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엽 / 국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부교수

 

이족 보행 로봇의 제어

  로봇이라는 단어는 1921년도에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에 의해 <Rossum’s Universial Robots>라는 희곡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로봇은 체코어로 강제노동과 노동자의 합성어다. 이는 사람을 대신해서 노동하는 기계를 뜻하며, 희곡에서는 사람과 똑같은 형상을 가진 소위 휴머노이드로 등장했다. 시대가 지나면서 로봇의 정의는 변화하고 다양한 모습들로 개발되고 있지만, 대중들이 상상하는 미래 로봇의 형태는 여전히 인간 사회 환경에서 쉽게 적응하고 사람들과 같이 협동할 수 있는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휴머노이드는 예전부터 희곡이나 아톰과 같은 애니메이션, 그리고 터미네이터와 아이로봇과 같은 영화에서도 매우 흥미 있는 주제로 꾸준히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작품은 인류를 향한 로봇의 도전과 파괴를 중심 서사로 표현해왔다. 그만큼 인류에게 있어서 휴머노이드는 호기심과 동경심 그리고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왜 인간들은 두려움을 뒤로하고 휴머노이드에 열광하는 걸까? 그 이유는 인간과 닮고 인간과 비슷한 기능의 기계에 대한 갈망과 상상의 세계를 파헤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인간 생활공간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형태의 로봇의 필요성, 마지막으로 인간이 지닌 이족 보행 기술의 신기한 원리 탐구에 있다. 이 중에서 이족 보행 기술이야말로 휴머노이드 공학자들의 도전의식을 고취하는 핵심 요소이며 그 배경은 다른 이동 요소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동성능에 있다. 20세기 현대 산업의 꽃이었던 자동차의 바퀴 구동과 비교하면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이족 보행은 어느 방향으로나 즉각적인 이동이 가능하고 바퀴가 지나가기 힘든 험지나 구덩이를 쉽게 넘어갈 수 있으며, 계단 역시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좁고 복잡한 지형에서 원활한 이동이 가능한 장점은 인간 생활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는 1970년대부터 일본 와세다 대학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연구 개발되어왔다. 1973년 와세다 대학에서 세계 최초로 모터 구동식 휴머노이드 로봇 WABOT-1을 개발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모터의 힘이 로봇의 하중을 버티지 못해 무게 중심 제어를 이용한 느린 정적 보행(10초/스텝)만 가능했다. 이후 80년대에는 와세다 대학에서 힘이 센 유압 구동기를 사용하여 세계 최초로 걸음이 빠른 동적 보행(1.3초/스텝)이 가능한 WL-10RD를 개발했다. 그렇지만 유압 구동기는 기름을 담을 수 있는 탱크와 펌프 및 냉각기의 부피가 매우 커서 실제 로봇이 자율적으로 보행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후 WL-10RD는 1968년도에 미오미르 보코보라토빅이 제안한 ZMP라는 신개념 동적 무게 중심이 실제로봇에 적용되어 빠른 보행에 성공하였고 휴머노이드 개발에 매우 큰 의미를 남겼다. WL-10RD의 빠른 동적 보행의 성공은 ZMP라는 동적 무게 중심이 이족 보행의 균형제어에 널리 사용되는 계기를 만들어줬으며,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로봇 공학자들이 이족 보행 로봇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데에 촉진제가 되었다. 일본 혼다에서 개발한 세계 정상급의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 아시모 역시 ZMP를 이용하여 안정한 보행을 수행하고 있으며, 많은 휴머노이드 공학자들이 ZMP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들은 어떻게 보행을 할까? 사실 각 연구팀마다 다른 고유의 보행 기법이 매우 많이 개발되어왔으나, 본 글에서는 필자가 KAIST 박사과정 재학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로봇 휴보 시리즈를 비롯한 다양한 휴머노이드를 연구 개발한 경험을 통해 이족 보행 제어 알고리즘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족 보행 제어 알고리즘에 대해

