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효정 /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과정

[학술-토론2]

 ‘여성’ ‘공동체’란 무엇인가?


김신효정 /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과정

  한국사회에선 ‘공동체’가 유행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를 위한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사업이 곳곳에서 결성 및 운영되고 있으며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행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공동체가 무엇인지, 공동체의 주체는 누구인지, 공동체의 가치와 윤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는 부족하다. 이러한 가운데 최승희의 연구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이자 도시에서 여전히 마을의 기능을 하고 있는 백사마을의 공동체적 의미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 여성들의 존재와 역할을 가시화하는 측면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공동체를 들여다보기 위해선 ‘여성’의 역할과 기여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한다. 공동체 내에서 여성은 언제나 돌봄을 제공하고 관계망을 유지시키는 주체이자 행위자였다. 여성은 가족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 내에서 양육, 먹거리 준비와 같은 재생산 노동과 보살핌을 실천해왔다. 이는 백사마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1960년대 백사마을로 강제 이주한 주민들은 천막생활을 했다. 여기에서 여성들은 공동 우물, 공동 화장실, 빨래터에 이르기까지 공동의 생활공간을 공유하며 생활해왔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생업을 위해 타지나 외국으로 나가 건축노동을 하였고 이로 인해 지역에서 장기간 부재했다. 결국 아이를 돌보고 마을을 지킨 사람들은 바로 여성들이었다.

  한편 본 연구는 백사마을 내 3개의 여성 공동체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시대적으로 변화해왔는지 구성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들의 집합적 정서와 관계성을 분석하고 있다. 이는 연구자가 공동체를 단순히 지리적인 경계로만 설정하지 않고 시간적 공간적 맥락에 따라 유동하는 공동체의 특성을 잘 포착했다고 볼 수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공동체는 상상의 산물로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상징적인 정서나 이데올로기가 집합된 공간이라고 했다. 즉 공동체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소유나 크기로만 정의될 수 없고 맥락에 따라 느슨해지거나 해체되는 등 유동적인 특성을 지닌다. 백사마을은 서울시의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구성원들이 이주하게 되면서 일상적인 생활을 공유하던 공동체는 거의 와해되었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친목계와 모임을 통해 유대를 이어나가고 있다. 즉 여성들 개개인은 자신의 삶을 살아냈던 백사마을이라는 상징이 주는 정서와 감정을 통해 관계성과 공동체성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백사마을 공동체에서 여성이 제공해온 돌봄과 양육을 ‘여성’ 고유의 역할이자 영역으로 강조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여성성과 남성성의 젠더규범을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마을 공동체에 대한 논의에서 여성을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성별 고정관념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단순히 인구학적 성별구성뿐만 아니라 백사마을 여성들이 공동체 내에서 어떠한 사회적, 법적 지위를 갖고 있는지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공동체를 물리적으로 와해시킨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의사결정구조는 어떠했고 여성들의 참여는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다. 다른 한편 본 연구에서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같은 공동체 내에서 같은 역사를 살아낸 여성들이라 할지라도 이들이 갖는 경험의 차이와 삶의 틈새들이 존재한다. 어떤 여성에게는 소중한 마을인 백사마을이 또 다른 여성에게는 떠나고 싶은 공동체일 수 있다. 따라서 여성 공동체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여성들이 갖는 ‘공동’의 것이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동시에 이 공동성이 어떠한 차이에 기반하고 있는지도 다루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여성들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맥락 속에서 공동성은 유지되고 재조직되는지, 어떻게 파기되는지 그 유동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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