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

 

[학술-토론1]

민속학자가 본 도시마을 속 여성 공동체에 대한 탐구

이성희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

  민속학 연구자들의 고뇌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있다.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무엇을 연구 주제로 삼느냐 하는 것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은 방법론에 대한 것이다. 민속연구는 사람살이에 대한 연구이다. 사람살이에 대한 연구지만 그 초점이 과거에 있지 않고 현재에 있다는 점에서 역사학과 구별되고, 사회‧경제적 연구보다 의미‧가치‧민족적 특징 밝히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사회학과 구별된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다 보면 민속학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상층보다 하층, 중심보다 주변, 상위보다 하위문화에 고정되게 된다. 그리고 스러져가는 것, 없어질까 안타까운 것, 잊혀질까 두려운 것들에 마음이 간다. 그러한 측면에서 최성희의 <서울 백사마을 여성 공동체의 형성과 변화>는 재개발을 명목으로 사라져가는 ‘마을’에 대한 연구라는 점에서 연구자가 겪은 고뇌의 깊이와 애정을 가늠하게 하는 의미 있는 연구이다.

  최성희의 논문은 서울시 중계본동 백사마을을 도시마을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분석하고, 백사마을에 존재하는 여성 공동체의 형성과 변화를 여성들의 구술사를 통해 고찰하였다. 이 논문은 도시 마을에 대한 기존 논의의 망을 확대하였고, 그동안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공동체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를 획득하고 있다. 연구 결과 백사마을은 마포구 성미산마을, 성북구 장위동, 용산구 해방촌 등과 같이 도시 마을의 성격을 지니지만, 출신지가 상이한 주민들이 모여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점에서 변별성이 있다. 강제이주로 이루어진 백사마을은 천막 공유, 우물, 빨래터, 공동 화장실 등의 공유를 바탕으로 공동체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졌다. 백사마을 여성 공동체는 골목을 중심으로 한 이웃 간의 비공식적인 소규모 모임 방식이라는 특징과 생활 공동체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 논문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도시마을로서의 백사마을의 성격이고, 다른 하나는 백사마을 여성공동체의 성격이다. 이렇게 나누어진 두 부분은 실상 이 논문의 제목과는 거리가 있다. 이 논문의 제목은 <백사마을 여성공동체의 형성과 변화>이다. 논문의 주제가 분산되면서 논의의 탄력이 떨어지고 있다. 담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쟁점화가 필요하다. 제목에 맞춰 논문 주제를 정리한다면 백사마을의 도시마을적 성격을 소략하게 살핀 후, 그러한 도시마을적 성격이 여성 공동체 형성과 전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해 밀도 있는 논의를 펼치는 것이 효율적일 듯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연구의 중심축이 되고 있는 ‘공동체’에 관한 밀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공동체에 대한 정의와 적용은 여성 공동체의 성격을 밝히는 데 공헌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논의의 초점이 흐려지고 있는 듯하다. 천막, 우물, 빨래터 등을 공유하는 것이 공동체인가? 아니면 공동체 구성에 다른 요소가 더 필요한가? 우리 민속에서 마을공동체를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이었던가? 공동체에는 물리적 요소 외에 구성원들의 정서적 유대가 일정한 상호 작용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 연구에서 여성들의 구술사 연구를 통해 이러한 상호 작용의 경험담, 함께 어울려서 했던 공동의 놀이, 노동에 대한 추억 등이 좀 더 세밀하게 다루어졌다면 연구주제를 좀 더 부각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논문이 마을의 성격에 대해 일정 부분을 할애하다 보니 논의의 시각에서 민속학과 사회학의 시선이 중첩되는 부분이 더러 있다. 이 논문이 민속학 연구로서의 의의를 가지기 위해서는 백사마을의 민속학적 성격, 예를 들면 동제, 이중계, 공동재산 등을 좀 더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한다. 또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구술사 연구에서도 사회·경제적인 시각보다 마을공동체, 품앗이 등의 민속 현상들에 대해 시행 주체, 시행 시기 등을 밝히는 정밀한 조사가 요구된다. 민속학 연구에서 여성들의 역사는 침묵하는 영역이었다. 이것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이 구술사가 될 수 있다. 구술사적 방법론을 통해 여성들의 심층적인 개인사를 주목해 보되, 그것이 전통적인 여성 공동체의 특성, 여성 민속의 특성과 부합되는 의미망을 추적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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