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기훈 / 공연영상창작 학부 사진전공 강사

풍경으로서의 시대

노기훈 / 공연영상창작 학부 사진전공 강사
 

  옆집에 살던 여자가 죽었다. 제주 4.3 당시의 현장을 찾아서 촬영을 갔다 온 날 밤, 오피스텔 복도는 죽은 여자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냄새의 근원을 추적하다 옆집 문 사이에서 숨 막히도록 코를 찌르는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차갑고 무거웠다. 나는 옆집 사람이 1년이 넘도록 현관문을 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모자를 눌러쓴 여자가 밤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고는 하는,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20대 후반의 예쁘장한 그녀라고 추측하는, 상상보다는 좀 현실적이고 현실보다는 상상에 가까운 그런 그녀의 몸에서 나는 악취였다. 시신의 몸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는 구더기가 튀어나와 있었다(고 발견 당시의 경찰관은 말했다). 근처에 산다는 부모님은 보증금으로 청소비를 해결하라는 말만 집주인에게 남기고 단 한 번도 와 보지 않았다. 집주인은 죽은 아가씨가 명절이 되면 꼭 과일 상자 2개를 보내주고는 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없는 사정에 보내지 말라는 당부에도 보증금을 깎아 줘서 고맙다며 매번 보내왔단다.
  소방관이 문을 따고 경찰이 조사를 하고 나서 병원에서 시체를 가져가는 일련의 과정이 완료됐다. 한 시간 만에 그 여자는 한 달 동안을 잠들어 있던 화장실 너머에서 사라졌다. 나는 화장실을 가득 메운 역한 냄새를 없애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틈만 나면 향수를 뿌려댔던 나의 행동에 분노가 치밀었다.
  물건이 다 치워지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의 집을 보고 싶었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어색하게 쳐진 두 줄의 투명 스카치테이프 너머로 그녀가 살았던 집을 바라보았다. 현관문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은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형광색 나이키 맥스가 놓인 신발장 옆에는 2리터짜리 생수병들이 쌓여있었다. 세븐라이너라고 적힌 종아리 안마기 뒤로 베란다에 홀로 걸린 하얀색 원피스가 여름 바람에 가녀리게 나부꼈다. 어두컴컴한 집에 꽉 차게 들어선 살림살이가 무척이나 정물적이었다.
  나는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 인천에 있는 작업실로 가기로 했다. 남대문과 광화문을 지나고 버스 창문 너머로 형광색 조끼를 입은 경찰들이 시진핑의 안위를 돕고, 청계천 다리 위로는 퇴근 시간을 맞은 회사원들이 집으로 가기 위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리고, 버스가 십 미터 앞도 제대로 나가지 못하는 꽉 막힌 도로에 경적 소리는 신경질적이고, 무더운 여름날이 아스팔트 위로 짜증스럽게도 들러붙는, 인천행 1호선 열차가 철로 위로 굉음을 내며 미끄러지는, 오늘따라 20대 여자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런 날이었다.
  내가 맡은 사람의 냄새를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죽음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 같아 몇 번이나 망설였다. 글을 쓰고자 죽은 집을 인화했다. 풍경을 넘어서 풍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사진 인화지 안에서 가능할지도 모른다. 죽은 그녀의 집이 선명하게 프린트된 인화지 앞에서 그녀의 냄새를 떠올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에게 풍경은 이런 것이다. 분명히 눈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할 수 없고 좋든 싫든 그만으로 놓아버리는 정적인 것이다. 그래서 풍경은 언제나 건조하다, 애틋하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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