 인공임신중절을 규제함으로써 낙태의 가능성을 봉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원치 않는 출산을 늘려서라도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시도로 볼 수 있으며,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가족정책이 이어져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한국의 출산장려정책의 특징은 정책의 수사와 실제 운용 간의 격차이다. 즉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가 정부 정책의 차원에서는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녀고용평등법」의 모성보호규정에 따라 ‘출산이나 육아로 인해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수사를 유지하는 한편 현실적 차원에서 제도의 운용에 대한 고려는 미비한 것이다. 출산 및 육아휴직의 경우, 부모의 당연한 권리로 인정받기보다는 개인, 특히 여성의 선택 문제로 여겨진다. 또한 이러한 비용을 여성을 고용함으로써 치러야 하는 불필요하고 부가적인 비용으로 인식한다. 노동시장에서의 전통적 젠더 이데올로기,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남성과 사적 영역을 담당하는 여성이라는 경직적인 이분법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은 1997년 경제위기에서 한층 강화되었다. 경제위기 아래에서 해고되거나 비정규직으로 밀려난 비율은 여성이 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관심은 기혼남성의 해고에 집중되었다. 또한, 구조조정 대부분이 기혼 여성을 최우선으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가사노동을 여성의 일차적 의무로 규정하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것이다. 즉 경제 성장 국면에서 노동력이 부족할 때에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적극적으로 유도되면서도, 경제 하강 국면이나 위기 시에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최우선적으로 밀려난다.

  실제로 시행되고 있는 가족복지정책 대부분은 양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보호보다는 출산율을 늘리는 데에 정책적 목표가 맞춰지고 있다. 이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와 보육서비스·육아휴직 제도의 면면이 여성의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한 측면에 맞춰진 것에서 확인된다. 일-가족 양립지원정책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시된 대안이다.

물화된 출산과 여성도 남성도 없는 가족정책

  유럽에서 도입된 일-가족 양립지원정책은 영유아자녀 양육지원, 유연 근무시간제, 개인에 기반을 둔 조세체계 등과 같이 여성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일련의 가족정책을 말한다. 이는 여성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경제활동인구의 감소에 따른 경제 활력의 저하를 막고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된 노동시장정책의 일환이다. 이 정책에서 핵심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남성의 참여 및 분담, 즉 양성 평등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진행되는 일-가족 양립지원정책은 기존의 젠더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는 남성부양자 모델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여성의 착취를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적용될 우려가 있다.

  한국 사회는 여성들이 육아와 가사노동, 고령자 수발을 거의 전적으로 담당하게 하는 동시에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또한 권유하고 있으며, 저출산의 책임 또한 여성의 이기심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한국의 저출산은 고용 불안정과 같은 노동시장의 불안정 조건과 여성의 양육 전담 등 성 불평등 요인이 보다 본질적인 원인이다. 저출산의 원인에 대한 잘못된 진단은 소액의 보조금이나 지원금, 세액 공제제도 등 경제적 보상으로 정책이 한정되는 데에 영향을 미쳤고, 여성의 선택인 출산을 ‘출산율’, ‘경제력’ 등의 지표로 물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 한국의 가족복지정책에는 ‘여성’이 부재하다. 출산장려정책을 펴면서도 출산의 주체가 되는 여성을 단순히 정책의 대상으로, 아이를 낳는 도구로 파악함으로써 여성의 상황과 관점이 정책의 방향에 반영되지 않는다. 가족정책이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책의 성공 여부는 그 정책이 얼마나 출산율에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논의로 한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성의 일할 권리와 양성평등은 부차적인 문제로 간주된다. 또한, 지금까지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목하에 수립된 정책들은 여성만을 정책의 목표로 설정함으로써 남성과 기업 등 저출산에 책임이 있는 다른 집단들을 정책 대상으로 끌어들이지 못했다. 이러한 남성의 역할 부재 또한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가족복지정책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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