  우선, 인간의 보행이란 보행 방향으로의 쓰러짐과 균형 유지를 위한 발디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반복 운동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뇌는 오랫동안 학습된 기준 걸음새를 저장하고 있으며 이를 수행하기 위해 적절한 기준 신호를 근육에 전달시킨다. 여기서 기준 신호들은 다양한 전략을 통해 어떠한 환경에서도 넘어지지 않도록 정밀하고 빠르게 재수정되며, 이러한 메커니즘은 자신도 모르게 항상 백그라운드 상태에서 수행된다. 인간의 보행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우선, 인간은 일정하지 않은 바닥의 굴곡에 적응하거나 착지 시 충격을 흡수하기 위하여 발목 및 무릎 관절의 동작을 매 착지마다 수정한다. 그리고 동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몸통, 팔 및 발목 동작을 계속 수정한다. 이러한 작업은 주로 발바닥의 지면 반발력과 정전기관의 신호를 기반으로 한 피드백 제어 형태로 이루어진다. 더 나아가 바닥 환경을 미리 예측하기 위하여 좌우 눈을 센서로 사용하며 이에 따라 기준 보행 걸음새를 미리 수정한다. 이러한 작업은 일종의 피드포워드 제어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는 자동차 운전자가 앞으로 닥칠 커브길을 보고 미리 핸들을 돌리는 원리와 같다. 위와 같은 사실은 인간이 크게 기준 걸음새 생성과 균형 제어를 위한 걸음새의 재수정이라는 두 가지 행위를 수행하며, 균형 제어를 위해 여러 가지 전략을 복합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필자는 인간의 보행 원리를 최대한 모방하여 보행 패턴이라고 불리는 피드포워드 제어 방식의 걸음새의 생성과 피드백 방식의 각종 센서를 이용한 균형 제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하여 제어 알고리즘을 구성하였으며, 균형 제어 안에는 다양한 하위 온라인 제어기들을 구축했다. 우선, 로봇은 학습능력이 없기 때문에 로봇의 키와 중량에 최적화된 보행 패턴을 사람이 미리 설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보행 패턴은 세 가지 방법으로 설계된다. 첫 번째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써 로봇의 보행패턴을 직관적 관점에 기반하여 실험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복적인 실험이 수반되어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며, 보행 모션이 다소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두 번째는 로봇의 보행 모션을 도립진자 운동으로 가정하여 이론적으로 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미분방정식의 해를 구하여 다소 짧은 시간에 성능이 높은 걸음새를 설계할 수 있으나 도립진자 운동은 발의 수직 상승 및 하강 운동이 고려되어 있지 않아 로봇의 실제 보행과는 차이가 있다. 마지막은 사람의 보행을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후 로봇의 치수와 관절 구조에 맞게 후처리하여 걸음새를 설계하는 방법이다. 보행을 촬영했던 사람과 로봇의 키나 관절 구조가 많이 달라 최적화 기법을 이용하여 로봇의 걸음새로 복잡하게 변환해야 하지만, 사람의 보행에 매우 흡사하고 부드러운 걸음새를 설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보행패턴은 오프라인 상에서 미리 설계되기 때문에 보행 시 지면 환경이나, 외부의 힘이 고려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보행 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균형 제어가 동시에 수반되어야 하며, 이는 여러 가지 온라인 제어기들로 구성된다. 대표적으로 ZMP 제어기, 스윙 다리 진동 제어기, 발목 유연 제어기, 착지 위치/시점 제어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온라인 제어기들은 보행 시 맡은 역할이 모두 다르고 독립적이며 작동 시점 역시 서로 구별된다. ZMP 제어기는 몸통의 수평 운동으로부터 동적 무게 중심이 두 발로 이뤄지는 지지 영역의 중심에 위치할 수 있도록 제어한다. 스윙 다리 진동 제어기는 보행 시 관절의 유연성 때문에 발생하는 다리의 진동을 억제해주며, 발목 유연 제어기는 지면의 국부 경사에 적응하기 위해 딱딱한 발목을 순간적으로 유연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착지 위치/시점 제어기는 로봇의 질량 중심에서 측정한 각운동량과 각속도를 토대로 적절한 착지 위치와 시점을 재계산한다. 결국, 이족 보행 제어는 미리 설계된 피드포워드 제어 방식의 보행 패턴 생성과 센서 피드백 제어 방식의 균형 제어가 적절히 어우러져 수행되며, 보행 시 불규칙한 환경에서도 안정한 동적 보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사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개발된 이족 보행 제어 기술의 수준은 인간의 기대 정도와 비교하면 10-20%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아시모라고 할지라도 보행 시 외부에서 물리적 힘을 가하거나, 지면의 기울기가 크게 변하는 상황에서는 보행 안정성을 장담하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 환경을 레이저 스캐너나 CCD 카메라로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미리 반응하는 연구에 세계적으로 많은 로봇 공학자들이 몰두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사람과 같이 생활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가 이 세상에 나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