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공간

 
 

  대학원건물 1층 끝에 위치하고 있는 대학원복사실을 찾았다. 조금 한가한 시간에 방문했는데도 복사, 프린트 한두 장부터 제본을 맡기고 찾는 사람들까지 학생들이 끊이질 않았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는 조금 막막하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해야 할지,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 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괜한 걱정이었다. 작은 복사실에는 15년간의 이야기들이 담겨있었고 장인 같은 사장님의 애틋한 공간이기도 했다.

- 중앙대에서 일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우리가 15년 됐어요. 원래는 누님이 하던 걸 내가 넘겨받았어요. 그전에는 도와주기만 하다 8년 전부터 직접 하고 있어요. 계약은 1년 단위인데 계속 연장하다 보니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생각보다 정말 오래됐죠?
- 근무환경은 어떤가요?
일요일만 쉬어요. 토요일은 대학원 수업이 있다 보니 근무하고요. 문 여는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에 12시간씩 일해요. 직원은 아르바이트 포함 세 명이에요. 아르바이트는 타임제로 하고 있고요.
- 하루에 일은 얼마나 되나요?
지금은 많지 않아요. 3년 전까지만 해도 많았는데 학과사무실이나 행정실에 복사기가 다 들어가서 제본 말고 일반복사 같은 경우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 비하면 지금 50% 줄었어요. A4는 하루에 3-4박스 써요. 한 박스는 2천5백 장 정도 돼요.
- 1년 중 가장 바쁜 달과 한가한 달은 언제인가요?
신학기인 3월, 9월이 가장 바빠요. 6월, 7월, 12월, 1월은 논문으로 바쁘고요. 방학 때는 아무래도 영향을 좀 받아요. 그래도 5년 전부터 학교의 논문규정집을 맡게 돼서 조금 보완이 돼요. 아마 다른 집들은 영향이 더 클 거에요. 저희가 여름학기, 겨울학기 논문 제작하는 걸 반 이상해요. 잘한다고 소문이 나 있어서(웃음). 그래서 우리는 방학 때 한 달 정도 타격이 있고 나머지 두 달은 괜찮아요. 그때 신학기 준비도 하고요.
- 복사나 제본했던 것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책이 있나요?
책 같은 거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고요. 기존에 있는 책을 복사하거나 편집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책은 워낙 양이 많아서 기억은 잘 안 나고 제가 좀 기억에 남는 건 논문 할 때 박사분들하고 밤도 새고 옆에서 자료도 찾고 편집도 도와드리는데 그런 분들이 다른 대학교에 가서 학과장하고 계시고 하면 기분이 좋죠. 거기에서도 석, 박사들 논문 해달라고 저한테 보내주기도 하고요.
- 편집디자인도 하시면 복사 외에도 업무가 많으시겠어요.
사실 복사만 하면 먹고살 수가 없어요. 예전에는 기성 표지들을 많이 썼는데 경쟁이다 보니 다른 집에서 못하는 걸 내가 해주는 거죠. 독학으로 인디자인, 포토샵, 일러스트 다 배웠어요. 엄청 어려웠어요. 제가 직접 디자인하는 것도 있지만, 디자인해온 걸 수정도 해줘야 하다 보니 필요해요. 안 그러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다 알고 있어야 하죠. 학교 주변엔 덤핑이 많아요. 가격이 싸고 품질도 좋으면 좋은데……. 종이도 무게에 따라서 좋은 거 나쁜 거 한 박스당 5천 원씩 차이가 나요.
- 복사집도 시대 흐름을 많이 타겠어요.
옛날에는 정말 잘 됐죠. 일이 넘쳐서 학생들 아르바이트만 5명씩 됐어요. 쉴 틈이 없었죠. 근데 지금은 행정실마다 복사기가 들어가 있고 회사에도 다 들어가 있다 보니 대학원생은 출력은 다해와서 책만 만들어달라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저희는 작다 보니 보통 사람들은 큰 곳을 선호하는데요. 근데 다 장단점이 있죠. 큰 인쇄소는 소규모는 안 하다 보니까. 가끔 외부업체와 일도 하는데 정말 망하는 곳도 많고 힘들어요.
- 어떤 점이 특히 힘드신가요?
제가 편집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편집은 저한테 하고 도망가는 경우가 있어요. 프린트가 싸구려라도 사실 일반인은 잘 몰라요. 학과 전체가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 학과에서 나중에 다시 오면 제가 안 하죠. 이런 일이 있었다 하면 ‘저희는 다르다’고 하는데 제가 그 학과 이름만 보면 화가 나니까(웃음). 5년 전에 8명이 그랬는데 편집디자인비를 아직도 안 냈어요. 서로 미루고 안내요. 사실 프린트 비용은 많이 차이 나도 만 원인데 싼 곳에 비교되다 보니 그런 점이 조금 힘들어요.
- 중앙대학교는 어떤 의미인가요?
일단 나한테는 고마운 데죠. 내가 먹고사는 데니까. 내 생활의 터전을 준 곳이니까요. 제일 큰 것은 내가 내 능력을 발휘할 공간을 준 거니까 고마운 데죠. 지금 여기서 체계를 밟아온 게 좋고, 교수님들이랑 많이 친해져서 인맥 넓어진 것도 좋아요. 중대만 해도 좋은 학교니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요. 제가 건축학과 나와서 미술을 좋아해서 미대생들이랑 친분을 오랫동안 유지해 연락하는 경우도 있고, 나랑 밤새서 고생하던 사람들 잘 된 거 보면 보람 있죠. 인연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인터뷰 | 김재연
정리 | 이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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